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선생되다 2. 도둑질하다 수첩으로 두드려 맞기
우리 반엔 우리 아이들이 직접 만든 학급 규칙 7조법이 있다
비주얼싱킹하기 좋게 6조법으로 만드려 했는데
"이건 너무 중요하잖아요. 빼면 안되요!"라며 아이들이 강력하게 주장하여 불가피하게 7조법이 되었다
그건 바로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다.
중요하지. 중요하고 말고.
고조선에 태어났다면 남의 물건을 탐한자, 여생을 노비로 살았을 터인데
운이 좋게 대한민국에 태어나 노비를 면하고 게다가 선생까지 된 나는
참회의 마음으로 글을 끄적여본다
14년전, 청주 중심 번화가 성안길에는
CNA라는 지금으로 따지면 아트박스 정도 되는 큰 문구점이 있었다.
(성안길은 '시내'라고 부르겠습니다. 청주에서는 중심번화가를 보통 '시내'라고 불러 그 용어가 익숙하네요~)
14살 중 1, 엄마를 조르고 졸라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쁜 친구 소라와 시내 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이거 시내 가는 버스 맞아요?"
몇 번을 물어 도착한 시내는
엄마와 갔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별천지였다.
스티커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떡볶이도 마음껏 사먹을 수 있었으며
옷가게에서 언니들 입는 옷도 구경하니
당장이라도 대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들어간 CNA.
곱게 구경만 하고 나왔으면 될터인데,
소라와 나는 하면 안될 작당을 하고 말았다
도.둑.질
누가 먼저 제안했을까.
친구를 잘 못 만나 그런거라고 믿고 싶을 부모님을 위해
소라가 먼저 제안했다고 쓰는 게 맞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뇌가 알아서 지워버린 건 아닐까 싶다
다만 아무런 죄책감 없이 꽤 흥분된 얼굴로
색연필을 손가락 끝으로 집어 손목을 절묘하게 꺾어
와이셔츠 소매 사이로 골인시키던 내 모습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소라와 나는 와이셔츠 안에 담긴 색연필을 의식하며
애써 당당하게 걸어나왔다.
안 걸렸다.
우리는 뒷골목으로 숨어들어
서로의 와이셔츠 속에서 나오는 색연필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대박이다. 아, 왜 하나만 훔쳐왔지?"
"또 가자. 또 가자."
소라와 나는 정도를 모르는 인간이었다
한번 더 들어가서 이번엔 일제펜을 와이셔츠 속에 숨겼다.
그리고 이번엔 조금 더 당당하게 걸어나오는데,
'삑!!!!!!!!!!!!!'
경보음이 울렸다.
귀가 아팠다. 머리를 찌르는 듯한 경보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화살로 날아와 얼굴에 꽂히고 있었다
돌아보니 저 멀리서 사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와 같은 색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웅성이는 것도 보였다
'삐!!!' 경보음은 멈출 줄 몰랐다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운데 어이 없기도 했다
주저앉아 울어 버릴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다.
일은 벌어졌고, 나는 뭘 해야할지 몰랐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을 보자 사장 아저씨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한층 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이리 와. 이 싸가지 없는 게, 감히 웃어?"
아저씨는 내 어깨춤을 잡고 질질 끌었다
소라는 내 손을 잡고 함께 끌려갔다
우리가 끌려간 곳은 창고였다
끽. 철문은 닫혔고 사장 아저씨는 장부로 쓰일 법한 큰 수첩으로 내 머리를 수 번 내리쳤다
"싸가지 없게 웃어? 웃어?"하면서.
마치 망치질당하는 못이 된 듯했고, 그대로 땅 속으로 박혀 사라지고 싶었다
사장 아저씨는 황송하게도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너 지금 당장 경찰서 갈래, 아니면 한 달동안 나와서 일할래."
경찰서는 무서웠다. 왠지 신창원 아저씨라도 만날 것 같지 않은가.
한 달동안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일하겠노라고 맹세하고
나와 부모님의 휴대폰 번호, 이름, 학교까지 다 말하고나서야 창고를 벗어날 수 있었다
졸지에 한달이나 학원을 빼고 다른 도둑이 있나 없나 감시하는 일을 하게 된 도둑 신세가 되었다
엄마한텐 도대체 뭐라고 해야할까?
학원 선생님께는?
친구들한테는?
왠지, 인생이 망한 것만 같았다
나는 도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겠지?
부모님은 나를 뭐라고 생각하실까?
선생님들은? 친구들은?
다들, 나한테 실망하겠지?
다음날 점심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내내 누워만 있었다
"무슨 일이니."
엄마의 물음에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모든 걸 쏟아놓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사장 아저씨께 사과 드리고 여차저차 해결해주셨다.
그리곤 이 일에 대해 더는 묻지 않으셨다
(해결과정에 대해 자세히 적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가 함구하셨기 때문이다)
만약 스스로를 한 달 동안이나 도둑질한 사람이라 곱씹었다면,
학교에 알려져서 친구들로부터
도둑질한 아이라는 낙인을 받았다면,
내 인생은 그 때 3도 쯤 틀어져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달동안 벌받지 않아서, 경찰서에 가지 않아서
도둑질에 대해 쉽게 생각하게 되었냐고?
아니, 전혀.
나는 이미 수치심, 부끄러움, 후회를 모두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가 더 큰 부끄러움, 수치심, 고통을 주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느끼고 고쳐낼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걸 믿고 있었다. 아마도 불안은 하셨겠지만.
이 일의 영향이 너무나도 커서인지
교사가 된 지금까지
나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벌을 주지 않는다(못한다고 써도 무방할 정도다.)
잘못한 행동을 아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다면 벌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어서.
잘못한 행동을 스스로 반성할 수 없다면 어떤 벌을 줘야 반성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작은 잘못은 벌로 귀찮게 하면
귀찮을 게 싫어서 다시 안할 수 있지만
정말 큰 잘못을 했을때는
벌이 갖는 효과가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더불어 벌받는 아이의 얼굴에서 자꾸만 수치심을 읽어내버린다.
그 때의 내 표정, 감정을 너에게서 마주하는 것이다
그덕에 아이를 붙잡고 타이르고 설득하는 지지부진한 지도방법을 쓰고 있다.
엄마가 나를 믿었던 것처럼 나도 널 믿어보는 것이다
보기좋게 낚이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낚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아이라도 벌이 주는 수치심이 아이의 마음 깊숙한 곳에 가시가 되어 박혀버리진않을까.'하는 염려가 나를 붙잡는다
아이가 반성할 수 있도록 충분히 듣고 대화하고 교정해주면, 그리고 믿어주면
아이가 스스로 옳은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믿음을 가져보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잘 모르겠다.
상상력이 부족하여 내 경험에 비추어 지도하고 있을 뿐이다. 교사를 하다 더 많은 경험들이 쌓이면 지도 방법이 달라질 순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러하다.
저희 반 규칙체계에 대해 간략히 적어놓겠습니다.
저희 반은 크게 세 가지 제도를 운영중입니다
1. 학급 규칙 7조법
2. 학급 5단계 벌칙(운영상의 이유로 3단계 벌칙으로 정정하여 운영 중)
3. 학급인권선언문
세 가지 모두 학급토의를 거쳐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지각, 숙제 안한 것, 욕한 것, 복도에서 뛴 것 등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은나 간단한 교정이 필요한 문제행동은 아주 간단한 대화
("무슨 욕했어? "00이요" "그만 쓰면 되요 안되요" "안되요 죄송합니다," "1단계 벌칙 수행!")
후 잘못의 수위, 반복 정도를 따져 벌칙을 수행하도록 합니다.
거짓말, 반항 등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으나 교정이 필요한 좀 더 심한 문제행동은 우선은 상담을 충분히 진행합니다. 개별상담을 통해 문제행동의 심리적 원인을 찾아보고 필요하다면 부모님과 상의드립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학급토의 시간을 활용하여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기도 합니다.
놀리기, 괴롭히기 등 타인에게 해가 되는 문제행동만은 엄격하게 다루려 노력 중입니다. 어려서 실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피해자가 있으니까요. 때문에 개별상담, 집단상담 등을 진행하되 벌칙 수행 단계를 높게 합니다. 상담을 진행할 때 제 대화 방법도 좀 더 엄해집니다. 또한 이러한 사안은 학급 전체로 공론화하는 편입니다. 학급 아이들이 방관자가 아닌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말괄량이 선생되다3. 숨 못 쉬어도 좋아. 교복 줄여입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