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의 학교문제집] 8. 김선생, 경찰이 되다.
교사가 된 이후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일들은 종류도 다양하다. 학교폭력일 수도 있고 그저 내게 버거운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번 시리즈 제목은 [딩크의 학교문제집]이다. 내 교직경력은 <56655-6652-전담562> 이다. 13년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들, 그당시 적어놨던 것들(안적었던 것도 많겠지만...)과 떠오르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정리해서 시리즈로 적어보려 한다. 이렇게 작성하다 보면 혹자는 내 경험을 공감하거나 혹자는 내가 실수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 비판도 할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만한 부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믿는다. 수많은 간접경험을 통해서 나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거나 혹은 위안을 얻기를 바라며 시작해보련다. ps. 연도의 순서는 왔다갔다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
#prologue
“저놈 잡아라!”
외치며 그 놈을 잡으러 뛰었다.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던 그 놈은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차를 받았다. 자전거는 차의 오른쪽 본넷 쪽에 부딪혀서 쓰러졌다. 그 놈은 본네트에서 구르더니 라이트 앞쪽으로 떨어졌다가 일어나서 바로 뛰었다. 갑작스러운 비가 내리던 터라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이 죄다 보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잡아야 한다.
#1. 인지하다.
복직하고 6학년을 맡았다. 옆 반에는 선한 의지의 표본인 조이 형이 계셨다. 어느날 형이 와서 의논을 할 게 있다고 한다.
“진영아. 혹시 내일 오후에 시간이 되니?”
“무슨 일이신데요?”
“아이들이랑 상담을 하다 보니까 이 동네에 젊은 애가 있는데 이 애가 6학년 애들 돈을 빼앗네? 내일 학교에 온다고 해서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하려는 데 혼자는 어려울 거 같아. 도와줄 수 있어?”
“그럼요~”
형과 이야기를 마친 후 아이들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민원이 빗발친다. 재현이는 피씨방 마일리지를 빼앗겼다. 민석이는 피씨방비를 대신 내줬다. 현서는 음료수값을 빼앗겼고 지연이는 그 놈이 버디버디로 사귀자고 고백을 했단다. 그 놈은 스물두살이다. 동네에 있는 네군데 학교를 돌아다니며 누군가에게는 피씨방비를, 어떤 아이에게는 음료수값을 빼앗았다. 고백을 당한 6학년 여자애들이 여럿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스물두살짜리가 초등학생들에게 저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 창피하지 않나? 다음날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 보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자 소나기가 온다. 조금 잦아들 무렵 우산을 들고 슬리퍼를 신은 채 운동장으로 나갔다. 슬슬 교문쪽으로 걸어갔다. 운동장의 반 정도를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반팔반바치 차림에 감지 않은 곱슬머리, 짖은 눈썹, 얇은 눈, 주근깨가 많은 청년 한명이 자전거를 타고 교문에서 오고 있다. 나는 교문쪽으로, 그는 학교 안으로 움직이면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저놈이구나!’
교문으로 가서 그 앞을 지키며 저 녀석이 오면 잡으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며 걸어가고 있는 찰나, 조이 형이 현관으로 나왔다. 형은 그에게 손짓을 하며 정중하게 이야기 한다.
“저기, 잠깐 이리 와요. 우리 이야기좀 합시다.”
그 순간 자전거는 유턴을 하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 자전거를 잡기 위해 나도 뛰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우산을 집어 던지고 걸치적거리는 슬리퍼를 던져 버렸다. 자전거 짐받이에 손을 뻗치는 순간 자전거는 더 가속을 했고 눈 앞에서 놓쳐버렸다. 뒤에서는 조이형이 쫓아오고 있었다.
#3. 쫓다.
도망가던 자전거는 교문앞에 정차한 차에 부딪히더니 포물선을 그리며 땅에 떨어졌다.
동시에 그는 본네트에서 굴러서 착지하자마자 일어나서 도망친다. 마치 액션영화에서 볼듯한 모습이다.
1학년 아이들을 맞이하러 나왔던 학부모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상황을 보고 있었다. 보는 눈들이 이렇게 많아서는 내일 쉽지 않을 거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놈 잡아라 외치며 열심히 뛰었다.
골목골목을 양말만 입은 채로 뛰어다녔다. 앞의 그 녀석은 열심히 도망친다. 정말 신기하게도 둘의 거리는 늘어나지도 좁혀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내 뒤의 조이형도 나와의 거리가 일정하다. 뛰다가 그 녀석이 쉬면 나도 쉬어야 한다. 안그러면 놓칠 거 같다. 다리는 뛰고 있고 입은 외치며 심장은 터질 거 같다. 그렇게 학교 옆의 주택단지를 넘어서 시장을 지났고 옆학교가 보이는 공원까지 쫓아갔을 때 더 이상 그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조이형과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고민하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 학교로 경찰이 왔고 그 녀석의 이름은 알고 있었고 동네 주민들에게 수소문해서 경찰과 같이 집을 찾아갔다. 집은 대략 6,70년대에 지어진 듯한 2층짜리 아파트였다. 집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 녀석의 아버지를 경찰이 불러내어 사정을 들어봤다. 어릴 때부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사고를 계속 쳤다고 한다.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대전 소년원에 정신과가 있다고 들어서 신고하여 아이를 보내버렸다는 것이다. 4년 정도 들어가 있는 동안은 조용했는데 출소한 후 출소 전에 했던 일들을 또 하고 있다며 힘듦을 토로하셨다.
결국 그 녀석을 찾지 못하고 조이형과 같이 학교로 돌아왔다. 시간은 이미 네시간이 훌쩍 지났다. 운동장에는 그 녀석의 자전거와 내 우산과 슬리퍼가 남아있다. 주섬주섬 챙길 것들을 챙기고 조이형과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잡지 못한 찝찝함은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다고 생각해서 둘 다 아쉬움은 없었다.
#4. 잡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학교 한바퀴만 돌자고 하면서 학교 담을 휙 돌았다. 그리고 교문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나오는 그 녀석과 딱 마주쳤다. 우리는 괴성을 지르며 쫓고 그녀석은 자전거 핸들을 돌리며 유턴을 했다. 우리는 맨몸이고 그녀석은 자전거에 올라타느라 붙잡힐 수 밖에 없었다. 범인이 경찰에게 연행되듯 양쪽에서 팔을 붙잡고 학교 중앙 현관으로 끌고 갔다. 마침 체육부장형과 씨름코치형도 퇴근하고 나오는 길이라 넷이서 그 녀석을 둘러싸고 앉았다.
경찰이 오는 동안 그 녀석과 이야기를 하며 몸을 살펴봤다. 몸에 상처가 아닌 곳이 하나도 없었다. 팔에는 크게 찢어졌다가 아물어서 지네처럼 보이는 상처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머리는 아까 차에 부딪힌 것의 영향인지 피가 흐른 자국이 있었다.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순순히 아이들에게 한 행동들을 다 인정했다. 놈을 연행하러 오는 경찰차가 왔을 때는 제일 반가워했다.
#Epilogue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계속 잡았냐고 물어본다. 잡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교장실에서 전화가 왔다.
“어유 김선생, 어제 큰 일 했더만? 경찰서장이 전화가 왔어. 고맙다고 말이야. 상받을 수도 있을거 같던데?”
아이들에게 전해주자 다들 환호를 하며 난리가 났다. 오후에는 경찰이 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조서를 쓰는데 아이들의 이야기에 경찰이 화만 낸다. 그들의 눈에는 암만 봐도 큰 일이 아니었던 거다. 아이들 푼돈 뺏는 잡범 정도로 밖에 보지 않았다. 결국 그 녀석은 며칠 뒤 풀려났다.
그 뒤 학교를 퇴근 할 때 몇 번 그 녀석을 마주쳤다. 역시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그 녀석은 나를 피해서 멀찍이 돌아서 가버렸다. 다음해에도 우리반 아이와 버디버디로 욕설하고 싸운 문제가 있어서 불러서 교실에서 화해시키고 했던 일도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학교에서 경찰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