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제국 운영법] 8. 건빵, 그 강력한 힘
[진영제국 운영법] 8. 건빵, 그 강력한 힘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신의 학급을 운영한다. 진영제국 운영법은 본인의 학급운영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학급운영법은 본 교실에서는 효과가 있던 것들이다. |
#prologue
고학년 담임을 오래 하다 보면(아마도 중고등학교도 비슷할거라 보는데) 수업시간에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발표를 하지 않는 아이들(질문에 대답안하는 아이들)'이다. 대부분의 수업은 말과 말들의 만남으로 이어지는데 한쪽만(교사만) 일방적으로 말하고 다른 쪽은 반응이 없다면 그 수업의 성공여부를 떠나고 교사 스스로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공개수업이나 컨설팅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발표가 생명이다. 그런데 평소 발표를 안하는 아이들이 이날 갑자기 발표를 할리는 없다. 또한 교사가 갑자기 학생들을 발표를 많이 시켜보려고 꼬시는 것도 힘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평소 발표를 많이 하게 한다면 공개수업때도 자유롭게 발표를 할 수 있을텐데... 무슨 방법이 있을까?
여기서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고 나름의 답을 찾았다. 이 답은 내가 찾은 답이며 이것이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고학년 아이들과 학급을 운영하면서 손을 들고 있지 않은 아이들 때문에 고민이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1. 우연하게 본 옆반
(나는 평소 신규때 부터 옆반을 자주 다녔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옆반에서 찾기 위함이었는데 우리반이 안한 것이나 우리반에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많이 카피해왔다. )
우리반 녀석들은 발표를 거의 하지 않아서 만세를 시킨 후 발표를 시키던 나는 옆반의 신기한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들이 전부 손을 들고 발표를 하는 것이다.
이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옆반 선생님 께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발표를 잘하죠?"
"뭘 먹이면 돼~"
#2. 그래서 등장한 건빵
아이들이 발표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들이 발표를 많이 하지 않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고자 부던히 노력했었다. 또한 아이들이 발표한다는 건 많은 노력(생각+실행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점차 알게 되었다.(교사의 수업이 재미 없는 것도;;;)
그러던 차에 옆반에서 먹일 걸 먹이면 된다는 답을 찾았다. 남은 건 뭘 먹여볼까였는데 이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다.
2000년대 초반에 교생실습 나갈 때 먹을 걸 주는 선배들이 많았다. 그런데 젤리를 먹다 목이 막혀 죽은 아이도 있었고 멸치나 땅콩 같은 주전부리를 준 경우도 있는데 다들 문제가 있었다고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런 고민을 하다 학교앞을 지나가는데 건빵을 파는 봉고가 보였다.
10KG에 만원.
오!!! 싼데?! 라는 생각과 함께 건빵을 구입했다.
#3. 어떻게 줄 건데?
막상 주기로 했지만 먹을 걸 준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주기로 했으니 기준을 정해야 하지 싶었다.
"오늘부터 발표하는 사람은 건빵을 줄거야."
"오~~ 몇개 줄건데요? 하나당 하나인가요?"
"아니. 발표한 그날 하루에 한 개~"
"에이~~"
이렇게 시작이 된 건빵은 그날부터 인기식품이 되었다. 아이들은 단순히 하나의 건빵을 먹지만 집에 갈 때 행복해 하면서 갔다. 그렇게 보내려니 무언가 아쉽다. 그래서 해리포터를 떠올리며 건빵을 줄 때 한가지를 더 추가했다. 바로 건빵의 맹맛을 이용하는 것이다.(건빵을 먹어보면 알겠지만 고소함 말고는 아무 맛이 없다.)
"오늘 건빵은 양념치킨 맛이야."
"에이~ 그게 뭐에요~"
"너는 지금부터 먹는 건빵은 양념치킨 맛인거야~"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건빵을 주었고 상상력이 좋은 아이들은 건빵을 먹으며 오늘 집에 가서 무슨 간식을 사달라고 조를까를 생각하며 집으로 갔다.
전체적인 분위기의 흐름이란 것이 있다. 건빵을 줄 때 아이들 몇명만 좋아하고 다른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건빵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오늘은 무슨 맛인지 궁금해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 분위기는 수업의 참여로 이어진다.
그 당시 우리반에 대학생처럼 행동하는 남학생이 있었다. 자신이 학교에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던 학생이었다. 이 친구는 수업시간에도 손을 들기는 커녕 의욕없는 눈빛으로 참여도 안했던 학생이었는데 건빵을 준 날 이후부터 매일매일 발표를 하는 학생이 되었다.
#4. 왜 하나씩인가?
첫번째 이유로는 교사인 내가 학생들에게 보상으로 무언가를 주는 것이 꺼려졌었기 때문이다. 수업에 참여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기에 당연한 일을 하는 데 보상을 주는 것은 심리적인 거리낌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씩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두번째 이유로는 희소성 때문이다. 건빵을 마구잡이로 나눠주면 아이들이 건빵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거 같았다. 그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하나씩 준다고 할 때는 아이들이 싫어하려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나씩 주는 건빵에 목말라 했고 발표에 열심히 참여하기 시작했다.
#5. 건빵에 상상력을 넣어주다.
위에서 적었듯이 건빵을 주면서 건빵에 대한 상상력을 붙여주었다. 오늘은 양념치킨맛, 다음날은 떡볶이맛.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피식피식 웃는다. 이때 눈을 감고 먹으면서 상상을 하게 한다. 이때는 표현력이 풍부한 학생을 이용하면 효과가 훨씬 좋았는데 이 재미에 아이들이 건빵을 먹는 것을 더 기다리기도 한다. 기다리며
"오늘은 무슨 맛이에요?" 라고 물어보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며 자신이 원하는 간식의 맛을 요구하는 학생들도 생긴다..
이건 해리포터에서 귀지맛 사탕을 먹는 장면에서 모티브를 삼아서 해본 것인데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효과가 꽤 좋았다.
#6. 단순한 건빵이지만..
별거 아닌 건빵이었다. 그런데 건빵을 통해서 학생들이 발표를 시작하고 발표를 시작하니 교사인 나는 수업이 즐거워 지고 수업을 더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학생들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었다.
이때 생각하게 된 것이 <의도하지 않은 효과>다. 우리는 많은 의도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그 의도를 가진 행위나 도구는 의외로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빵을 가지고 전담수업, 고학년 수업, 저학년 수업에 임해봤다. 그 어디에서도 수업에서의 참여율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부모 상담을 해보면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우리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가 건빵이 되었어요. 그리고 자꾸 무슨 맛을 상상하며 먹더라구요~"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와서 자랑하더라구요~"
단순히 하나의 건빵이 아이들에게는 상처럼 느껴져서 그 건빵을 받은 것을 집에 가서 자랑도 한다. 아이들에게 상은 별 것이 아니다. 상장만이 상이 아니라 그 수업에서 학생이 보상을 받으면 그것이 상이다.
#7. 가끔 낮부끄러울 때도 있다.
2학년 담임을 할 때다. 그 아이들은 누구보다 건빵을 더 좋아했다. 3월 한달동안 발표하고 건빵을 먹고 하던 아이들과 에버랜드 사파리로 소풍을 갔다. 버스를 타고 곰우리를 갔는데 곰이 갑자기 재주를 부린다.
'엇? 뭐지?'
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뒤에서 우리반 꼬맹이들이 이야기한다.
"와! 쟤네 건빵 먹는다."
"우리랑 똑같네~"
이때는 참 민망했다.
#. Epilogue
보상에 대한 논의는 체벌에 대한 논의만큼 HOT하지 싶다. 건빵같은 먹을 것으로 일년내내 보상을 주는 건 이런저런 이유로 쉽지 않을 수 있다. 학기초에 발표훈련을 시키면서 건빵이나 먹을 것의 보상을 주고 학생들과의 관계나 수업에 참여도가 많이 정착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선택이다. 그래도 학생들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 수업에 참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다.
혹여 당신의 교실이 아이들이 발표를 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실행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