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이런가요?]프로자책러
[인트로]
나만 이따윈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적어봅니다.
한 분의 선생님이라도 '저도 이따윕니다ㅎㅎ'정도의 댓글을 달아주신다면
'오호라! 나만 이따위는 아니었구나.' 하면서 위로를 받아갈 심산입니다.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고민이라면 조금 슬프긴 하겠지만, 뭐 괜찮습니다.
달려라 하니마냥 쓰러지지 않고 달려가고 있으니 볕들날이 있겠지요. 하하
[본문]
저는 프로자책러입니다. 자책엔 프로라는 말입니다.
5년차쯤 되니 예전보다 자책 빈도와 강도가 낮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학급 분위기가 흐려지면, 교우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겨나면
자책을 프로페셔널하게 시작합니다.
'내가 제대로 못해서.' '내가 좀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내가 부족해서.'
때로는 자다가도 자책을 해서 새벽에 눈을 뜰 때가 있습니다(뭐 금방 다시 잠들긴 하지만요.)
그러다보니 나는 왜 자꾸만 자책을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첫 번째 요인은 저 스스로 가진 교사에 대한 높은 기대치입니다. '교사라면 이래야지.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야지. 교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지.' 뭐 이런 기대치들이요.
저는 이런 저의 기대치들이 저 스스로를 압박해오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한 법인데 저를 목졸라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건
아이러니잖아요. 그러니 저도 좀 더 편한 마음을 가져야 할 터인데 언제 만들어진지 알 수 없는 저의 확고한 교사철학이 저를 프로자책러로 만드는 첫번째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두 번째 요인은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 부족입니다.
저경력인 저는 스스로의 교육에 확신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많은 책과 연수를 접했다고 한들 내가 잘 실천하고 있는게 맞나하는 의심이 드는 겁니다.
더불어 신규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저의 성향이 가진 장단점 중 단점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는 순간, '나는 교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라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꼼꼼하지가 않아서 업무든 학급운영이든 자꾸 빵꾸내고, 화낼 타이밍 놓쳐서 애들 못 잡는 것 같고, 지나치게 동안이라 애들이 자꾸 맞먹으려 드는 것 같고. 그럴 때요.
세 번째 요인은 사회 분위기입니다.
가만히 냅둬도 알아서 자책할 저같은 인간에게는 요즘 사회 분위기가 아주 쥐약입니다. 우선 제가 말하는 사회 분위기도 프로자책러인 제가 편집적으로 수집한 자료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있게 진술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적어두고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요즘 사회 분위기는 뭐만하면 교사탓인 것 같아요. 무슨 사건이 일어나면 첫번째로 교사부터 소환하죠. '너 그때 뭐했니?' '너 이 일 있기 전에 교육은 제대로 했니?' '너가 어떻게 가르쳤길래 애가 이런 일을 벌였니?'
안그래도 프로자책러인 저는 이런 분위기가 무섭고 두렵습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절반이 정년까지 교편을 잡을 생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죠(글 하단에 기사 링크 실어둘게요). 저도 '정년까지 교편을 잡을 생각이 없다'로 답했던 1인입니다. 그러나 제 속내는 아이들과 지내는 게 너무 좋고 교사가 천직이라는 생각까지 하지만, '정년까지 교편 못 잡을 듯'이었습니다. 사회가 다 교사탓이라는데, 알아서 자책하는 저는 제가 만날 아이들 중 한명이라도 크게 다치는 일이 일어나면(그런일은 없어야겠지만요) 정신적으로 버텨낼 자신이 없거든요.
제가 이런 주제로 글을 적고 있는 것은 오늘도 자책을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뭐 크게 심각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학기 말이 되니 내가 공부를 제대로 시킨게 맞나 하는 불안과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자책러는 자책할 구실을 프로페셔널하게 찾아냅니다.) 그런데 옛날보단 자책의 정도가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계속 자책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 '나 잘하고 있나?'생각했다가 유투브 보고, '나 이대로 해도 괜찮겠지?'하다가 페이스북보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또 생각을 해봤습니다. 프로자책러의 자책이 무슨 이유로 약발이 떨어져가고 있을까.
저는 그 실마리를 '기록'에서 찾았습니다. 제가 매일 매일 활동사진과 수업한 내용을 학급 밴드에 올리고 있고, 올해부턴 학급살이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고, 감사히도 에듀콜라 집필진도 되었습니다. 자책감이 까꿍하려할 때 밴드를 쭉 읽어보면, '아, 나 정말 열심히 가르쳤구나.' 저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학부모님들이 달아주신 애정뿜뿜 댓글도 힘이 되구요. 블로그 글을 읽다보면 '아, 00이가 학기 초에 이런걸로 혼났었구나.' '학기 초에 우리 반에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 싶고 그래도 내가 한 학기동안 많이 지도해왔다는 게 느껴져서 '김은진, 수고했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록. 시간 오지게 잡아먹고 심히 귀찮지만 프로자책러가 자책의 싹을 자를 때 유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좀 안좋은 방법이라 적기 부끄럽지만, 근무하다보면 나보다 대충 하시는 것 같은데 속편해보이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자책감이 들때마다 그 분을 떠올리며 저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줍니다. '그 분도 뱃속 편한데 너는 왜 스스로를 괴롭히려드니. 너도 뱃속 편하게 살어라.' 이렇게요. 저는 올해엔 딱히 없어서 지나간 분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사실 그분이 교실에서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는 모르죠. 제가 다 열어본것도 아니고. 그냥 제 마음이 편하려고 하는 주문같은 겁니다. 당.연.히 속으로만!! 해야겠죠.
아주 귀여운 자책의 금요일 밤을 보냈습니다. 아마 제 성격상 자책을 멈추진 않을 것 같아요. 자책의 순기능이라하면 연수도, 공부도, 수업준비도 꾸준히 열심히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가 너무 괴롭지 않은 선에서 자책을 교직 동반자로 삼을 수 있게, 자책이랑 친구먹어보려고 합니다.
음.. 저만 그런가요? 프로자책러 또 어디 안계시나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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