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의 미술관 나들이를 위한 지침서
푹푹찌는 여름
자녀를 등교시키고 누리던 부모의 오전 자유시간은
여름방학으로 인해 종말을 맞이했다.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먹여하는 것을 물론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경쓰인다.
영재발굴단에 나오는 여느 아이처럼 우리 아이도
혼자 뚝딱뚝딱 잘하면 좋으련만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임포스터나 찾고있으면서
에어컨은 어찌나 틀어대는지
아이를 미워할 순 없으니 한국전력공사에 대한 분노만 높아지는 여름방학이다.
포항 어느 바닷가에 널려진 과메기의 눈빛처럼 초점을 잃어가는 아이의 동공과
모터 달린듯 쌩쌩 돌아가는 전기계량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면서 자녀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곳이 어디일까 고민하던 중
문득 미술관이 떠오른다.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없이 자녀와 미술관에 간다면
너무나도 시큰둥한 자녀의 반응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여차하면 민폐 관객이 되기 십상이다.
결코 쉽지 않은 자녀와 함께 미술관 나들이가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만한
부모를 위한 지침을 서술해보고자 한다.
1. 전시 알아보기
대부분의 시도청 홈페이지에서는 지역 내 전시와 공연 정보를 캘린더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와 같은 포털에서 '서울 전시'와 같은 검색어로 검색할 경우
광고를 포함한 전시 정보가 제공되는 경우가 있기에
좋은 전시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시도청 홈페이지를 적극 이용하자.
2. 부모부터 사전 준비하기
미술에 대한 오해가 몇가지 있는데
미술 작품이 자녀의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관람객의 정서따위 생각하지 않는다.
관람객의 연령 또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는데 혈안이 된 자들이기에
자칫 사전조사와 준비없이 미술 전시를 관람했다간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미술작품은 누군가의 내면을 표현했기에
자녀의 내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때문에 반드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전조사를 해야한다.
예를 들자면 팀버튼 전시의 경우
애니메이션 작가로 생각하기에
자녀에게 좋은 전시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작품들을 둘러보면 '이걸 아이들이 봐도 괜찮을까?'싶을만큼
잔혹한 그림들도 많다.
팀버튼의 그림에서 피가 튀고 사지가 절단되는 것은
예삿일이다.
웃는 꽃 그림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타카시 또한 마찬가지다.
아래 그림처럼 해맑은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막상 전시에 가보면 엄청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깜짝 놀라게된다.
아래 작품 또한 어마어마하다.
도저히 그대로 올릴 수 없어
사진을 조금 잘라내었다.
남성캐릭터를 휘감고 있는 것은 결코 물줄기가 아니다.
반드시 사전에 조사하고 미술관으로 나서자.
3. 에티켓 숙지하기
미술관 에티켓은 너무나 당연한 예절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키지 않는 것 같다.
미술관 방문 전 자녀와 함께 반드시 에티켓을 숙지하자
만약 자녀의 돌발행동을 컨트롤 할 수 없다면
미술관 방문을 보류해야한다.
민폐관객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여 작품이라도 손상시켰다간
0의 향연으로 물든 청구서를 받아들 수 있다.
<미술관 에티켓>
가. 적절한 복장
복장은 행동과 마음가짐에 큰 영향을 준다.
택시기사와 버스기사들이 유니폼만 착용하여도
서비스의 품질이 향상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놀이터나 키즈카페에 가는 듯한 복장보다는
친척의 결혼식에 갈만한 복장으로 미술관으로 출발하자
자녀의 관람태도가 훨씬 나아질 것이다.
나. 정숙
미술관에서 떠들지 않는 것은 사회적인 합의가 끝난 문제다.
미술작품을 보며 부모와 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적절한 크기의 음성으로 대화하도록
사전에 약속하자
다. 스마트폰과 사진촬영
스마트폰은 들고가지 않는 것이 좋다.
스마트폰을 사랑하는 자녀가
미술작품보다는 손에 있는 스마트폰에 더 관심이 있을 확률이 높다.
또한 대부분의 미술관은 사진촬영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에
스마트폰을 들고 미술관에 갈 필요가 없다.
다만
사진촬영이 허락되는 전시의 경우
스마트폰을 지참하여 유의미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2가지 사진찍기'와 같은
작은 미션을 자녀에게 제시하자
능동적인 감상을 할 수 있으면서
전시관을 나온 후 그 작품에 대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단, 카메라 플레시는 반드시 끄도록 한다.
라. 관람방향
시계방향이니 반시계방향이니 관람방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방향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전시관에서 직접 표시해둔 관람방향을 따라 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작품을 자유로운 동선으로 관람하면 된다.
다만 다른 관람객의 전시를 방해할만한 동선을 피해야한다.
또한 관람객이 많아 줄지어 이동하며 순차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경우에는
행렬을 따라가며 작품을 감상해야한다.
4. 해설과 설명은 어디까지?
기왕 미술관에 방문했는데 자녀가 많은 정보를 얻어가면 좋겠다는 욕심에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해설을 듣게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부모가 옆에서 작품 하나하나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끝은 결국
"기껏 나와서 전시회 왔는데? 넌 작품 안볼거야?"라는 부모의
짜증과 함께 끝나게 될 확률이 높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짧고 예술작품에 대한 흥미도는 낮다.
미술 영재가 아닌 이상 벽에 걸려있는 그림이 뭐가 그리 재미있겠는가?
오디오 가이드는 딱히 빌릴 필요가 없으며
빌리더라도 자녀가 설명을 듣고 싶은 작품만 주체적으로 듣도록 하는 것이 좋다.
부모의 설명 또한 자녀의 물음이 있을 경우 해주는 것이 좋다.
자유로운 동선으로 여러작품을 쇼핑하듯 감상하다
자녀의 발길이 멈추는 작품에 집중하자
자녀가 어떤 느낌의 작품에 흥미를 느끼는지부터 파악해야
앞으로의 다른 전시를 바르게 고를 수 있다.
5. 기념품샵에서는 돈을 쓰자
미술관의 최고 난관은 아마도
전시관 출구에 떡하니 자리잡은 기념품샵일 것이다.
쓸데없는 지출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늘 관람한 작품과 관련된 기념품을 자녀에게 안겨주는 것이 좋다.
뱃지나 엽서, 그립톡과 같은 기념품들은 금액도 비싸지 않다.
작은 소품의 구매로 마무리하는 미술관 나들이는
자녀에게 인상깊게 남을뿐더러
두고두고 전시를 회상할 매개체이자
다음 미술관 방문을 기대하게 만든다.
6. 스케줄을 여유롭게 잡자
기왕하는 외출 뽕을 뽑고(?) 돌아오고자 미술관을 포함하여
많은 일정을 잡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미술관 관람은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크며
오랜 시간 서서 관람하기에 자녀가 쉽게 지친다.
자녀에게는 미술관 하나만 해도 무척이나 힘든 일정이다.
미술관 관람 후 카페 방문 정도로 하루의 일정을 잡자
관람이 끝난 후엔 시원한 음료와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관람한 작품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자녀와 나누자
미술관 관람 끝에 맛있는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다는 기억은
다음 미술관 나들이를 나설 의욕을 만든다.
자녀와의 미술관 첫 나들이는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을 것이다.
작품에 대한 무관심과 다리 아프다는 징징거림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어찌 첫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
자녀가 집에 돌아와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았을 때
미술관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면,
그래서 다음 미술관 나들이를 나설 동기가 된다면 충분하다.
몇 번의 방학이 지나고
미술관에서 산 엽서들이 자녀의 방 벽 한켠을 채우고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