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으로 내 삶의 속도 조절하기
우리네 삶은 참 바쁘게 돌아간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지 고민하며 지내다보면 어느새 계절이 달라져가기도 하고, 문득 연도를 되돌아보게도 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생각과 더불어서 난 뭐하면서 살았나 되돌아보게도 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이뤄온 것에 성취를 느끼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순간 순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끌려다니며 지쳐가기도 한다.
이럴 때 각자만의 작은 루틴으로 내 삶의 속도를 다시 나에게 맞춰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나에겐 무엇이 이런 역할을 해주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집에서는 반자동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린 후 라떼나 아메리카노 혹은 에스프레소 그대로 커피를 즐기고 있다. 학교에는 모카포트를 준비해놓아서 주로 방과 후 오후에 한 잔의 모카포트를 추출해서 마시곤 한다.
오늘 아침엔 오랜만에 핸드드립으로 우리 부부가 마실 커피를 내려서 아침을 향기와 함께 맞이해본다. 물론, 죽 먹기 싫어서 우는 아이와 간식 먹고 싶어서 보채는 장염 걸린 아이가 옆에서 리얼리티를 보태주고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냥 믹스커피 하나 바로 뜯어서 뜨거운 물과 함께 빠르게 즐기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을텐데, 난 커피를 즐기기 위해 들이는 이 시간이 좋다. 이 시간이 내 삶의 빠르기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나의 루틴이랄까..
에스프레소의 경우에는..
머신을 켜서 열을 높이고, 원두를 고르고, 적절한 양을 덜어낸 후, 그라인더 눈금을 어제 커피 컨디션에 따라 적당히 조절한 상태에서 그라인딩..
그라인딩 된 원두를 포터필터에 도징한 후..원두가 고르게 평탄화 되도록 레벨링..
마무리로 머신에서 열수를 조금 빼낸 후.. 에스프레소 추출..
같이 준비한 우유나 뜨거운 물과 함께 커피를 잔에 담은 후, 포터필터를 제거 하고 원두 퍽을 넉박스에 정리한다.
그리고 머신에 한 번 더 물을 내려서 헤드를 깨끗이 딱은 후 커피를 즐기기..
핸드드립의 경우..
포트에 물을 끓이고, 그 도중에 드리퍼와 필터, 서버 등 준비..
원두를 준비해서 그라인딩..
저울 위에 서버와 드리퍼를 세팅하고, 가열된 물로 린싱하며 서버, 드리퍼, 잔 등을 데우기..
저울과 타이머에 영점을 맞춘 후..
드립퍼 안에 원두를 넣고..
뜸 들이기 후, 내 마음대로 추출..
그리고 향과 함께 산뜻하게 즐기기..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땐 바로 정리를 해버리고 커피를 즐기지만, 핸드드립의 경우에는 드리퍼와 서버 등의 정리는 커피 즐기고 난 후에 하는 편이다.
모카포트의 경우..
모카포트 보일러에 적절하게 물 담기..
바스켓에 원두 담기.. 요즘에 내가 쓰는 방법은 레벨링 없이 산 모양으로 봉긋하게 담아주기..
바스켓과 보일러 전부 결합하기..
버너에 모카포트 지지를 위한 삼발이 올려놓고..
약하게 가열..
칙칙~~ 가열 신호가 들려오며 추출이 시작되면..
불끄고, 모카포트 열어서 추출 모습 바라보며 추출 완료 기다리기..
적당히 아메리카노 혹은 라떼 스타일로 즐기기..
모카포트 역시 정리는 커피 즐기는 동안 모카포트가 식길 기다렸다가 나중에 깨끗하게 손으로만 모카포트 씻어서 정리..
이런 식으로 커피를 즐기는 것은 커피믹스나 드립백 커피 등과는 다르게 준비부터 정리까지 나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왜 굳이 이렇게 하는걸까? 커피의 맛과 향, 분위기를 좀 더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난 전문가들처럼 그런 것들을 디테일하게 찾아내고 살펴보며 분석해서 말할 수 있는 수준의 미감은 갖추지 못했다. 물론 그럼에도 차이를 느껴서 이것이 이런 수고를 더하는 중요한 이유도 있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이 수고로울 수 있는 시간이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해주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기거나 허덕이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이야기는 많이들 한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 쉽진 않다. 마치 고속도로 같은 느낌이랄까. 100Km의 속도로 달려야 하는 곳에서 그건 나에겐 너무 빠르니 난 70Km으로 가겠어라고 한다면 민폐 끼치는 사람이 되기 쉽상이다.그렇기에 삶의 규정속도를 따라가며 달려가다가, 의식적으로 좀 더 품을 들여서 커피를 준비하는 시간이 나에겐 나만의 속도로 잠시 드라이빙을 즐기는 순간이 된다.
거기에 더해 카페인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기도 한다. 실제적인 신체작용도 있겠지만..
”그래, 커피 한 잔 했으니 이제 다시 해볼까“라고 좀 더 긍정적으로 마인드셋을 할 수 있게 된다.
글이 길어졌다. 원래 사진 하나와 함께 짧은 글을 쓰려고 했는데, 요즘 교사로서 슬럼프라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데다가 생각은 많고 움직이질 않는 상황이 자주 있어서인지, 생각지 못하게 커피 한 잔과 함께 머리를 식히는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그래, 커피 한 잔 했으니 이제 다시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