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손주 4. 자존감이 왜 높아져요?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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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2 16:21
ㅡ동네손주 그런 건 누가 만든 거예요?
ㅡ선생님이.
ㅡ왜요?
ㅡ봉사활동을 하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ㅡ자존감이 왜 높아져요?
ㅡ그야...
새 학년이 시작되었고, 새로운 아이들과 미자를 찾아뵙게 되었다. 올해 나의 반 아이들은 6학년 서영이, 태희, 수환이다. 새로운 아이들에게 다음 주에 동네손주 프로그램으로 미자네 집에 갈 거라고 했다. 작년 4학년 아이들은 '왜'냐고 묻지 않았는데, 6학년 아이들은 역시 6학년스럽게 그걸 왜 해야 하냐고 물었다.
봉사활동을 왜 해야 할까?
나는 왜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놀러 가기로
결심했을까?
선생이 처음 되었던 23살부터 지금의 32살이 되기까지 나는 매년 다른 사람으로 존재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도 달라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생김새도 묘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나름의 최선을 다하였고, 그 해의 가장 근사한 마음을 가르쳐보려고 했다.
32살의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근사한 마음은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했던 마음이었다. 대학생 때 작고 마른 동아리 언니가 뚜벅뚜벅 봉사활동을 다니는 게 참 멋있어서 언니를 따라하려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토요일에 독거노인분들께 도시락을 배달하는 '따밥' 활동을 했고, 크리스마스이브에 결손가정 아이들 집에 산타처럼 방문하는 '몰래 산타' 활동을 했다. 서울에 파견 갔을 때는 자가호흡이 어려운 언니의 호흡을 돕는 엠브봉사활동을 했었고, 요가 자격증으로 요가 수업을 하고 모인 돈은 기부했다. 청주에 와서는 할머니들의 한글공부를 돕는 야간학교 봉사활동을 했고,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며 벌금을 받아 기부했다.
봉사활동 이력을 주저리주저리 적는 것은 자랑이 맞고, 별다른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지금의 나로서는 남에게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내어주던 과거의 나를 아주 멋지게 여기기 때문에 자랑 좀 해봤다. 이렇게 스스로를 멋지게 생각하는 이 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더불어 봉사활동을 하던 순간들은 가장 선명한 자존의 순간이었다. 마주한 낯선 이로부터 나의 선명한 외곽을 가늠하고, 내가 살아온 이력이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그 모습으로 그 장소에 존재하는 나 스스로를 다행이라 여겼고, 귀하게 바라보았다.
온통 나뿐인 세상에서 비교와 후회와 자책으로 허덕이다가도 시선을 타인에게 돌려 손을 내밀었을 때, 세상이 나를 반겼다. 함께여서 외롭지 않았고 초라하지 않았다. 상대방과 눈 마주치고, 그 사람을 일으킬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그 응원에 어느새 나도 일어서게 되는 멋진 순간들을 아이들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미자를 찾아뵙는 순간은 길게 이어질 아이들 인생에서 금방 지워질 장면일테지만 어른이 된 아이들이 문득 6학년의 미자와 나를 떠올린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손 내밀 결심을 시작한다면 아이들의 인생이 훨씬 더 근사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라 믿기에 안 해도 그만인 봉사활동을 함께 해보려 한다.
ㅡ봉사활동을 하는데 자존감이 왜 높아져요?
ㅡ선생님은 남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해.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내가 하니까 자존감이 높아지더라.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는 건, 그 눈빛을 주고받는 건 아주 멋진 일이더라. 선생님이랑 같이 해보자!
ㅡ네.
*초등학교 학생자치회에서 혼자 사는 할머님댁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동네손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미자는 저희가 찾아뵙는 할머님 가명입니다
아이들 이름도 가명입니다
[이 게시물은 악마쌤 김연민님에 의해 2024-02-16 12:21:58 에세이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