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사색#7 남들은 방학으로 알지만 우리에겐 방학이 아닌 2월
2월..
인사발령이 있은 후, 우리 학교는 근처 학교들에 비해서 좀 더 빠르게 새 학년도를 준비하고 있다.
내부형 공모제 교장에서 다시 우리 학교의 평교사로 돌아오시는 교장선생님, 정년을 보내시고 퇴직을 하신 수석선생님, 마찬가지로 정년을 다 보내시고 퇴직 하신 과학조교 선생님과 조리장 선생님(참고로 우리 학교는 모든 분들은 선생님으로 호칭합니다. )의 연합 퇴임식(?)도 있었고, 2월의 당연한 과정 중 하나인 학급 및 전담 교사 발표, 업무 분장 등이 정해졌다.
발표가 나기 전, 미리 교실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교실로 옮길 준비를 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전담이 됐다. 02년도 이후 첫 전담이라 전혀 감이 오질 않는다. 수업 시수는 21시간.. 학년은 2학년과 6학년을 가르친다. 전담교사로서 몇 해 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는 거꾸로교실을 어떻게 적용해가면서 학생중심의 배움을 만들어갈지도 고민해야 한다.
어제, 오늘까지는 6학년 협의실에 내 자리를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어떤 면에선 박태민(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서 게임 시작 전 세팅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으로도 유명했던 선수) 못지 않게 내 주변 세팅을 중요시 하는 것 같다. 휴직 때문에 겨우 1학기만 사용하는 건데도, 굳이 협의실 무거운 수납장, 책상 위치 등을 다 조정해서 결국 내 입장에서 좀 더 효율적인 공간이 되도록 바꿔놓았다. 이 학교에 와서 계속 6학년을 하느라, 올해가 이 협의실을 쓰는게 4년째인데.. 그 4년 동안 협의실 공간의 가장 큰 변화를 오늘 전담이 되고서야 이루어냈다. 운동도 안했는데.. 오늘 하루 14,000걸음 이상 걷고, 35층을 왔다갔다 한걸로 나온다. 고생했네.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 아닌, 내가 항상 머무는 곳이 되버리니 안 할 수 가 없다. 내일과 모레는 협의실 정리 정돈을 좀 해야겠다. 버릴 건 버리고.. 채울 건 채우고..
그러면서, 2학년 선생님들을 도와서 이해중심교육과정으로 성취기준과 평가를 잘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소속은 2학년이기도 하고, 오늘 식사 때 2학년 선생님들이 지난 6학년에서 만들어 갔던 경험을 살려서 좀 도와달라고 하셨다. 내 입장에서 잘 됐다는 생각이다. 왠지 올해 학년 교육과정을 짜지 않으니 편안하면서도 허전했는데, 부담은 덜고 허전함을 채울 수 있게 됐다.
더불어, 머무는 자리는 6학년 협의실에 있다보니, 6학년 선생님들 열심히 만들어가실 때 곁에서 조금씩 도와드릴 수도 있을테고.. 오늘 새로운 6학년 선생님들이 이야기 나누는 걸 듣다보니, 내가 함께 해왔던 지난 3년의 6학년 교육과정과는 또 다른 이 분들과 학생들이 만들어갈 교육과정과 1년의 시간이 이전과는 다르면서 새롭고 뜻깊게 만들어지겠구나 싶었다.
새로운 학년과 업무배정 이후에 이번 주는 계속해서 교내 자체 연수를 통해 학교의 비전 세우기, 생활규칙 세우기, 교육과정 만들기에 대한 연수가 이어진다. 다음 주나 그 다음 주에는 학년별로 알아서 출근하며 3월과 1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테고..
이전에 쓴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 했었지만, 2월은 이런 저런 준비로 뭔가 설레인다.
남들은 다들 방학으로 알지만, 우리 선생님들에겐 방학이 아닌 시간..
그 시간이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 말썽쟁이 학생이나 괴팍한 학부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학교내의 다양한 관계로 인한 두려움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 속에서 나를 표현하고.. 다른 이를 이해해가며.. 좀 더 즐거운 1년을 만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설레임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래본다.
"수석선생님, 퇴임하시는데 어떠세요? 아쉽거나 하진 않으세요?"
"아쉬울 수도 있는데, 그 보다는 후련함이 크네. 43년 동안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 했다는 것에서.. 마지막까지도 책도 많이 읽고 여러 선생님들과 다양하게 공부를 해갔다는 것도 좋았고.. "
2월..
매해 2월을 잘 준비하고..
그 1년을 잘 보내다보면..
나도 마지막엔 후회 없이 후련하게 교직을 마무리 할 수 있으려나.
수석선생님, 저도 선생님이 말하신대로 꾸준히 해볼께요. 특출나진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