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봉사일지]6. 이야기
1. -선생님 저는요, 양딸로 그 집에 갔거든요. 그런데 그 엄마가 학교도 안 보내주고 20년 동안 식모살이만 시켰어요.
-쳇, 나랑 똑같네.
정숙 학생이 거든다.
-딸처럼 해준다고 해서 우리 엄마가 보낸 건데,
-웃기는 소리야. 딸처럼 해주기는.
-그 집 딸 공부하는 답안지 보고 공부했는데, 제가 그 딸보다 잘하니까 나중에는 답안지도 안 주더라고요. 그때 배웠으면 머리가 좀 틔였을 건데. 평생을 너무 배우고 싶었는데, 돈도 벌고 해야 돼서 못 배웠어요. 글 모르면 쉬운 일도 못하니까 먹고 살기 심 들었어요. 그런데 이제 야간학교 와서 배우니까 너무 좋아요.
영미 학생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꺾여있다. 너무 많은 시간을 설명하는 듯한 손이라 나는 선뜻 영미 학생의 손을 쳐다보지 못한다. 그런 영미 학생이 20년 동안 식모살이한 옛날, 먹고살기 바빠서 배우지 못한 어제를 이야기한다. 나는 너무 서러워져서 자꾸 울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덤덤한 이야기 속 오가는 공감들에서 나만 혼자 울어버린다는 건 예의 없는 행동 같았다. 비슷한 경험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나도 그들과 비슷하게 덤덤하게는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청포도 사탕 두 알, 알사탕 두 알, 누룽지맛 사탕 한 알, 커피맛 사탕 두 알. 수업 전 영미 학생은 수줍어하는 1학년 학생처럼 내 눈을 잘 쳐다보지도 못하고, 별 말도 없이 두 손으로 공손하게 사탕들만 건넸다. 너무 많은 걸 이야기해서 내가 잘 쳐다보지 못했던 그 손에 담긴 사탕들. 나는 그때부터 이미 울고 싶었다.
2. 딱 엄마 또래로 보이는 숙자 학생도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요, 자존심도 엄청 세고 지는 것도 너무 싫었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 잘해보겠다고 술을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뻘게지는데, 윗사람들이랑 술 먹으면서 어울리고 그랬어요. 그런데 내가 한글을 모르니까 뭐 쓸 거만 있으면 기가 죽고 숨어서 결국에는 나보다 일 못하는 애들보다 내가 더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너무 서러워서 딸내미한테 공부할 데 좀 없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증평에서 한글 가르쳐 주는 데를 갔는데 너무 할머니들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 힘들더라고. 거기서 돈 조금 주면 일대일로 가르쳐준다고 구몬을 소개해줬어요. 일주일에 40분씩 배우는데 한 1년 하니까 눈이 조금 틔였어요. 그런데 자식들한테 일이 생기니까 부모 마음이 또 그렇더라고. 나 배우겠다고 욕심을 못 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딱 접었죠.
-에이, 그때 몇 년 배웠으면 좋았을걸.
야간학교 언니들이 거들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돈 벌고 하느라고 몇 년이 또 훌쩍 갔어요. 한글 모르면 편한 데를 못 가요. 제일 힘든 식품공장 다녔어요. 요새 사람들 다 힘들어서 안 가는 식품공장. 한글도 다 까먹었죠. 이제 청주로 이사 와서 여기 다니게 되었는데, 나이 때 맞는 언니들도 있고, 선생님들도 있고, 너무 행복해요. 그런데 아직도 자존심이 상해서 한글 공부하러 간다고는 말 안 해요. 학교에 있을 때 산악회 친구한테 전화와도 안 받아요. 한글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기 싫어서.
3. 한 줄 쓰기 하면 만날 ‘집에 가고 싶다.’고 쓰는 정숙 학생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양딸로 갔는데 식모살이만 했거든요? 그래도 나중에는 학교를 보내주긴 했어요. 근데 다 늦어서 학교 갔더니 자꾸 못 읽는다고 대가리를 쥐어박는 거예요. 그래서 에이 시팔 안 배워하고 뛰쳐나왔어요. 그때부터 안 배워서 한글 못 읽어요. 하하하
나는 빵 터졌다. 집에 가고 싶어 한 역사가 꽤나 깊었던 것이다.
-근데, 이제라도 배우잖아요. 읽을 수 있고, 쓸 수도 있고 재미있어요. 저 잘해요, 이제.
4. 한 번도 안 빠지고 꼬박꼬박 나오는 순희 학생도 차분 차분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회사에서 반장이 안 배웠다고 하도 면박을 주니까, 그게 안쓰러웠는지 회사 언니가 여기를 알아봐 줬어요. 저를 위해서 여기에 10번이나 전화하고 여기 올 때도 만나서 같이 왔어요. 얼마나 고마워요. 그 마음이. 그런데 못 배웠다고 구박받는 거는 지인짜 서러워요. 그것만큼 서러운 게 없어요. 안 배운 게 아니라 못 배운 건데.
5. -여러분 이야기를 시로 쓰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마음이 너무 아픈데 어떻게 써요?
-원래 글이 그런 거예요. 영미 학생이 양딸로 가서 20년 동안 식모살이하느라 배우지 못한 거에 대해 쓴 글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왜 나만 이렇게 살았지?’하는 사람이 읽으면 더 이상 안 외롭잖아요. 나만 그런 거 아니니까. 그리고 영미 학생이 공부도 하고, 한글도 읽고, 학교 선생님도 생겼다고 하면 그 사람도 용기가 나잖아요. ‘나도 해봐야겠다.’ 그런 용기. 그게 글이에요.
영미 학생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살짝은 고개를 끄덕인 듯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자 영미 학생이 굽은 손가락으로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를 또 지긋이 바라보았다. 우리는 겨우 눈 밖에 서로를 볼 수 없었지만, 겨우 눈만으로도 꽤나 많은 걸 본 듯했다.
5. -마지막으로 글 하나만 읽죠.
나는 칠판에 글 하나를, 아니 편지 하나를 적었다.
‘오늘 함께 공부해서 즐거웠어요. 여러분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여러분은 정말 멋진 학생들입니다.’
학생들은 더듬더듬 내 편지를 읽었다. 틀리게 읽었다가 고쳐 읽기도 하고 아리송해서 다시 읽다가 무언가 이해되면 학생들이 배시시 웃는다. 나는 이만큼 로맨틱하게 전해지는 편지의 방식을 알지 못한다.
6. 나는 수업 내내 울지 않기 위해 자꾸 아랫입술을 물었고,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꾸만 서럽고, 자꾸만 억울해서 끙끙 참아보다가 엉엉 울었다. 왜 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울지 않을 수 없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