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는 졸업선물_ 그림책 창작에 관하여
3월부터 함께 읽은 그림책이 50여권쯤 되었을 때, 드디어 그림책 창작을 권유했다. 그동안 많은 그림책 속에서 그림과 글의 관계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었기에 그 작업이 결코 낯설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우리학교는 본인의 창작 그림책 출판물이 졸업선물이다. 보통 문창과나 미대 졸업 작품으로 그림책 제작과정 논문이나 그림책 출판을 한 적을 본적이 있지만 초등학교에서 졸업 작품을 창작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인 것 같다. 이 졸업선물을 기쁘게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해라’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교사가 유도를 잘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기한에 임박해서 닦달한다면 괴로운 선물이 되고 만다.
1학기 동안은 많은 그림책을 접하였고, 2학기 되어서 이제 한번 창작해보고 싶은 학생들이 있는지 슬쩍 떠보았다. 반에서 2/3 정도가 빨리 시작해 보고 싶다며 창작 계획서에 대해 의논해 보았다. (1:1로 기획의도와 전개를 이야기 나누어본다.) 나머지 1/3은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학생들이어서 이때는 관심사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지 상담을 통해 씨앗을 만들어 내었다.
'나도 작가다' 작품 제작기간은 2달 정도다. 작품 계획서가 통과된 아이들은 최종 스캔할 종이에 옮겨 그리고 글과 그림을 보완하여 완성한다. 마감날짜가 다 되어가자 초조한 기색이 보인다. 막판에 다시 뒤집고 만든 아이들은 새벽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이 힘든 아이들은 내가 좀 도와주기도 하고, 제목을 고민하면 함께 생각하기도 하였다. 교사는 이런 창작활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끊임없는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편집자의 자세로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탄생한 23권의 더미북이 완성되었다. 나도 아직까지 한권의 창작물을 완성해 본 적이 없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창작물을 만들어낸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만든 작품들 속에 글을 쓴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어서 역시 이런 작업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소개>
1. y- 돌멩이야 안녕?
y는 교실에서 너무나 얌전하여 의식하지 않으면 대화를 못하고 지나가는 날도 생긴다. 몇몇 친한 친구들과는 교류가 있는데 반 전체에서 소극적인 학생이다. y의 작품을 보고 다른 선생님들은 ‘강아지똥’이 생각난다고 하였는데, 나는 y가 떠올랐다. 돌멩이는 결국 마지막 그림에서 등장하는 휠체어를 탄 아이지만 이 아이는 비단 장애를 가진 아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y가 그렇게 이야기 하였다.) 돌멩이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y가 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을 쓰면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기회도 된 것 같다.
2. j-상자를 보았어
j는 우리 반에서 있었던 뒷담화 사건을 동물들에 빗대어 그림책에 담아냈다. 그 당시 별것 아닌 소문이 퍼지고 퍼져 당사자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에게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여우를 통해 자신을, 우리 모두를 돌아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3. h- 아이스크림
h가 한 작품은 단순하지만 아름답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그리며 아이스크림에 의미를 붙였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빙빙바- 우리는 다르지만 즐겁다' 그룹을 지어 놀던 여학생들이 12명 모두 똘똘 뭉쳐 지내며 가장 표정이 밝아진 것도 h다. 마지막에 '혼자가 아니에요'는 우리반 여학생들을 그려놓은 듯 하다.
4. s- 토끼의 우주구슬
s의 작품은 백희나 작가의 ‘달샤베트’의 ‘달 물을 얼려 나눠주는 상황’을 가지고 와서 제작하였다. 시원시원한 그림과 글씨체가 보는 사람도 시원하게 한다.
5. a-1+1=3
가장 재치있다고 생각한 작품은 a의 ‘1+1=3’ 이다. 제목만 보고서는 절대로 어떤 내용이 나올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h의 경우처럼 우리반 사건을 씨앗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그 사건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등장 인물들을 더하여 ‘도서관’이 생긴 유래를 만들어냈다. 모두가 그녀의 재치에 극찬을 보냈다.
두 달 동안 창작 그림책 수업을 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학생들과 작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정말 ‘작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졸업 선물로 의미 있는 창작 그림책 제작을 추천합니다. ^^
<창작그림책 제작 tip>
1. 교사는 감독관이 아니라 작가님을 위한 편집자의 역할을 해야한다.
2. 작품의 씨앗을 발견하기 위해 작가와 편집자는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3. 그림을 힘들어 하는 학생에게는 단순화 할 수 있게 도와준다.
4. 친구들과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5. 작품에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많이 칭찬하고 격려한다.
6. 교사도 함께 아이디어를 주고 작품에 애착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