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물들다]이건 내 구덩이야.
.
1976년에 일본에서 발간된 그림책이 4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것이 놀랍다. 빠르게 변하는 출판시장에서 세월을 거슬러 오를 만큼 대단한 이 책이 너무 기대되었다. 무엇보다 다니카와 순타로가 사노요코의 전남편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와우!!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 것 같은데 글만 보면 말이다. ‘사노요코’의 ‘백만번 산 고양이’를 보여주기 전에 이 분의 책을 먼저 아이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어느 심심한 날 히로가 구덩이를 판다. 엄마가 동생이 옆집 슈지가 이것저것 간섭해도 묵묵히 구덩이를 판다. 땀이 비오 듯 흐르고 삽을 잡은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지만 묵묵히 계속 구덩이를 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어깨에서 힘이 쭉 빠지며 그 구덩이 속에 쪼그려 앉는다. 비로소 그 때서야 히로의 표정이 온화해진다. 처음부터 여기까지 무표정한 얼굴에 드디어 평온을 찾는다. 흙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맡으며 히로는 생각한다. ‘이건 내 구덩이야’라고 말이다. 엄마가, 동생이, 옆집 슈지가 이것저것 간섭해도 묵묵히 구덩이 속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히로는 문득 위를 올려 다 보았다. 구덩이 속에서 바라본 하늘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간다. 히로가 바라본 그 장면이 책 표지의 제일 앞표지의 그림이다. 동그라미 안에 나비가 지나가는 장면. 그리고 올라서서 구덩이를 들여다본다. 구덩이는 깊고 어두웠다. 그 장면은 맨 뒤표지가 된다. 힘들게 판 구덩이를 다시 메우고 다시 원래의 땅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구덩이’는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림책이다. 한 아이가 구덩이를 파고 덮는 단순한 전개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직감적으로 안다. 함께 둘러 앉아 읽어줄 때 가까이 앉아 있으면 아이들 표정이 엄청 자세하게 보인다. 알 것 같은 아이도 있고, 전혀 모르겠다는 아이들도 있다. 이럴 때는 무조건 궁금한 것을 최대한 많이 적게 한다.그 질문을 시작으로 그림책을 해석해 나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히로가 하는 구덩이 파기는 삶의 과정 같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구덩이를 덮고 나서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히로의 성장의 과정 같다고만 생각하고 거기까지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예안이가 "선생님, 애벌레가 지나온 자리가 사라졌어요.!" 라고 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유레카!!! 외치고 싶었다. 그렇다면 구덩이를 덮고 난 후에 애벌레 자리는 땅 속에서 사라지면 안 되는데 사라졌다는 것은 히로의 상상을 뒷받침 해 준다. 히로는 실제로 구덩이를 판 것이 아니라 가상의 구덩이를 파서 들어 간 거다. 자기만의 공간 속으로 말이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는구나)
구덩이에 앉은 히로의 모습이 마치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엄마의 뱃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과 출산 후에는 이렇게 뭐든 그렇게 보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야기 하니 정협이가 "그럼 애벌레가 지나온 길이 탯줄 같은 거에요?"말했다. 그러고 보니 히로가 앉은 구덩이에 탯줄 같은 선이 있다. 역시 아이들은 내가 못 본 것 까지도 본다. 그리고 작은 상상력을 가진 나에게 큰 힘을 키워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반 아이들이다!
<책에 대한 질문 쓰기>
애벌레는 왜 등장했을까?
히로는 구덩이를 왜 팔까?
왜 나비는 갑자기 등장했을까?
작가님도 구덩이를 파고 싶었을 때가 있었을까?
애벌레가 가는 길이 왜 없어졌을까?
구덩이는 무슨 의미를 뜻할까?
구덩이를 파는 아이는 왜 표정이 어두웠을까?
자신이 히로라면 구덩이를 팔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가장 많이 나온 질문 두 가지는 ‘작가의 의도’와 ‘구덩이의 의미’였다. 아이들의 개성만큼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모둠원끼리 이것저것 이야기 나누다가 작은 조각 하나씩 발견해 나가며 탄성이 나온다. (내가 유레카 할 때처럼 말이다)
Q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힘든 것을 천천히 해결하자
-가끔 힘들면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보고, 있다면 찾아보자. 혹 그것이 가상일지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도전해라.
-누구나 자신만의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모든 사람은 아픈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다.
Q 히로에게 구덩이는 무슨 의미일까?
-자신만의 공간-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 혹은 소중한 것 , 나의 내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은 방
-혼자 있고 싶은 것을 구덩이라 표현한 것 이다. 구덩이를 파는 것은 히로가 어떤 것을 잘못한 것이고 구덩이를 덮는 것은 그 일이 잘 풀리도록 노력하는 것 같다.
-히로에게 무슨 일이 주어졌다. 그 일을 해내는 과정
-혼자만의 고민, 걱정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
-아픈 일도 있고 그것을 겪어 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구덩이는 히로에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다.
-구덩이는 히로에게 잠시 쉬어가는 공간
우리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히로는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이고 그래서 그 시간을 견디고 단단해 지는 중이다. 나중에 지금을 바라보면 잘 지나왔다고 대견하게 바라볼 거라며 결론을 내린다. 역시 그림책은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 글과 그림을 바라보고 공감하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또는 친구들과 힘들었을 때 구덩이를 파고 숨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영원히 그곳에 머물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마음이 치유되었을 때 다시 올라서서 상처를 덮겠다고 한다. 그런 시간들도 나에게 소중하다며 자신의 구덩이를 사랑하겠다고 말했다.
00겸
나는 이 책을 읽고 너무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주인공 히로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그런걸꺼라고 짐작을 하였고 나는 친구들의 생각에 대한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내가 겪었던 일을 토대로 해석해보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삐쳤을 때 '내가 이 애들이랑 절교를 하고 혼자 지낸다면 어떨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난 이 애들말고는 친하게 지낼 애들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 '여기서 내가 삐지면 나는 영영 외톨이로 지낼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그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 책을 해석할 때 주인공 히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것에 대해 글쓴이는 혼자는 좋지만 혼자에서 벗어날 힘도 필요하다라는 말을 전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00안
히로가 구덩이를 팠다. 자신만 들어가고 쪼그려 앉을 수 있는 구멍을 팠다. 친구와 동생도 무시하고 구덩이를 팠다. 히로는 무슨 일을 겪었을까? 일단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친구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누구에게 속상한 일이 있었을까?
히로가 구덩이를 파던 중 아빠는 히로에게 말한다. "천천히 하렴" 사람은 언젠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 혼자 곰곰히 생각하고 풀어야 하는 중요한 일. 그럴 때가 우울한 일, 사춘기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구덩이를 파서 생각하고 고민해 보는 구덩이를 판다. 그러나 나중에 히로가 구덩이를 메우듯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만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남들에게 다시 다가갈 수 없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 하는 '우울증'처럼 말이다.
그 사람들도 이제는 자신의 구덩이를 메우고 다시 남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사춘기 라는 구덩이도 그것이 끝난 후에는 건강하고 단단하게 메워져 히로처럼 '이건 내 구덩이야' '이건 내가 지나갔던 내 소중한 시간들 이야'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힘든 일을 겪으면 구덩이를 파고 싶고 그곳에 들어가 잠시 쉬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말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처럼 그 시간을 딛고 일어나 다시 나가야 하는 힘도 자신에게 있다. 마치 나에게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올해 우리 반에게는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때로는 이렇게 독서 토의를 할 때 동아리 선생님들과 이야기 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좋은 그림책을 좋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고마워. 얘들아.(이런 시간은 내가 제일 좋하는거 아니지?^^)
※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
1. 사노요코- 백만번 산 고양이
2. 김효은- 나는 지하철입니다.
3. 김장성- 민들레는 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