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성장하길 바라.
하루는 제 모습을 보시고 학년 부장님께서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아이랑 너랑 힘들지 않는 선에서 지도하는게 좋아. 나도 신규 때 몇 달 간을 밤까지 아이를 붙들고 공부를 시킨 적이 있었어. 근데 그렇게 하면 나도 아이도 너무 힘들더라. 그만큼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더 노력하면 아이가 더 잘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 그러니 내가 더 힘을 내서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방법론과 성찰이 빠진 열심만 있는 실천이었습니다. 또한 교사인 나를 중심에 둔 일방적인 가르침 이었습니다.
영어교담을 맡고 있는 지금도 몇명의 아이들을 지도합니다. 그런데 그때처럼 서로가 힘들게 공부하지는 않습니다. 학습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수준과 과제의 단계를 나눠 지도하며 긴 시간 동안 내 욕심껏 가르치기 보다는 아이가 힘들지 않을 정도의 시간만 짧게 짧게 공부하고 헤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아이들은 나와 만났을 때만 잠시 공부하고 뒤돌아서면 자신이 해야할 노력과 과제를 해 오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함께 공부한 내용을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다시 고민과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지?'
'내가 왜 이렇게 아이들을 붙잡고 있지?
'내가 이렇게 아이들을 지도하는 이유가 뭘까?'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그 이유가 명확하고 옳은 것이라면 힘을 내서 이 일을 지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의 결과 아이들을 지도하는 이유는 먼저 나를 위해서 였습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부진 학생이 되거나 부진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로 남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부진 학생은 내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거나 내 역량이 부족함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 체면과 나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죠.
또 다른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 였습니다.
아이가 나와 공부하면서 자신의 노력에 따른 '성장'을 경험하고 '성취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성공 경험은 아이들에게 내적 동력이 되고 자신감의 근거가 되며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될 거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믿음은 제 학창시절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때까지 중간 성적의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때 도덕 선생님께서 아이들 앞에서 제 발표를 크게 칭찬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건네들은 담임선생님 또한 저를 따로 불러 칭찬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받았던 칭찬은 제 노력에 대한 칭찬이었습니다. 스스로도 노력했고 그에 상응하는 칭찬을 받았을 때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잘 해냈던 한 번의 경험이 이후의 제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기 시작했거든요.
다시 고민의 첫머리로 돌아갑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지?' 바로 나와 아이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한 마음은 어쩌면 제 '욕심'과 맞닿아 있는 옳지 않은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한 마음은 제 '진심'과 맞닿아 있는 옳은 이유였습니다.
아이들도 나와 같이 한 번의 성공, 한 번의 성취를 경험하길 바라는
자기 자신에게 이전과 다른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길 바라는
타인에게서 받는 응원과 인정을 경험하길 바라는
노력해서 성취한 결과가 안겨주는 뿌듯함과 기쁨을 한껏 느끼길 바라는 그 마음
부족함이 많지만 앞으로도 이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격려하는 교사가 되길 스스로에게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