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물들다]5월, 광주의 아픔을 느끼다.
이번 주에는 특별한 날이 보인다. 5월 18일.
6학년 아이들 졸업 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작가 초청수업이라고 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오늘은 5월 18일>이라고 하였다. 그림책 한권으로 시작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기록해 보고자 한다.
<라온한국>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수업했던 어느 날, 서진선 작가님의 <오늘은 5월 18일>을 읽어주었다. 다 읽고 나서 상기된 얼굴로 던진 첫 질문은 “진짜 있었던 일인가요?”였다.
5.18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글을 썼다. 어떤 아이들은 서평을, 어떤 아이들은 작가에게 편지를. 그리고 그 글들을 모아 작가에게 전달했다. 그냥 쓴 글이 아니라 같이 울고, 아파했던 글이라 누군가에게라도 보내고 싶었었다. 그 때까지는 작가를 만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글을 잘 받았다는 작가님의 연락을 받았고, 그리고 교실에 한번 오실 수 있냐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를 던졌는데, 그것은 엄청난 일의 시작이었다.
<끝나지 않은 민주화 운동> -진00
'이제는 더이상 총놀이를 하고 싶지 않다'
5.18민주화 운동, 수많은 이들의 가족, 행복, 목숨을 앗아갔다. 전 대통령들의 독재체제에 피해를 받은 국민의 분노로 일어난 일인데 왜, 어째서 희생, 고통은 온전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걸까.
오늘은 5월 18일에는 총이 많이 등장한다. 그 총이 무엇일까. 군대에서 사용하는 그 총이 과연 그저 전쟁할 때, 혹은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그렸을까. 다른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책의 앞, 뒤의 면지를 보면 똑같은 총그림이 그려져있다. 우리반 친구들은 총이 희생된 사람들을 나타내는 거싱 아닐까 추측을 했지만, 나는 자꾸만 총의 의미가 끝나지 않은 민주화 운동 같은 시위, 혹은 전쟁 같다. 그래서 책 속에서도 아이가 총을 버린 장면과 "이제 더이상 총놀이를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 이 끔찍한 상황이 멈추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전쟁과 시위를 그만두고 생명이 사라지는 일을 더 이상 겪지 말자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5.18민주화 운동의 아픔과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기를 바라는 책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5.18민주화 운동을 제압하는 일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그 일로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었으며, 노력과 희생으로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루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작가초청이 정해지고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다행히 반에서 학생들은 준비를 잘해 주었다. 다양한 공연준비도(낭독극, 그림책 연주), 환영 분위기도 만들어 주었고, 서평도 모두 완성해서 책으로 엮기 까지 하였다.
서울에서는 흔한 일일지 몰라도 지방에서 이렇게 작가를 모셔서 반에서 깊이 있게 공부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선생님, 도착했어요. 현관이에요.”
나도 모르게 뛰어나가 “선생님~”하면서 소녀 팬이 되어 맞이하였다. 엄청 커다란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대프리카라 불리는폭염에 이걸 들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생각하니 죄송하기도 했다. 작업 중일 때는 강연도 잘 안한다고 하시는데, 곤란하게 한 것은 아닐까 계속 마음이 쓰였다.
교실 문을 여니 학생들의 눈빛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정말로 이것을 쓰신 분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싶다. 연수의 긴장된 목소리 환영인사 ,지원이의 책 읽기, 남학생들의 연극이 끝나고 예안이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본래 잘 떨지 않는 예안인데, 긴장한 티가 많이 났다. 어렵게 부탁했는데, 선뜻 연주해주겠다는 예안이에게도 고마웠다. <엄마에게>의 가용이 마음이 떠오르면서 예안이 연주를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인연>이라는 제목이 가용이와 엄마의 슬픈 인연으로 이어지면서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 왜 역사로 이야기를 쓰세요?”
“대부분, 95%작가들은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잖아요. 저만이라도 역사를 다루고 싶었어요. 숨겨져서 밝혀져야만 하는 이야기를 제가 쓰고 싶었어요.”
아이들과의 질문 시간에 모든 아이들의 모든 질문을 상세히 답해 주셨다. 무려 한시간이나 넘는 시간을 말이다. 온 몸으로 집중해서 들어주시고 진지하게 대답해 주셔서 아이들도 온 마음으로 몰입했던 순간이었다.
1부 순서가 끝나고, 점심시간 동안 1인극 준비를 하신다고 칠판에 천을 덮고, 철조망도 둘러보시고 의상도 갈아입으시고 음향도 체크하셨다. 작은 교실에서 준비하시는데도 큰 무대에서 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에 다시 또 감동하였다. 미리 정보를 조사해 보았을 때 1인극 장면 사진을 보긴 했는데 실제로 어떨까 무척 궁금했다.
교실 조명이 켜지고, 연극이 시작되었다. 동생이 되었다가 누나가 되었다가 군인도 되었다가 그 때마다 표정과 몸짓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사를 하실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거렸다. 작가님은 가슴속 깊은 곳에 어린 시절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꺼내어 작품으로 만들고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표현해주시면서 그 때의 기억들이 엉켜 괴롭지는 않으실까?
어떻게든 그 슬픔을 꺼내어 표현해야만 한다. 작가님의 자신의 트라우마를 그림책으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잊혀진 역사를 해결해 나가는데 초석이 되고 있다.
그림책, 음악, 그림, 소설, 동화 등등 표현해 내는 모든 것에는 자기가 들어있다.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시면서 하신 이야기들 모두 작품에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이 반영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아롱이, 무화가 나무, 평상, 그리고 그 때의 슬픔마저도 모두 말이다.
하루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5월마다 이 날이 떠오르겠다.
우리 반의 작은 씨앗들은 꽃을 피워 그 향기를 은은하게 퍼트릴 것이다.
영상으로 기록한 작가와의 만남
https://youtu.be/DCfEasV30U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