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은 처음입니다
책 읽어주기 시작한 이후, 장편은 7년 만에 처음이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가장 흥분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요즘 우리 교실에서는 ‘역사채널 e반’이라는 이름으로 주제중심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6학년 1학기 1단원 사회는 22차시로 매우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이렇게 교과서로만 차시에 맞게 가르치면 아이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외운 채 끝이 나버릴 것 같은 마음에 시작된 책 읽기였다. 역사를 배운다는 건 결국 그 시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서 시작해야한다.
소단원 한 개씩 마다 한 작품을 읽어주어야지 생각하고 보니 소단원1은 영조에서 시작되어 동학농민운동으로 끝이 난다. 여기 딱 맞는 작품이 바로 「서찰을 전하는 아이」였다.
단편이나 그림책은 짧은 시간에 완결된 작품을 읽어주고 생각을 나누거나 더 넓히는 활동을 하는 패턴이었다면, 장편은 처음이라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감이 없었다. 선생님들의 사례는 많이 보았지만, 막상 하려니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우선 읽었다. 목차를 보고 18장이기에 18일간 읽으면 되겠다 싶었다.
드디어 시작했다. 그냥 읽어주기만 하니 또 몹쓸 교사병이 도저서 뭐라도 쓰라고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몰라 6장까지는 그냥 읽어주기만 했다. 아이들도 큰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7장이 끝나던 날,
처음으로“더 읽어줘요. 조금만 10분만 더 읽어줘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야 이 작품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책 읽으면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겨도 아이들이 싫어하지 않을 것 같아 제안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도 글자를 알아가며 대가를 지불하기도 하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목소리로 재미난 이야기 들려줬으니 너희도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줄래? 그런데 돈은 아니고, 이 책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 해주는 걸 대가로 받아도 되겠니?”
다른 선생님들은 읽기 전,중,후 활동을 하시기도 하고 옆길 새기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하시던데 나는 혹시나 아이들이 싫어해서 이 작품 자체도 싫어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물어보는 질문도 일주일이 지나서 처음으로 물어보았다.
거의 스스로 발표하지 않는 윤0이가 손을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처음에 아이 아빠가 엄마 이야기를 한 건, 죽을 것을 예상하고 그런 것 같아요.” 라고 말해주었고, 장난스러운 말을 많이 하는 재0이도 “약방 어른에게 돈을 깎고 글자를 알아낸 게 아이가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 두 아이의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드디어 아이가 서찰의 10글자 모두 알아내던 날! 우리도 마치 우리가 알아낸 양 흥분하였다. ‘오호 피노리 경천매 녹두’를 암호처럼 외치고 다니니 다른 반 아이들은 무슨 말이냐며 신기해했다. 이제 이 작품에 기대에 아이들에게 생각을 물어보는 것도 자연스럽게 되었다.
“우리 10글자 다 알아낸 기념으로 아이에게 응원의 서찰을 보내자! 미래에서 온 서찰!”
- 아빠가 돌아가셔서 많이 슬플 것 같은데 혼자서 서찰을 전하러 다니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하나씩 하나씩 비밀을 풀면 서찰을 전할 사람과 전하는 곳을 알 수 있을 거야. 서찰을 꼭 전하기를 바라.
-너는 경제적이고 독립성이 높아서 부러워. 너의 여정을 응원할게.
-아이야, 너는 정말 용감한 것 같아. 왜냐하면 부모님을 잃은 슬픔이 많이 클 텐데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열심히 서찰을 전해주러 다니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야. 네가 꼭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아이야, 네 서찰의 내용을 내가 알 것 같구나. 확실하지 않지만 경천이라는 사람에게 녹두장군 전봉준이 잡혀 있는 것 같구나. 아마 그에게 서찰을 전하면 될 것 같아.
-아이야, 난 너를 응원하고 있어.
힘든 마음 없애고 꼭 힘을 내어 서찰을 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랄께
-나도 한자 10자를 알 때 좋았어. 김진사 어른께 대가를 요구한 것도 멋있었어. 힘내!
계획대로라면 서찰을 전하는 아이 마지막 장을 배우는 날과 동학농민운동을 배우는 날이 딱 맞아야 하는데, 읽어주는 날이 더 부족해서였는지 읽기 시작한지 8일째 되던 날, ‘동학농민운동’을 먼저 시작했다. 수업 내내 작품에 나온 배경과 역사적 사실이 연결되는 것을 확인하며 교과서에 나온 결론을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먼저 보게 되었다. “전봉준은 부하의 밀고로 처형당했다.”
“선생님, 꼭 책의 결말이 사실이랑 같지 않을 수도 있죠?”
아이의 질문에는 간절함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서찰을 전하는 아이> 10장을 읽었다. 읽는데 내 몸이 떨려왔다. 내 목소리가 내 머리를 울리며 교실 안을 울리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이 작품을 온 몸으로 읽고 있는 듯했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도사님인 노스님이 훗날 전봉준 대장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아버지를 시켜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녹두 장군이 아직까지 동학 농민군을 지휘하고 있으니, 경천이란 사람이 아직 녹두 장군을 팔지는 못한 것이다.
'하루빨리 서찰을 전해야 된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문틈 사이로 이제는 제법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붉은 흙 속에 누워 있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마음이 저려왔다.
p105-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