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일때는 몰랐었는데 교사가 되어보니 알겠다
#0.(자랑주의)
나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알아주는 영재였다.
동네에서 머리 좋은 아이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적어도 한 명은 내 이름을 말했을 정도이고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6학년은 아니었다.) 문제를 보면
답을 찾는 경로가 머릿속으로 자동적으로 그려질 정도로 쉽게 느껴졌다.
내가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 내가 졸업하자마자 초등학교로 바꼈다.)때는
경시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 경시반에 들어가서 학교대표 10명 중 한명으로 경시대회를 준비했었다.
그런데 당연히 시대회에 나가면 당당하게 합격할 줄 알았는데
참가상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고, 그때 나는 선생님에게
모르는 문제를 찍었는데 맞았다고 당당하게 자랑을 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백균아, 누군가 네게 기대를 할 때는 너 혼자만의 무게가 아닌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말에 나는
"전 최선을 다했어요,"라고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의 나는 선생님께서 나에게 화를 낸다는 것 자체로 서운하게 느껴졌었다.
그렇지만 선생님 말씀이기에 대꾸는 하지 않고, 그냥 듣고 넘기면서 대회를 마무리 했다.
#1. 20190525
청소년 과학탐구대회 중 과학토론이라는 분야가 있다.
과학토론 분야는 2인 1조로 어떤 주제에 대해 3시간동안 4매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한 후
그것을 갖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토론을 주고받는 형태로 대회가 이어진다.
그래서 이 대회를 잘 하기 위해서는 재능이 다른 두 사람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이번에 우리 학교에서 선발된 학생 2명은 각자 다른 재능을 갖고 있는 학생이었다.
1명은 아이디어가 번뜩이고 여러가지 아는 것이 많아서 다양한 것을 해낼 능력이 있다.
다른 한 명은 컴퓨터 활용능력이 좋고, 글을 정리를 잘 는 편이다.
나는 이 두 명이 서로 합을 잘 맞추면 너무나도 잘 해 낼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총 동원하여 아이들이 한 단계는 성장 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런데 대회날 아이들이 바로 예선 탈락을 했다.
나름대로 잘 했는데 떨어져서 아쉽다는 아이들에게 그러면 왜 떨어졌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대답은 놀라웠다. 보고서를 4장을 채워야하는데 2장채워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 차에 올라타고는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한 순간
약 25년 이상을 기억하고 있지 않던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 그 시절에 선생님께서 나를 보던 눈으로 내가 그 아이를 보고 있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잘 하는 것을 잘 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아이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말 뿐인 학생으로 선생님이 나를 인지하고 있었고,
내가 내 입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되었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라는 깨달음을
그 학생과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끼면서 알게 되었다.
#2. 학생일때는 몰랐었는데 교사가 되어보니 알겠다
내가 내 이야기를 천천히 해 주고 나서 집에서 누워서 하루를 돌아보았다.
내가 하룻동안 느꼈던 감정은 정말 다양했다.
화, 짜증, 허무함, 답답함이 마구 뒤섞여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그런데 그때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못한 까닭은
그때 내내 곁에서 나를 믿고 응원해준 선생님이 얼마나 실망했을지가
25년이 지나 40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노력과 기대를 이런식으로 저버린 것에 대한 꾸중과 화풀이 대신
25년전의 나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 해주고 나서 아이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내 말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예전같으면 내 말의 의미를 너가 왜 모르냐고 했을 법도 한데
이 말을 내가 이해하는데 30년가까이 걸렸는데 너가 이 말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말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조금 더 여유있게 아이들의 눈빛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3. 좋은 말씀
학생들과 헤어지고 나서 한참 후 학부모에게 문자가 왔다.
학부모가 일을 하느라 학생이 집에 들어온지 한참 후에 만날 수 있었는데
아이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좋았다며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문자였다.
그 메세지를 보고 나서 이 아이는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하나가 떠오르면서 그 궁금증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그때 나는 그 선생님의 말씀이 좋은 말이었다는 것을 전혀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공감을 해 주었다.
이 정도만 해도 그때의 나 보다는 10배는 더 나은 제자가 아닐까?
그때 내 곁에서 지지해주신 선생님께 꼭 한번 찾아가서
감사와 사과의 마음을 담아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