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는 쉽다(인문학 수업 2)-어서와, 영화는 처음이지?
중학교는 방과후학교를 교사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 특성상 지식교과 위주의 보충수업 개념으로 방과후학교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즈음 교육의 트렌드(?)로 인해 특기적성 프로그램이 많이 운영되고 있다.
국어와 관련된 강좌는 대부분 전통적으로 글쓰기, 토론, 독서 등과 같이 학생들이 듣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새로운 방과후를 해보고자 여러가지를 찾다가 '영화를 읽는다'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다.
영화를 읽는다는 것은 영화는 보는 것이라는 그동안의 개념에서 벗어나 영화 안에 담긴 의미를 읽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렇다. 국어선생으로 뻥을 잘 쳤던 나는 "영화를 통해 인문학을 만나다"라는 거창한 강의명을 만들어냈고 에듀콜라와 전국모(전국국어교사모임), 카톰 등을 통해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먼저 시작한 것은 미디어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작권에 대한 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무료사이트를 활용, 영화 등을 보는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교사이지 않은가! 이에 넷플릭스, 왓챠 사이트(내돈내산)에 가입을 했고, 혹시 몰라 하나하나 추가하다보니 현재 웨이브, 티빙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특성상 위 네 사이트의 교집합보다 차집합이 많은 현실에 어쩔 수 없이 모두 가입하게 되었다.
<내돈내산 인증>
효과가 있었다. 아이들이 몰려왔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합법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어 강좌 소개를 다 읽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나는 분명히 기재했다.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고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든다는 것을
처음으로 만든 강좌이다보니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선정하고 어떤 식으로 수업을 운영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 먼저 말하면 망했다. 아니 자세하게 말하면 한 학기는 망했다.
망한 이유는 명확했다. 나의 영화보는 눈높이와 아이들의 영화보는 눈높이가 맞지 않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혹, 나와 같은 실패를 겪지 않도록 수업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공유하면 다음과 같다.
1. 아이들은 유튜브에 익숙하다. 2시간이 넘는 영화는 무리다.
2. 아이들은 중1 기준 07년생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 이 친구들은 태어났다. 따라서 2010년 이전 영화에 대한 공감이 어렵다.
3. 게임이 익숙해진 남자 아이들은 때리고 부수고 총쏘고 찌르는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다.
4. 믿기지 않겠지만 영화를 단 한 번도 보지 않은 친구도 있다. 이유가 대박이다. '그냥...'
5. 남자 아이들은 감정표현이 드물다. 즉, 영화를 보고 감정의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감정이 없다.
6. 아이들의 추천을 믿지 말아라. 현재 최고의 영화는 '귀멸의 칼날'이다.
한 학기를 통해 얻은 위 사항들을 토대로 찬찬히 새로운 영화 리스트를 작성했다.
(보태기- 원래 디즈니 만화영화를 통해 수업을 진행하려 하였으나 디즈니가 OTP시장에 참전하게 되면서 모든 사이트에서 디즈니 관련 만화영화가 내려갔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은 영화 두 편을 고르면 다음과 같다.
그린북-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로 잔잔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것에 사실 다소 의아했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흑인과 이탈리아계 백인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공감의 요소였다. 학교라는 사회에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을 만나 우정을 쌓는,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느꼈던 것이다.
세 얼간이- 유명한 인도 영화이다.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공감을 얻은 이유는 다소 슬프지만 '공부'이다. 교육열이 한국과 유사하게 높은 인도의 현실을 해학적으로 비판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라는 다소 철학적 질문을 어렵지 않게 풀어낸 영화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을 '공감'이다. 짐승이라고 일컬어지는 중학교 남자에게도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중학교 교사는 그것도 남자 중학교 교사는 모닥불이 다 타고 얼마 남지 않은 불씨를 살리기 위해 두 볼이 빵빵할 정도로 숨을 모아 후후 불었던 것처럼 거의 사망 직전의 감정을 살린다는 사명감으로 영화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큰일이다.
이렇게 영화를 감상하고
이렇게 밴드에 가입을 시켰다. 밴드를 활용한 이유는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글쓰기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온라인 글쓰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기 전 생각거리를 먼저 접한 후 영화를 읽는다. 그리고 감상문을 작성한다.
맞춤법도 잘 맞지 않고 문맥상 틀린 부분도 있지만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엄청난 발전이었다.
저렇게 한 쪽의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원래 목표는 저렇게 쓴 글들을 모아 부크크에서 한 권의 책을 발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의 병행으로 인해(가장 큰 것은 나의 게으름이다) 책을 발간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었다.
먼저 아이들이 사실은 영화를 안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고르고 느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교사의 힘듦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영화를 고르고나면 주말을 이용해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영화를 본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나, 이 장면은 다소 선정적일 수 있으니 스킵해야겠군, 여기서 감동을 느낄텐데 휴지를 준비할까? 아냐 절대 울지 않을거야. 내가 조심해야지 등등 재미를 위해 보는 영화가 아니라 교육을 위해 보는 영화는 정말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든 것은 봤던 영화를 또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힘이 세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고 앞으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낼 우리 아이들의 힘(잠재력)은 더 세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영화를 찾고 있다. 그리고 읽고 있다. 영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