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사건일지 - 우정 브레이커
#프롤로그
바야흐로 줄넘기 대회의 시즌이 왔다. 줄넘기 대회 종목은 크게 개인, 2인, 단체가 있다. 그 중 2학년에서는 개인과 2인 줄넘기를 한다. 학년 대표를 뽑아서 보내야 하기에 꽤 신경이 쓰이는 행사였다. 올해는 대회가 1,2,3학년을 묶어서 한다고 하여 2학년 담임은 마음이 살짝 놓인다. 선생님들과 협의를 한 후 개인은 전학생이 다 하고 2인 줄넘기는 하고 싶은 사람만 하기로 했다. "다 해야 해요?" 라는 질문이 나올까봐서 였다.(그러나 "저는 안해도 되죠?" 라는 질문이 나올건 예상을 못했다.)
#1. 순조로운 시작
2학년 세반을 전부 모아봐야 64명. 많지 않다. 강당에 모은 후 개인줄넘기를 연습을 시켰다. 2인으로 묶어준 후 한명이 뛰면 다른 한명이 갯수를 세주는 거다. 2학년이라 해도 여기까지는 순조롭다. 생각보다 서로의 줄넘기 갯수를 잘 세어 준다. 구보뛰기의 갯수도 세주고 쌩쌩이의 갯수도 잘 세어 준다. 기특한 녀석들이다.(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소한, 정말 사소한 "니가 잘못 셌잖아!" 이런 것들은 신경끄자.....끄자...... 야! 이제 그만해!)
2인 줄넘기는 맞서 뛰기와 번갈아 뛰기가 있는데 둘다 원하는 애들만 나오라 하니 서로서로 손을 잡고 잘 나온다. 이렇게 하면 별 문제 없이 다음주에 대회를 할 때 편하게 하겠다 싶다.
#2. 징조.
주말이 지나고 돌아온 월요일, 우리반 은진이와 유진이가 분위기가 묘하다. 한명이 다가가면 한명이 피한다. 평소 괄괄하던 은진이가 조금 새초롬해 보인다. 학교가 끝날 때 즈음 은진이가 오더니 이야기한다.
"선생님. 유진이가 자꾸 줄넘기 연습을 안해요."
"응?"
"아니~ 자꾸~ 유진이보고 연습하자고 하면 다른 애한테 가구요..."
"아.. 그래? 그러면 가서 다시 한번 이야기 해보지 않을래?"
"네~"
2학년 아이들의 자꾸는 보통 자신이 말할 때 안들으면 자꾸가 되지 않던가. 아마 한두번 말하고 말았을 거고 그 아이는 제대로 듣지 못했을테니 한번 더 말하면 잘하겠지.
퇴근할 때 즈음 문득 떠올랐다.
'어? 근데 은진이는 이런거로 와서 이야기 할 아이가 아닌데?'
#3. 폭발 .
다음날. 이제 두어시간있으면 학년 대표 선발을 한다.
여름 수업시간. 아이들과 가족의 종류에 대해 공부하고 종이책을 만들고 색칠하게 했다. 꽤 많은 단계지만 그래도 잘해내고 있는 아이들! 기특하다.
그런데.... 앞에서 두 아가씨의 대화를 들린다.
"유진아. 있다가 쉬는 시간에 연습하자"
"어. 나는 근데 희정이랑 연습하기로 했어."
"어?"
"희정이랑 짝 하려고"
"그걸 왜 걔랑해? 나랑하기로 했잖아!"
"나는 희정이랑 할거야.."
"야!"
은진이가 나즈막하게 화를 낸다. 나한테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는 관여보다는 관찰을 하는터라 수업 중 은진이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은진이는 열심히 책을 다 만들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며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평소 같으면 이미 짝을 두어번 때리고 소리도 뻑뻑 지를 아이인데 짝도 덜 때리고 데시벨도 낮은 거로 보아 기분이 좋지 않다. 쉬는 시간이 되었고 책상에 없드린다.
#4. 사건 접수
"은진아 선생님이랑 잠깐 이야기를 좀 할까?"
은진이를 데리고 나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진이가 갑자기 안한다고 해서 속상했다는 거다. 유진이도 부르기로 한다. 유진이는 꽤 당당하게 따라왔다.
사건 개요는 이러했다.
1. 원래 유진이는 희정이와 짝을 짓고 싶었다.
2. 희정이는 보람이와 짝을 한다.
3. 그때 은진이가 짝을 하자고 했다.
4. 은진이와 같이 연습을 했는데 주말에 은진이가 연습을 하자고 했다.
5. 주말에 나오니 은진이가 없다. 집에 가도 없다.(은진이네 가족은 갑자기 가족여행을 갔단다.)
6. 그때 희정이랑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등교길에 희정이에게 물어봤다.
7. 희정이가 은진이의 허락을 받고 오라고 한다.
8. 은진이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기회가 잘 안됐다.
9. 그래서 은진이에게 대회하는 날 오늘! 말한거다.
"어... 유진아? 누구랑 줄넘기를 하고 싶은 거야?"
"희정이요."
"희정이는 뭐라 했어?"
"은진이한테 허락받고 오래요."
"그럼 은진이가 허락을 안해주면 너는 은진이랑 해야 하는 거네?"
"네."
"은진이는 허락 해줄거야?"
"아뇨."
"그럼 유진이는 은진이랑 해야겠네?"
"저는 희정이랑 할거에요"
"희정이가 은진이 허락 받아야 했담서?"
"네."
"허락 안해주는데?"
"....."
"그럼 둘이 해야 하는거 맞지?"
"네."
"그럼 둘이 할거야?"
"아뇨."
"유진이가 허락을 안해주면 둘이 해야 하는 거잖아?"
"네."
"허락을 안해주니 둘이 해야지?"
"아뇨."
"음.... 그럼 누구랑 하려고?"
"희정이요."
"희정이가 허락을 받고 오라고 했잖아."
"네."
"허락 안해주네?"
"네."
"그럼 유진이랑 해야 하는거 아냐?"
"네."
"그럼하는 거다?"
"희정이랑요."
#5. 해결
아이들 둘이 서로 이야기를 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은진아. 가족여행은 니가 어떻게 할 수 있던 건 아니지만 같이 연습하기로 약속을 했던거잖아? 유진이는 그 상황에서 니가 약속을 어긴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거 같아. 가기 전에 상황을 설명해주던가 아니면 갔다 와서 사과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어. 그리고 유진아? 줄넘기 짝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오늘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건 아닌거 같아. 그리고 희정이는 너랑 하게 되면 보람이랑 못하는 거야. 희정이가 보람이랑 안한다고 하는 건지도 궁금해. 일단 지금 중요한 건 둘이 이야기를 좀 해봐. 같이 할 수 있는지 아닌지 말야. "
둘을 이야기하게 두고 교실로 와서 짝 줄넘기를 하기로 한 아이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희정이가 보람이랑 할거라고 나왔다.
"희정아. 선생님이 물어볼 게 있어. 너 유진이한테 은진이 허락 받고 오면 둘이 하겠다고 했어?"
"네."
"근데 보람이랑 하네?"
"사실요. 저는 보람이랑 하고 싶은데 유진이가 자꾸 물어봐서요.. 그래서요.... 제가 허락 받고 오라고 했는데요~..."
"아.. 그랬어? 다음부터는 그럴 때는 니가 같이 할 마음이 없다면 안된다고 해주면 더 좋겠어."
"네.."
그리고 둘을 데리러 갔다. 은진이와 유진이는 같이 온다. 일정 거리를 띄고 둘이서 같이 온다. 화장실도 같이 갔다 온 모양인데 살짝 애매한 모양새다.
"선생님 은진이가요. 그냥 됐다고 그래요."
"응?"
"안할거래요."
"아.. 그래. 유진아. 선생님이 희정이한테 확인했는데 희정이는 보람이랑 할거래. "
큰 눈이 꿈뻑꿈뻑 한다.
"그러니까 너는 선택해~ 은진이랑 안할거면 다른 사람을 구하던가 해야해. 근데 선생님은 너네가 그래도 연습했던게 있으니 같이 하면 좋을거 같고. 있다 5교시에 이야기해줘"
끄떡끄떡
# 에필로그
5교시 줄넘기 대회 시간이다. 유진이와 은진이가 두손을 잡고 해맑게 온다.
"선생님 저희 같이 할 거에요~"
"오케이~"
다행이다. 사실 안좋게 해결이 되면 부모님들에게 연락을 해서 상황을 이야기 하려고 했었다. 이런 일들이 큰 사건으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게 해결이 되고 둘은 화해를 했다.
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니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감정이 해결되니 순식간이다.
2학년. 같이 손 안잡거나 같이 짝을 안한다는 소리에 세상 잃은 것 처럼 울다가도 다시 손을 잡으면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은... 그런 학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