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스승이 없다는 그대들에게
기억나는 스승이 없다는 그대들에게
항상 스승의 날 즈음이면 들리는 말들이 있지.
"나는 존경할만한 선생님이 없었어."
"나는 기억나는 선생님 하나도 없어."
왜 그럴까? 개인적으로는 기억 안나는 게 디폴트라고 생각해.
월드컵 기억해?
4년에 한 번 나가지.
거기 나가는 베스트11이나 감독 말고, 스태프나 시합엔트리에는 한 번도 못들어간 후보들 기억해?
다 기억나니?
위의 예는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12년 학교 다니면서 당신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은 최소 50명이 넘을 거야.
그리고 학원도 다녔을 거고 태권도도 다녔을 거고 그 사람들도 우리 머리에는 다 선생님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데 다 기억이 날까?
아마 그대가 성인으로 될 때까지 100명도 넘는 선생님들을 만났을 건데 말이지.
그리고 말야.
보통 으르신들이 말하실 때 나 어릴 때 선생님은 뭔가 강렬한 기억을 남겨주신 분들이야
내가 도시락 안가지고 왔을 때
내가 월사금이 없을 때
내가 수학여행비가 없을 때
내가 전교회장 나가고 싶은데 돈이 없을 때
내가 다리가 다친 상황에서 수학여행 가고 싶은데 거기가 설악산일 때
정말 내 학창시절 인생에서 강렬한 어려움이 있을 때 격하게 그걸 뒤집어준 분들을 은사님이라 칭하는 경우가 많지.
그건...
사람의 인생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야.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많더라고
내가 진짜 열심히 학생들을 도운 적이 있어.
내가 심성수련때 우리반 아이가 나무를 타야 하는 걸 못올라가서
내 팔로 버팀목을 만들어 주고 애가 그 팔을 밟고 올라간 적이 있거든?
한 3~50 키로 사이인 아이가 내 팔을 밝고 올라간거지.
팔 아작 날 뻔했어. 엄청 시큰댔고.
나는 나를 희생했는데
그 아이는 기억할까?
한 번도 고맙다는 이야기 들어보지 못했고 그걸 기대하지도 않았어.
그냥 그런거야.
아이의 상황이 힘들 때 그 상황을 도와준 어른이 있는 것.
그게 그 시절 은사야.
근데 지금은 말이지
그럴 일들이 적어.
아이가 그 학년에서 배울걸 잘 배우고 올려보내면 된거야.
교육의 성격 중 하나가 그런거거든.
교육은 반복의 산물이야.
배우고 끝이 아니라 많이 반복해서 내재화 시켜야 그게 효과가 나와.
한번의 깨달음으로 무언가를 얻는 걸 원한다면
그건 일반적이지는 않아.
(그리고 사실 그 한 번의 깨달음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과 준비가 필요해)
한 번에 알고 잘하면 우리는 그를 '천재'라 부르지.
물론 너의 입장에서는 어른인 교사가
힘들었던 나를 안도와주고 그런게 섭섭할 수 있지
맞아 그럴 수 있어.
근데 지금 세상에서는
그대가 잘 다닐 수 있도록 옆에 있어준 그 분들이
교사야.
그대가 복도에서 뛸 때 뛰지 말라고 말하셨을 거고
친구에게 욕할 때 하지 말라 하셨을 거야.
수업시간에 교과내용 잘 가르쳐주시고
연필 바로 집으라 하시고
그게 교사야.
그러니 기억안나는게 당연해
학교다닐 때 돈오와 점수를 배웠을 거야.
돈오는 단박에 깨닫는 걸 말하고
점수는 점진적인 수행을 말하지.
근데 돈오가 그냥 오는 게 아니야. 수행을 하다 한번에 깨닫는거지
점수는 차근차근 깨닫는거고.
교육이란 그런거야. 준비가 되어야 변화가 와.
뭔가 나한테 항상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고 새롭게 만들어준 사람만이 교사고 스승은 아니야.
서로 상황이 되어야지.
누군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고
누군가는 줄 준비가 되고.
그게 없으면 그대가 원하는 그건 영원히 없어
Ps. 나도 누군가에게는 좋았던 선생님, 누군가에는 기억안나는 사람, 누군가에게는 ㄱㅅㄲ로 기억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