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보조사에 마음을 담아보세요.
직업 특성상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은 아주 바쁜 남편.
남편이 늦을 줄 알면서도 혹시나 오늘은 일찍 들어오나 매일같이 확인합니다.
“오늘 늦어?”
“오늘도 늦어?”
“오늘은 늦어?”
“오늘까지 늦어?”
원래 의도는 오늘 일찍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것인데, 표현은 다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오늘도, 오늘은, 오늘까지’처럼요. 표현마다 작은 의미 차이가 생깁니다.
“오늘 늦어?”= 진짜 궁금
“오늘도 늦어?”= 오늘 늦게 오는지 궁금 + (어제도 늦었는데 오늘도 늦으려고?)
“오늘은 늦어?”= 오늘 늦게 오는지 궁금 + (오늘 부부의 날인데 설마 늦으려고?)
“오늘까지 늦어?”= 오늘 늦게 오는지 궁금 + (지금까지 늦었는데 오늘도 늦으면 진짜 죽음이다....)
저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면 이런 미묘한 차이를 이용해 속마음을 전달하곤 합니다. 그래서 메시지를 다 쓰고나서 다시 한 번 봅니다. 이 글 속에 충분히 내 생각과 마음이 담겼나 하구요. 남편은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지만요.
우리말에는 이렇게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오늘' 뒤에 바짝 붙어있는 ‘도, 은, 까지’ 와 같은 말들입니다. 이 친구들을 문법적인 용어로 <보조사>라고 합니다.
문장에서 격을 표시하지도 않고 접속 기능도 하지 않으면서 앞말에 특별한 뜻을 더해 주는 조사를 ‘보조사’라고 한다. 보조사 하나만으로 화자의 미묘한 심리나 정서 등이 표현되는데, 이것은 우리말의 특징이다. 그만큼 보조사에는 종류가 아주 많다.
<말과 글을 살리는 문법의 힘, 정재윤>
저도 늘 하는 말이라 ‘내가 어떤 말을, 왜 그렇게 사용하는지’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법관련 책을 읽다가 이런 것들이 문법적으로 보조사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는 보조사를 더욱더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 간접적으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말에 보조사가 발달했다는 것도 은근히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문화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우리말, 그리고 문법은 들여다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우리가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실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고 지나치는 것입니다. 그러다 언젠가 그 실체를 아는 순간, 앎의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아, 이런 걸 이렇게 말하는 구나!”, “이게 이거구나!’ 하고 말이죠.
“아, 이게 보조사구나!”
앎의 기쁨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보조사에 마음을 담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