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건, 아이와 내가 한편이 되는 것
‘아이를 둘러싼 이들은 아이를 위해 한편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든든한 지원군을 데리고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컸습니다.
학부모와 한편에 서서 아이를 위해 어떻게 함께 노력할 지에 대한 이야기는 했지만 정작 아이와 내가 한편이 되지 못하는 위선적인 상황이 생겼습니다.
내가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믿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의 부모와 한편이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연기에 불과했죠.
아이와 내가 눈만 마주쳐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너를 믿는다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아닐 때, 학부모와 만남과 상담은 하소연에 가까웠습니다.
아이들의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변화는 내가 아이와 한편이 되었을 때 찾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 구제불능의 아이,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 내 사랑과 단호함이 필요한 아이, 내가 도와야 하는 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시작됐습니다.
긍정훈육에서는 아이를 문제와 동일시하지 않고 분리합니다.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를 문제아가 아니라 사회적 기술을 배우지 못한 아이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사회적 기술을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존재로 여깁니다.
저는 아이와 한편이 되기 위해 생각을 바꾸고 관점을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노력하다 보니 제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가 보였습니다.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긍정적인 상호작용 보다는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훨씬 더 많이 했습니다. ‘칭찬할 거리가 없어.’, ‘아직 부족해.’, ‘이 정도로는 안돼.’ 라는 생각을 가지고 부정적인 말과 태도를 일삼았습니다.
두 번째로, 나는 이 아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많이 부족한 상태로 아이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배우고 읽고 공부한대로가 아닌 '하던 습관대로' 반응하고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일관성 없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의식하지 않은 채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악순환의 고리들을 과감히 끊기로 결심하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방법적인 부분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책, 영상, 강의 닥치는 대로 찾아봤습니다. 절박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나에게 맞는 방법,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와 내가 한편이 되었을 땐 이미 제 모습도 변해 있었습니다.
내가 변했기 때문에 아이와 한편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저는 조금 힘든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를 진심으로 믿고 기다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와 한편이 되는 일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그래도 정말 중요한 하나를 깨달아서 그걸로 족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아이와 한편이 되는 것입니다.’ 라는 사실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