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덩어리 NO! 문제 상황YES!
어느 반이든 문제아가 있습니다. 문제아를 넘어서 정서적인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서천석 박사님은 반에서 최소 10%정도가 ADHD에 해당된다고 말합니다.
문제아, ADHD, 분노조절장애, 품행장애...
이름도 참 많습니다. 일단 ‘00장애’라는 이름이 붙으면 그 아이는 문제로 뭉뚱그려 집니다. 아이는 곧 문제 덩어리가 되지요.
‘니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지. 내가 널 어떻게 하겠니.’
‘또 그러는구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교사의 속마음입니다. 제가 가졌던 마음입니다. 이 정도만 노력해도 아이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약이기도 하잖아요. 시간이 지날 때까지 같이 버텨주고 그래도 잘한 점을 찾아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것.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수업 중 벌떡 일어나 의자를 발로 찼습니다. 잠바로 자기 책상을 휘갈기며 멈추라는 신호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왜? 또 시작이야?’
아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는지 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얼른 멈추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자주 비슷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하니 오늘도 그런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아이 옆으로 갑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교탁 옆 의자에 앉게 한 후에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하자며 기다립니다. 아이에게 먼저 시간을 줬습니다. 수업을 하고 잠시 후 아이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
“,,,,,”
아이는 침묵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일인지 알고 싶은데..”
“아니, 붙임딱지 뜯기 싫어요.”
“아, 선생님이 뜯으라고 한 거? 무슨 이유가 있어?”
“아, 그냥 안 뜯어내고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스티커 붙이고 싶어요.”
“그래? 당연히 그래도 되지. 선생님은 더 편한 방법을 알려준 거 뿐이야.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도 돼. 그런데 한 가지 잘못한 점은 그때 손을 들고 선생님께 물어봤어야 해. 안 된다고 화를 내거나 주변에 영향을 주지 않고 말이야. 선생님과 늘 약속했지. 화가날 때 선생님께 도움 구하기. 알겠지?”
“네”
다음 날이었습니다.
“여러분, 붙임 딱지를 뜯어주세요.”
어제 그 아이가 또 일어납니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고, 눈을 흘기며 씩씩거리기 시작합니다.
“영준! 선생님한테 바로 와. 왜 또 그래!”
어제 분명히 말했는데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가 답답해서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습니다. 아이는 씩씩거리고 울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아이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서 어제 일과의 연결 고리를 찾았습니다. 문제아에 대한 나의 잘못된 인식과 대처, 그동안의 내 모습 등.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됐습니다.
“저, 붙임딱지 못 뜯어요.”
“어? 붙임딱지를 못 뜯어? 정말이야?”
“네.”
“1학년 때도 그랬어? 그 땐 어떻게 했어?”
“오늘처럼 똑같이 했어요. 선생님께 혼났어요.”
“영준아, 네가 참 답답했겠다. 이게 안 됐던 거구나. 선생님은 생각지도 못했어. 그럼 지금 알려 줄게. 잘 봐바. 왼손 손바닥으로 왼쪽 페이지를 세게 눌러봐. 그리고 오른손으로 힘껏 잡아 당겨.”
아이는 하라는 대로 해봅니다. 그런데 진짜 잘 못 찢어냅니다.
“영준아, 이게 생각보다 힘을 세게 줘야 해. 왼손으로 꾹 누르고, 오른손은 종이 윗부분이 아니라 옆을 잡아야 잘 찢어져. 이제 한번 해봐.”
아이는 드디어 붙임딱지가 붙은 페이지를 찢어냅니다.
폭풍 박수와 칭찬을 아이에게 쏟았습니다.
“와! 잘했다. 하나 더 해 봐.”
아이는 죽 찢어냅니다.
“우와! 잘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해보자.
아이는 또 성공합니다. 아이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집니다.
“오늘 이후로 이 일은 해결됐다. 하이파이브!”
아이를 도와서 아이가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저도 참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문제아라서 아이가 하는 행동의 원인과 욕구를 지나친 건 아닐까.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데는 이유가 있고 해결책이 있을 텐데. 습관적으로 분노하고 짜증을 내는 일 중에서는 잠깐의 도움과 노력으로 해결될 일도 있겠네.’
문제아를 문제 덩어리로 봤을 때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님의 훈육 방식이 문제지, 부모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외동이라서 그래, 늦둥이라서 그런 거야, 지금까지 비난과 수치심을 너무 많이 느껴서 그런 거야.
원인을 내 마음대로 규정짓고, 아이를 내 생각대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아이에게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조금 더 자세히 보고, 마음을 기울이면 조금 더 아이가 보입니다.
문제아를 1년간 돌보신 선생님, 키우고 계신 부모님. 정말 애쓰고 계신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런데 저처럼 한 가지를 간과하고 계실지도 몰라요. 아이의 문제를 과거 탓, 남 탓,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원인 탓을 하면서,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힘들어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문제 덩어리가 아닌 아이가 힘들어 하는 현재의 상황을 봐주세요. 그 중에는 너무 단순하고, 유치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붙임딱지 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