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손주 1. 그렇게 동네에 사는 할머니, 동네에 사는 손주가 되어가겠지
ㅡ명절 같을 때, 앞 집 옆 집 다 반짝 반짝 하고 웃음소리 들려올 때, 그런 날은 외로움이 사무쳐서 가만히 천장만 올려다 보는 거야. 눈만 깜빡깜빡하면서. 정말 그런 날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미자의 사무치게 외로웠던 그날 저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미자는 어떤 표정으로 어떤 이불을 덮고 어떤 천장을 올려다 보았을까. 미자가 눕는 자리 옆 오래되고 뚱뚱한 텔레비전은 흐릿한 빛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었을까. 미자는 얼마나 오래 누워있었을까. 미자 위로 외로움이 내릴 때, 미자는 외로움에 흠뻑 젖어 몸을 일으키지 못했을까.
넉다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두드려 맞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해 천장만 바라보게 되는 순간. 텃밭을 가꾸고, 마당에 노란색과 자주색 꽃을 심고, 마을회관에서 동네 언니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를 채우던 미자는 명절 저녁 어퍼컷을 맞고 넉다운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찾아올 사람이 있지만 난 없어.' 이 마음이 그날 밤 미자를 드러눕혔다.
미자의 사무치는 외로움을 들으며 내가 건넬 말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미자의 밤을 상상했고, 그럼에도 미자와 함께 마주 앉아 차 한 잔 함께 하는 이 순간도 있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학생자치회 아이들과 동네손주 프로그램으로 미자를 만나는 것이라 명절에는 미자를 찾아뵐 순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추석에도 다음 설에도 미자에게는 외로움이 비가 되어 내릴거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밤이 미자에게는 유독 길거다.
나는 명절 전 주에 밤이랑 대추랑 사과같은 걸 들고 아이들과 미자를 찾아갈 거다. 다가올 명절의 밤이 미자에게 어퍼컷을 날리더라도 정통으로 맞지는 않기를 바라며 응원의 식량을 미자 이불 머리 맡에 둘거다. 명절날엔 미자의 밤을 떠올릴거고 전화를 걸 거다.
"여사님, 다음 주에 찾아뵐게요!"
곧 찾아올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자가 그날 밤을 덜 아프게, 덜 시리게 보내기를 바라며 씩씩한 목소리를 내볼거다.
명절이 지나고 다시 만났을 때, 미자는 애써 우리에게 웃어 보이겠지. 각자의 시간에서 어퍼컷을 맞아도 우리는 다시 힘을 내서 웃어보이며 인사를 나누겠지. 그렇게 동네에 사는 할머니, 동네에 사는 손주가 되어가겠지.
*초등학교 학생자치회 활동으로 동네 혼자 사는 할머니 댁에 주기적으로 찾아뵙는 '동네손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미자'는 저희가 찾아뵙는 할머님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