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선생되다 3. 숨 못 쉬어도 좋아, 교복 줄여입기
"선생님, 졸업사진 찍을 때 틴트 발라도 되나요..?"
"안돼요. 6학년 다같이 절대 안되는 걸로 통일했어요."
"흑, 안되는데... 아픈 사람처럼 보이는데... 네... 알겠습니다..."
"너네는 안 발라도 그냥 그 자체로 이쁜데 뭘~"
"아니에요~ 틴트라도 발라야되는데.."
이제 막 미에 눈 뜨는 나이 13살,
이른 것 같지만 이르지만도 않은 나이.
그냥 그모습 그자체로 이쁘다는 걸 모른 채
뷰티 유투버 영상을 구독하고
틴트를 사모으는 아이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뭐. 내 그 마음 모르는 거 아니다.
(나의 학창시절엔, 학생 화장 문화가 거의 없었고
미의 발산은 교복 형태와 머리스타일에 달려있었다
화장 문화가 있었다면, 안했을리 만무하다)
중앙여중 뒷골목엔 교복 줄이기 신의 손을 장착한 세탁소 아줌마가 있었다
교복을 줄이고자 하는 아이라면 비로소 그곳은 종착지가 되었다
왜냐, 아줌마는 학생들의 '좀 만 더요' 컴플레인을 예상하여
한 번에 확! 더는 줄일 수 없을만큼 파격적으로 교복을 줄여주셨기때문이다
나는 입학할 때 키도 덩치도 더 클거라며
엄마가 두 치수는 낙낙하게 맞춘 마대자루 뒤집어 쓴 듯한 교복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아예 처음부터 프린세스 라인 와이셔츠로 나온다는데
그땐 그런게 없어서 영락없는 마대자루였다.
하지만, 매점을 지키고 있는 일진 언니들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1학년 때는
교복을 줄이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았다
2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
나는 신의 손 아주머니에게 교복을 맡겼다
"몸에 딱 맞게 줄여주세요."
아주머니는 역시 시크하게 주문사항을 접수했고
다음날, 단추를 잠그고는 상체를 구부릴 수 없는 조끼와
큰 보폭으론 걸을 수 없는 치마를 받아들었다
당황했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이 꽤 맘에 들었다
드디어, 감추기엔 아까운 일자로 뻗은 다리와 잘록한 허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시크해지고 당당해지고,
계급이 높아진듯한 기분은 덤이었다.
줄인 교복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우선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 자야되는데
조끼를 잠그면 허리를 굽힐 수가 없어
엎드릴 때마다 조끼 단추를 풀어헤쳤다
가끔 다시 잠그는 걸 까먹고 풀어헤친채로 돌아다녔다
(지금 보면 진짜 꼴보기 싫을 것 같다)
치마가 타이트하고 짧아서 크게 걸을 수도 없었다
식욕을 참지 못하고 급식소 뛰어가다가 박음질이 뜯어지기도 했다
제일 귀찮았던 건 '학주'라고 불리우던 학생주임 선생님과의 신경전이었다
등교길 교문 앞, 학주가 있다하면
우선 치마 지퍼를 내려서
치마를 꼬리뼈에 걸치고
와이셔츠를 좀 뺀다던가, 마이(자켓)으로 좀 가려본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눈속임을 시도한다
최고는 눈 마주치지 않고 인파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지만
눈이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면
최대한 밝고 공손하고 예의바른 얼굴로
"안녕하세요오~~~~"
하면서 인사한다
그러니까 시선을 치마가 아닌 얼굴에 붙잡아두려는 시도이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마길이로 잡혀
오리걸음을 하면
세상과 학교에 대한 힐난을 퍼붓는 한 마리 오리가 되었다
"아니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더 심한데
그런 사람들한텐 이쁘다 이쁘다 하면서
우리한텐 왜 뭐라하고 난리야. 내가 내 교복 줄이겠다는데, 아 진짜 짜증나!!!!!!!!!!!!!"
읽으려고 시도하지만 너무나 두꺼운 책,
조너선하이트의 '바른 마음'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도덕과 비도덕을 그저 '왠지 꺼려져서'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저 불쾌하다는 것만으로
비도덕이 아닌 것을 비도덕으로 정의하고 심지어는 처벌하는 경우 말이다.
학생들이 염색하는 것, 교복을 줄여입는 것, 화장하는 것
그러니까 어른들 통념상 '학생답지 못한 것'은 사실
타인에게 아무런 해가 가지 않지만 어른들에게 왠지 꺼려지는 행동이다.
왠지 혼내야할 것 같은 행동.
그러나 사실 타인에게 해가 가지않는다면,
다양성이 이렇게나 중요시되는 사회에
미에 대한 관심을 처벌의 대상으로 세워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지난 9월 27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서울 학생 두발 자유화를 향한 선언’을 통해
2019년 2학기부터 서울시내 중ᆞ고등학교에서 두발 규제를 전면 철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서울시 학생들은 두발 길이는 물론 염색과 파마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교실에 알록달록 머리를 장착한 아이들이 앉아 있으면,
왠지 '윽, 뭔가 이상해. 학생답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 것 같긴 하다.
난 그런 장면을 보고 자란 적이 없으니까.
근데 그 뿐이지, 잘못이 아닌 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서울이 먼저하면, 충북은 언제 두발 규제가 철폐될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
낯설음을 견뎌낼 마음의 준비
염색약, 파마약, 화장품이 학생에게 유독 해롭기 때문에
학생은 염색, 파마, 화장을 하면 안된다는 주장도 있죠.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학생이든 어른에게든 해롭지 않은 질 좋은 제품이 생산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이 더 다양하고 자유로워져서
어른, 아이, 남자, 여자할 것 없이
자신의 모습 그자체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구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말괄량이 선생되다 4. 차별해주세요. 저는 공부잘하니깐요 입니다
+서울시 두발자유화 선언 관련하여 재밌게 표현한 영상이 있어 링크 올립니다^^~
반아이들과도 재밌게 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eZzGOL2fw
[문명특급 EP.25] '저 자연갈색이라고요!'...두발자유 반대하는 국회 & 학부모 도장깨기 / 스브스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v=gQNXXGFHfVc&t=99s
[문명특급 EP.26] 서울만 두발자유? 조희연 교육감 찾아간 재재 (feat. 인천 고딩) /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