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밴드를 운영중입니다. 귀찮을 때도 있지만.
저는 학급 밴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매일 아이들 활동 사진과 함께 그 날 한 활동이나 배운 내용을 간단하게 올립니다. 급히 수합되어야 하는 안내장에 대해 확인을 부탁드리기도 하고, 준비물을 안내하기도 합니다.
발령 첫 해부터 밴드를 운영해왔어요. 학년초부터 운영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워낙 동안이라 학부모님들께서 저를 '어린 학생' 정도로 보고 계신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제 할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죠. 수업은 활동 중심 수업, 놀이수업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아이들이 학습에 대해 흥미를 보이며 성적도 많이 올랐고, 교실놀이도 다양하게 진행하며 아이들이 학교가 너무 좋다길래 저 스스로 '난 꽤 좋은 교사구나.' 생각했구요.
그러다가 첫 학부모 상담을 하는데, 한 어머님께서 아이가 학교에서 즐겁게 놀다온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말씀하시는 뉘앙스가 왠지 모르게 마뜩잖은 느낌이었어요.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시길래 저는 아이들과 놀면서, 얘기하면서 해결해나간 학습지를 모아놓은 파일을 꺼내서 보여드렸어요. 그러니까 놀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이가 노는 얘기만 해서 노는 줄만 알았어요."
순간 당황스럽고 황당하기도 했어요. 학습지를 모아놓을 생각은 없었는데, 모아놓은 학습지라도 없었다면 어머니는 교과서 대충하고 내내 노는 걸로 생각하셨을테니까요. 어머님들이 처음에 제 동안 얼굴만 봐서는 영 마뜩잖아 하시는데다가 놀이수업을 많이 하니 오해가 생길 법 했나봐요. 저는 아이들이 알아서 잘 전달할 줄 알았더니 아니었죠. 아이들과 즐겁게 열심히 공부하는 이 일상들이 학부모님들께 공유하면 불필요하게 오해받는 걸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학급밴드를 운영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학급 홈페이지에 매일매일 사진을 올리다가 휴대폰 촬영한 것을 옮기기가 번거로워서 학급밴드를 이용하게 되었어요. 활동 중심 수업을 하니 사진 찍을 타이밍이 하루에 한 두번은 있고, 반 전체구도나 모둠구도로 사진을 찍으면 4-5장 정도면 학급 전체아이들을 담을 수 있어 부담이 크지도 않았어요. 체육이나 미술 시간에는 사진 찍기가 더 수월하죠. 사진을 찍지 못한 날에는 사진은 안 올리고 하루 일과에 대해 간단한 글만 올렸죠.
그렇게 시작해서 학급 밴드 운영을 6년 째 이어오고 있어요. '내가 왜 이걸 계속하고 있나.' 생각해보면 실보단 득이 컸기 때문이겠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어떤 표정으로 배우는지 학부모님과 공유하니까 확실히 제 학급운영을 믿고 지지해주시는 효과가 있어요. 이번 2학기 상담 때 이런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밴드 잘 보고 있어요. 아이들 표정만 봐도 얼마나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지 알 수 있더라고요." 놀이 수업, 활동 수업을 많이 진행하면서도 학부모님들께 오해의 민원이 없었던 것은 밴드 운영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앉아서 공부하는 사진들도 자주 올려서 계속 활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고, 놀이나 활동이 어떻게 학습으로 적용되어가는지도 공유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저의 학급 운영 철학이 밴드 사진과 활동 소개에 잘 드러나니 학부모님과 저 사이의 정보 공백이 조금 더 줄어들어서 상담이 좀 더 구체화되는 경향도 있고요.
기록의 효과도 있어요. 만약 내년에 밴드에 올렸던 학년을 하게 되면 밴드 사진을 날짜에 맞게 다시 찾아보면서 어떤 수업을 했는지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올린 내용에 한해서지만요. 한 해 한 해 밴드를 열어보면 스스로도 한 해를 꽤 알차게 보냈구나 싶어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마치 일기처럼요.
밴드를 운영하면서 겪은 '실'은 무엇이냐. 사실 6년동안 '실'이라고 느껴진 건 거의 없었어요. 몇 년 전, 한 어머님께서 아주 조심스럽게 "바쁘시고 신경써주시는 데 정말 죄송해요. 이번 주, 지난 주 저희 아이가 찍힌 사진이 없어서요." 공손한 민원을 제기하셨던 점 한 번? 앵글을 좀 더 넓게 잡으면서 가볍게 해결했구요. 밴드로 이렇다할 민원을 겪지 않은 건 물론 제가 운이 좋아서였을 거에요. 밴드 사진으로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시는 부모님이 계셨다면 아마 그 해는 밴드를 운영하지 않을 것 같아요.(민원 싫어요.)
'실'을 줄이기 위해 학년 초 밴드에 대한 안내장을 배부해요. 하나는 초상권 활용 동의서(학급 밴드 용 사진 촬영 및 업로드)고, 다른 하나는 밴드에 대한 소개장이에요. 거기에 적은 문구 중 일부에요.
"어떤 날은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하느라 사진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고, 제가 하나 하나 세면서 사진을 찍지는 못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날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모든 아이들을 담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아이들이 그날 어떤 내용을 어떤 표정으로 배웠는지에 초점을 둬주시면 좋겠어요."
이렇게 써도 밴드로 민원 넣으시면 학부모님 있으시면, 그 해는 조용히 밴드 활동을 닫.. 을 것 같아요.(민원 싫어요.)
어쨌건 저는 밴드 운영에 만족하고 있고 내년에도 또 밴드를 운영할 것 같아요. 중간에 운이 안 좋아서 문 닫을 수도 있지만요. 저처럼 얼굴부터 신뢰가 깎이는 동안 선생님들께 밴드 운영도 괜찮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이만, 동안의 대표주자는 물러가겠습니다. 총총.
+아래는 제 학급 밴드 캡쳐본이에요~ 참고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