[2학년담임일기] 8월
8월은 별 이야기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름 진지한 이야기들도 나오고 하네요.
#8월 18일
이번 아이들은 답장이 참 많이 온다. 이번것까지 하면 거의 9장인가 온거 같다
개학은 좋은데 공부는 싫다는 아이
남자선생님은 싫었는데 편지를 보내줘서 이제부터 좋아하겠다는 아이
에어컨이 고장나서 할머니네서 있는데 선생님이 보고 싶다는 아이
다양한 아이들을 다음주에 만난다
#8월 20일
진아는 오늘 전학을 왔다. 교무실에서 진아를 보고 아이들에게 미리 준비를 시킨후 데리고 오기 위해서 교실 앞에서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진아 이름을 알려준 후 박수칠 준비를 시키는데
"똑똑"
"어 진아야~"
진아가 들어오더니 내 손을 꼭 잡는다.
"친구들에게 인사할래?"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응 그래 얘들아 아직 진아가 어색한가봐. 진아는 저기 가서 앉자"
앉아있던 진아는 엎드린다. 1교시 내내 엎드려 있다. 조회임에도 불구하고
'어? 실내화주머니를 아직 가지고 있네?'
"진아야. 실내화주머니 들고 나와볼래?"
실내화주머니를 들고 나온 진아는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왜 울어 진아야?"
"언니가 보고 싶어요~"
"아.... 언니는 지금 교실에 있으니까 이야기 하기 어렵겠지? 선생님이랑 교무실에서 이야기 좀 더 할까?"
끄덕끄덕.
교무실로 데리고 갔다. 얼핏 듣기로 진아는 1학기 내내 학교에 못갔다. 그러니 많은 또래와 함께 있는게 불편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전학 첫날 아이들이 전부 자기만 보는 게 불편했을 수도 있고.
"진아야. 진아가 많이 겁나지?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도 그럴거 같아. 근데 진아에 대해 친구들이랑 이야기 했을 때 친구들이 엄청 기대했어. 선생님도 진아를 도와주고 싶어. 근데 진아야. 진아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우리가 진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그러니 문을 조금만 열어줄래? 활짝 열어주지는 않아도 되 조금만 열어줘. 할 수 있어?"
끄덕끄덕.
"그럼 세수하고 오자."
그렇게 진아는 교실로 다시 왔다.
쉬는 시간 종이 치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누가 진아 학교 안내 좀 해줄래?"
대충 남자아이들 한두명과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손을 든다.
"그럼 여자친구들이 진아랑 같이 학교 한바퀴 돌고 오렴"
아이들이 전부 가서 누구와 손을 잡는 가를 가지고 의논을 하는 모습을 봤다. 다녀온 진아는 좀 누그러진 눈치다. 다음 시간은 방학때 일을 가지고 점이 생겼어요 게임을 하는 시간이다.
"이 게임은 나랑 친한 친구 말고 1학기 동안 말을 많이 못한 친구들이랑 먼저 하는 거에요~"
시작하니 아이들이 우르르 진아에게 간다. 돌아다니다 진아가 중간에 말한다.
"저 네개 남았어요`"
"와` 잘했어~ 계속 해보자~"
게임이 끝날 때는 진아는 얼굴이 폈다. 그렇게 첫날이 갔다.
집에 와서 진아가 전학온 학교에 근무한 선배와 통화를 했다. 한숨이 나온다. 낳았다고 다 부모가 아니다.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하지 않는가... 2학기가 그닥 쉽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적어도 아이가 학교를 좋아하게 하거나 좋아하고 있다면 그 마음을 유지시켜줘야겠다
#8월 22일
태승이가 안온다. 어머니께 태승이가 무슨 일이 있는지 문자를 드렸다.
[아이가 받아쓰기 공책이 없다고 울고 있어서 이제 간대요..]
[아고.. 꼭 오늘까지 준비 안해도 되는데.... 제가 오면 데리고 이야기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보다 일찍 나가시는 거 같다. 조금 뒤 할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오셨다. 수업중이라 할머니와 아이가 오는 것만 보고 나가지는 않았다. 교실 문이 열리고 태승이는 주섬주섬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다. 할머니가 고민을 살짝 하시다가 교실로 들어오셔서
"선생님 태승이가~~"
"할머니 나가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수업중이라...."
"네~"
나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좀 아프기도 하고 학교 가기 싫어서 밍기적 대다가 늦으니 더 가기 싫고 선생님한테 혼날 거 같아서 울고 그랬다는 거다.
"저는 그런 거로 혼낸 적이 없어요 할머니~"
"아유 알죠~ 그냥 저녀석이... "
"아이가 안와서 어머니께 문자 보내보니 받아쓰기 공책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안가려고 하더라구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태승이는 교실로 들어왔다.
잘왔다 이녀석.
#8월 22일
5교시에 마을 탐방을 했다. 아이 한명이 중간부터 말한다.
"선생님. 그냥 죽는게 나을까요? 아니면 이렇게 걷는게 나을까요?"
너무 더웠다.... 태풍아 올 거면 빨리 와라.
#8월 24일
올해는 내가 평소 생각하던 걸 실험해보고 있다. 다름이 아닌 뭐든지 70~80% 정도만 해보는 거다. 특히 수업. 100%로 진행을 하다가 수업시간에 20% 정도의 빈틈을 만드니 아이들이 떠들기 시작한다. 더불어 이야기를 서로 한다. 아이들이 많이 친해졌다. 친해지니 다툼이 적다. 그러니 서로 대화가 되고 의사소통이 되고 있다. 이게 성인이(내 기준에) 보기에 엄청 잘 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스스로 놀고 탐구하도록 많이 두고 있다. 그냥 내가 뭘 만들고 딸이 기웃거리면 넘겨준다. 그렇게 하면 아이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 본다.
우리 사회는 항상 100%로만 달려왔다. 쉬는 건 죄악같이 가르쳤다. 휴가를 가서도 치열하게 쉰다. 가만히 있지 않고 항상 무언가를 보고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하면서 무언가를 계속 한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다만 쉬려고 간 휴가인데 돌아오면 힘들어 한다. 재충전해왔는데 힘들다.
비어있는 공간, 요즘 내가 생각하는 거다.
#8월 28일
2학년 가을 학습지도를 만드는데 마을과 관련된 단원이다.
근데 진영마을이라고....
좋아좋아
#8월 30일
진아가 운다. 따로 데리고 교무실로 왔다.
"왜 울어?"
"...."
"교실에서 누가 뭐라고 했니?"
"아뇨.."
"그럼 누가 괴롭히니?"
"아뇨..."
"왜 울었어?"
"언니가... 언니가 보고 싶어요.."
“......”
어렵다..
진아는 특수학급에 들어가기로 했다. 특수학급에서 오늘은 테스트를 해본다. 그 사이에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다
"얘들아~, 이야기좀 하자."
"네~"
"진아가 말야. 이제 전학을 왔잖아~ 진아는 지금 꽤 힘들어 하고 있어. 뭘 힘들어 하게?"
"음... 우리랑 친해지는거요?"
"그것도 있지~ 이름 외우는 건 어때?"
"왜요?"
"너희는 진아 이름 하나만 외우면 되지만 진아는 23명의 이름을 외워야 하잖아"
"아..."
"그럼 진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같이 친해져야 겠지?"
"네~"
"음... 가서 말을 걸어줘요~"
"오~ 좋아 좋은 방법이야. "
"같이 놀고 도와주고 그래요~"
"그래 근데 도와주는 건 진아가 할 수 있을 때는 그냥 둬주면 되. 너희 생각해봐. 1학기에 비해서 지금 선생님이 엄청 보기 좋은 것 중 하나가 전보다 덜 싸운다는 거야. 혹은 싸우더라도 전에는 다음날까지 말 안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다음 시간에 같이 놀고 하지. 그치?"
"네."
"바로 시간이야. 같이 있을 시간이 많이 필요해. 그런데 그 시간을 앞당기려면 너희가 도와주면 되고. 선생님이 이제 15년째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데 예전에 전학생 오면 친해지는 데 시간 엄청 오래 걸리기도 했어. 그리고 연민이가 전학간 것도 선생님은 싫단 말이지. 아쉽거든."
"선생님 그럼 전학온 사람이 친해지는데 제일 오래 걸린 게 얼마에요? 반년?"
"그런 적도 있지. 아무튼... 얘들아 진아는 지금 너희랑 같이 놀고 싶은데 같이 놀고 싶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
"부끄러워서요?"
"그렇지. 그래서 아마도 너희가 놀고 있을 때 옆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을거야.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같이 놀아요~"
"그래. 같이 놀자고 말을 해줘. 만약 사람이 꽉 차서 놀기 어려운 경우라면 진아에게 지금은 안된다고 말해줘도 되.. 진아가 우리반 친구들이랑 친해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어?"
"네~"
얼추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다음시간이 되고 진아는 특수학급에서 올라왔고 아이들이 전날보다 더 친절하게 대해주고 있다. 정말 다양한 분야의 아이들을 겪어보긴 했으나 이런 분야는 처음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조금 더 걸어본다.
#8월 31일
주사위를 만들어야 하는 활동이 있었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주사위를 만들어야 하고 게임을 하기 위해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종이를 조심히 뜯고, 접고, 풀칠을 한다.
“아 풀칠 겁나 어려워”
“훗. 나같은 능력자는 풀칠을 안하고도 만들지”
“어떻게? 테이프써서?”
“아니 그냥 하는 거야”
“어떻게? 나도 할래”
“이건 나같은 능력자만 하는 거야 넌 못해”
“치 니가 뭐 신이냐?”
“내가? “
“니만 만든다며? 혼자 만들 수 있는 건 신이지”
“내가 신이라고? 내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냐?”
“너 혼자만 한다며?”
“내가 사람을 못만드는 데 어떻게 신이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넌 다 니마음대로잖아”
“난 사람을 못만들어”
음... 철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8월 31일
"어? 선생님! 제 일기 안주셨어요!"
"어. 안냈잖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