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봉사일지]1. 시작
서울에 파견 갔다가 2년 만에 고향인 청주로 돌아왔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서울 가면 남자 100명 만날 거라고 했는데, 서울 가자마자 한 소개팅에서 사랑에 폭 빠져 한 남자만 2년 만나고, 어쩌다보니 내려오기 직전에 깨져서 깔끔하게 홀몸으로 돌아왔습니다. 새 학기를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몸과 마음의 여유가 너-무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해먹고 설거지도 하고, 롤(LOL!!!)도 했는데도 하루가 남더군요. 챙겨야 할 남편도 자식도 그 흔한 남자 친구도 없으니 하루가 얼마나 풍요롭던지요.
이 남아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쓰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래, 봉사활동이나 하자. 국가에 타인에 기여나 좀 해보자.'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봉사활동을 할지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평소 제가 동경해 마지않는 친구 하나가 4년 째 야학 봉사활동을 해왔거든요. 제가 항상 “너 진짜 멋지다.”라고 했는데, 그때는 사랑에 미쳐있던터라 선뜻 봉사활동을 신청하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야학 봉사활동을 시작하기에 최적일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네이버 지도를 켰고, ‘청주 야간학교’라고 검색했습니다. 학교와 집 바로 중간에 ‘심지 야간학교’가 있었습니다. 위치가 너무 맘에 들어서 사이트에 들어가 봤습니다. 교지도 매년 만들고, 소풍도 가셨더라고요. 고민은 짧게, 후회는 길게 하는 저로서는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어서 바로 지원서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연락이 왔습니다. 유튜브 수업을 참관하여 참관록을 제출하고, 연구수업 하나를 보내 달라는 연락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하루가 길다 못해 지루할 정도였는데, 숙제가 생기니 재밌는 게 왜 이렇게 많은가요. ‘금쪽같은 내 새끼’를 정주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밌더군요. 그렇게 기한을 하루 넘겨서 꾸역꾸역 연구수업까지 제출한 후에야 채용(?)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4월 1일 목요일 저녁 7시에 출근하세요. 한글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4월 1일이 되었습니다. 주말에 내리 달린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만우절 장난은 쳐야겠고, 학부모 상담 주간이었는데 22명 전원이 상담을 신청해주신 밀도 높은 한 주의 목요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니 소금물에 절인 배추가 된 기분이 들더군요. 간절히 딱 한 시간만 누워있고 싶어서 '얼른 집 가서 한 시간만 누워야 겠다.' 생각하고 차 시동을 거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었더라고요. 핸들을 한 대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얕게 내뱉었죠.
"시발."
결국 잠시도 쉬지 못하고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습니다. 몸이 피곤하다 못해 저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고, 배도 너무 고팠습니다. 신경까지 예민해져서 도대체 누굴 원망해야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정말 정말 너무 집에 가고 싶었고, 심각하게 ‘잠수 탈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심지 야간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사채업자들 사무실 있던 건물 기억나시나요? 비슷한 느낌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 3층에 심지 야간학교가 있습니다. ‘아, 뭐 엘리베이터도 없어. 짜증나게.’ 한숨을 푹푹 쉬면서 저린 다리를 애써 끌어올리며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처음 뵙는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약간은 신경질이 난 상태에서 학생분들을 기다렸습니다.'
수업이 시작하는 7시 조금 전에 학생분들이 올라오셨습니다. 지긋하게 살아오신 다섯 분의 학생분들이 아픈 무릎을 툭툭 내리치며 깊은 숨을 연거푸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공손히, 무척이나 반가이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4월 1일 만우절날 맞이한, 5명의 제 학생들이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반가이 화답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