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봉사일지]4. 어리다
저는 퍽 어려 보이고 싶습니다. 아니요, 저는 퍽 성숙해 보이고 싶어요. 아니다. 저는 어리고 싶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나이가 좀 있고 싶은 것 같네요?
술집에 갔을 때 민증 검사는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소개팅 나갔는데 상대가 은진씨 어려 보인다고 ‘스물일곱 쯤?’으로 겨우 세 살만 깎아서 말하면 서운합니다. 굳이 언급할 거면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요, 누가 저를 어리게 생각하는 건 싫습니다. 학부모님이 “어우, 선생님이 젊으셔서...”라고 서두를 던지는 것도 싫고요. 동료 선생님이 “어려서 그래.”라고 말하는 것도 싫습니다. 초면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반말하는 것도 좋아하진 않고요. 가끔은 정말 그 누구에게도 어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나이나 확 먹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나이’라는 잣대 앞에서 어제는 저렇게, 오늘은 이렇게 느끼며 갈팡질팡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학에서 나의 학생들을 만나면서부터는 ‘어리다’ 쪽에 마음이 퍽 기울었습니다.
받아쓰기 시험이 끝나자 연자 학생이 짜증 난다고 중얼거립니다.
“짜증 날 게 뭐가 있어요~” 물었습니다.
“받아쓰기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아는 거를 틀리니까 얼마나 짜증 나요. 모르는 거 틀리면 인정하는데, 아는 데 틀리니까.”
연자 학생은 아쉬움에 자꾸만 짜증이 나는지 집에 갈 때까지 “짜증 나, 짜증 나.” 반복해서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피식 웃고 맙니다. 그래도 집 가기 전에 고맙다는 인사는 꼭 합니다.
“선생님, 한글 잘 배웠어요. 고마워요.”
따라 그리기 시간입니다.
“나무는요, 이렇게 줄기부터 선 두 개 쫙쫙 긋고, 그 위에 아줌마 파마한 머리처럼 뽀글뽀글 이파리 그리면 끝이에요.”
영미 학생이 투덜거립니다.
“아이고, 선생님은 학교를 다녔으니까 쉽지요. 우리는 진짜 어려워요. 지금 엄청 힘들어요.”
“처음에는 누구나 다 힘들죠. 자꾸 그리시다 보면 쉬우실걸요?”
“그래요?”
영미 학생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꺾인 채로 굳어있어 손에서 연필이 자꾸만 굴러 떨어집니다. 그래도 영미 학생은 선생님이 그리라는 대로 열심히 그려봅니다. 어느새 영미 학생만의 나무가 엽서 위에 자라났습니다.
“엄청 예뻐요.”
저는 칭찬의 틈을 놓치지 않는 선생님이니까 바로 칭찬을 건넸죠. 영미 학생은 자기 나무를 빤히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곤 입가에 배시시 미소를 뗬습니다. 자뭇 뿌듯한가 봅니다. 영미 학생은 처음 나무 옆에, 작은 나무랑 더 큰 나무를 심기로 결심했습니다. 선생님 말 마따라 자꾸 그리면 쉬워질 거니까요.
정숙 학생은 오늘 공부에 집중이 영 안됩니다. 낮에 시장에서 너무 바빴고요, 출출도 하고, 오늘따라 모르는 글자는 왜 이렇게 많은지 짜증도 납니다. 친구들은 한글 공부 재밌다고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하는데, 정숙 학생은 왜 자꾸 집에만 가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혼잣말 인척 부러 선생님 들리게 말해봅니다.
“아, 나는 오늘 머리가 아파. 공부에 집중도 안돼.”
선생님은 다 들었을 거면서 못 들은 체 다음 글을 또 적습니다. 정숙 학생은 그런 선생님이 아주 얄밉게 느껴집니다.
9시입니다.
‘이제 끝나겠지?’
정숙 학생은 몰래 필통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선생님이 한 줄 쓰기를 안 하면 집에 안 보낸다네요. 정숙 학생은 적극적으로 반항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선생님, 싶다 어떻게 쓰지요?”
“시에 피읖 받침이에요.”
정숙 학생의 오늘의 한 줄
‘집에 가고 싶다.’
선생님은 빵 터져버렸고요, 그런 선생님을 보며 정숙 학생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두 시간 내내 어려운 한글 공부만 시킨 선생님에 대한 복수 성공입니다.
나의 학생들을 보며 저는 수많은 감정들을 너무나도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퍽 강렬한 느낌을 ‘어리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내내 고민했습니다. 우선 문법적인 모순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나의 학생들은 어린 사람들이 아닙니다. ‘늙었다’라고 말하는 게 맞죠. 그런데, 자꾸만 제 눈에는 이들이 어려 보였습니다. 어리다는 게 서툴다, 미숙하다 같은 것들과 호기심이 많다, 싱그럽다, 생생하다 같은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게 맞다면 저는 우리 학생들을 어리다고 표현하는 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려지고 싶고, 어려 보이고 싶은 저는 생각했습니다. ‘피부에 안티에이징 크림을 처바르는 걸로 어려지는 게 아니었구나.’ 어려진다는 건, 새로운 것에 눈을 반짝이는 것이었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진심을 다해보는 것이었으며, 배울 점이 있는 사람에게 온전히 배우고자 하는 것이었고, 쪽팔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의 표정은 ‘어리다’라는 말로 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학생들을 만나며 저는 어려지고 싶어졌습니다. 다 아는 체 하고, 지적받기 싫고, 혼자서도 잘하는 척하고, 그따위 감정은 쿨하게 털어버리는 척 하고, 그래서 아무에게도 쉽게 보이거나 무시당하지 않으려 하는 것들 말고요. 궁금하고, 배우고 싶고, 몰라서 쪽팔려도 보고, 좌절도 해보고, 그 와중에 내가 해낸 거를 빤히 보면서 뿌듯도 해보고, 앙탈도 부려보고, 모르겠다고 떼도 써보고, 알려준 사람한테 진심으로 고마워도 해보고, 그렇게 어리게, 내내 어리게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지금의 저는 나의 학생들보다 어설프게 늙어있는 게 맞거든요.
저는 어리고 싶습니다. 나의 학생들 만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