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닝의 추억
#1. 동현이의 컨닝
언젠가 수학 단원평가를 할 때의 일입니다.
저는 단원평가를 할 때 제가 채점을 하지 않고 그냥 아이들이 채점을 하도록 합니다.
어짜피 이게 시험도 아니고 자기가 자기공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점수에 학생들이 연연하지 않고 공부자체에 의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함께 답을 맞추고 있는데 동현이가 조금 이상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손이 이상하게 자꾸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가보니
동현이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말하는 답과 동현이의 답이 다를 때
그것을 고치고 동그라미를 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크게 문제를 삼는건 뒷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일단 시험끝날 때 까지는 가만히 두고 시험이 끝난 후 조용히 동현이를 불렀습니다.
BK: 동현아 이거 잘하던 못하던 아무 상관이 없는데 왜 그랬어?
동현 : 엄마가 수학시험 잘 보면 상으로 용돈을 주기로 했어요.
이 말에 순간 너무 황당해서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나서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일단 동현이를 교실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모님과 연락이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제 어린시절이 떠올랐습니다.
#1. 1991년 어느날
뜬금 자랑이지만 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어릴 때는 머리가 좋은 편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한글도 금방금방 이해하고, 주산학원에서도 어린 나이에 금새 이해한다고 하고
그러다보니 집에서는 제가 영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국민학교(그때는) 들어가기 전 한글은 기본으로 떼고 적당한 수준의 산수는 해결 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국민학교 1~2학년때는 모든 시험에서 100점을 맞지 않으면 실패였을 정도였지요.
당연히 1~2학년때까지는 모든 시험에서 100점이라는 성적표를 들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학교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점점 학년이 올라갈 수록 머리로 대충 때려나간 것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조금씩 틀리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연히 100점을 맞을 것이라는 시험에서 한 두개씩 틀리면서
부모님에게 자랑할 것이 없어짐에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철은 들지 않았으니 당연히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4학년때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래도 반에서 상위 몇등은 들어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너무 어렵다고 느껴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을 하다가
책상 밑에 표준전과(그때는 이런 교과서 해설집이 있었습니다.)를 펼쳐서
문제의 답을 찾아 적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표준전과의 글자는 너무나 작았고, 문제와 답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픈북처럼 시험을 보는 것이어서 아무래도 티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당연한 이야기이지만(그때 안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이상한건데)
우리반 친구들에게 전과를 펼쳐 본 것을 걸렸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 주위의 애들이 선생님에게
"선생님 백균이 전과펴고 봤어요.!"라고 바로 이야기하더군요.
그러면서 백균이 진짜 나쁜 거짓말장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께서는 모두 책상에 얼굴을 묻게 한 상태에서
"컨닝한사람 손들어"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때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 선생님께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하셨습니다.
"오늘 시험 1등은 백균이다."
이 말을 듣자 저는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파묻었고
아이들은 백균이가 전과보고 한 것을 보았다며 선생님께 따지듯 이야기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을 찾아가
"선생님 저 전과보고 한거 맞아요."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선생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오늘과 같은 유혹이 많을텐데 그때 오늘을 기억하도록 해."
#3. 2019년의 BK가 1991년의 백균이에게 말하다
이 일 이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면 좋았겠지만
그때 저는 철이 들기에는 너무나도 어렸기에
하루를 무사히 보낸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적당히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현실과 타협하기도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을 강타한 것은 무려 30여년이 지나
1991년도의 백균이처럼 제 앞에 서있는 동현이를 본 순간이었습니다.
내 생각만큼 내가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감추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동현이를 보면서
그때 제게 용서해주신 선생님께서 얼마나 큰 기회를 주셨는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지난 다음 동현이에게 큰 화를 내거나 큰 벌을 내리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현이에게 화를 내는 대신 같이 문제를 풀어주며
100점이 된 시험지를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이 100점이 된 시험지가 동현이에게 어떤 자극이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때 선생님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30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일로 가장 변한 것은 동현이가 아니라 바로 제 자신입니다.
동현이를 한 번 더 믿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선생님을 뵐 수는 없겠지만 만약 뵐 기회가 된다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