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합니다] 4. 교실에서 뮤지컬 장면 만들기
첫 학교에서 지낸지 4년째 되던 해,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다.
우리 반 대부분의 아이들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웃음과 에너지가 가득했다. 자신감도 넘쳤고,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즐겼다. 새로운 것을 배웠을 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응용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재능과 끼가 많았던 아이들 덕분에 우리 반 분위기는 늘 밝고 활기 넘쳤다. 아이들과 함께 최대한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나 또한 이 학교에서 지낼 날이 올해가 마지막이었기에 아이들과 마지막 학교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나는 그 당시 뮤지컬을 취미로 하기 시작한지 어느 덧 2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뮤지컬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고되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를 충분히 극복하게 해 주는 성취감과 즐거움이 따라왔다. 문득, 내가 경험한 것을 아이들과도 함께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겨우 세 번의 공연을 했을 뿐,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에게 이것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감히?’ 라는 물음표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매번 힘들게 연습해야 하는 거창한 프로젝트도 아니니. 단지 우리가 이것을 함께 경험하고 즐기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짧은 장면 만들기 정도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 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들은 내가 조금만 이끌어줘도 곧잘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르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고
내가 경험했던 것을 '나누자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정한 조건은
- 5분을 넘지 않는 분량으로, 연습 시간은 5시간을 넘지 않게.
- 노래, 안무는 부담 없이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조정할 것.
- '잘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을 것.
* 작품 선정: 나의 첫 공연 작품이기도 했던 ‘내 마음의 풍금’
담임 선생님을 향한 풋내기 여학생의 순수한 사랑과 그로 인한 성장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만의 정서가 잘 담겨있고, 배경이 초등학교(작품 속에서는 '00국민학교')이기 때문에 다수의 아이들이 배우로 등장한다.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소풍'이라는 노래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제목 그대로 아이들이 소풍을 가는 내용이기 때문에 공감을 잘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노래에 맞춰 안무와 연기까지 할 수 있는, 뮤지컬의 요소가 고루 들어간 곡이기 때문에 뮤지컬을 체험하기에는 가장 제격이었다. (현장체험학습이라는 용어가 익숙한 아이들은 '소풍'이라는 단어를 어색해 했다^^;)
노래의 첫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 소풍이다, 소풍이다! 소풍이다! 야~호!! "
https://www.youtube.com/watch?v=ddOM8rOWFhM
( '소풍' 프레스콜 영상 중 일부 )
1. 노래 익히기
소풍은 무려 4파트의 화음이 나오는 노래기 때문에 성인들에게도 엄청난 고난이도의 곡이다. 실제 동호회에서 공연을 준비할 때에도 노래를 완성하기 위해 어찌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화음은 과감하게 빼고 주선율만 익혀 제창하게 했다. 도시락을 들고 집을 나서며 듣는 부모님의 잔소리, 소풍 가는 들뜬 마음, 선생님을 향한 마음들이 잘 드러나 있는 가사여서 흥미진진하게 노래를 불렀다.
2. 안무 연습
안무는 노래의 분위기를 한층 더 띄워주는 하기 때문에 '소풍' 분위기에 맞춰 점프하는 것터 시작해서 팔, 어깨, 허리, 다리 모든 부위의 신체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으로 가득! 차 있다. 교실에서 그러한 안무를 시도했다가는.... 아래 층, 위층, 옆 교실까지 시끄러워질 게 뻔하다. 어려운 동작 모두 제외하고, 단순화 시켜 알려주었다. 설령, 동작을 틀리더라도 지적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즐기는 과정이니깐.
3. 대사 연습
선생님, 학생, 부모님, 동네 사람 등의 다양한 역할이 나오고, 그 중 짝을 이뤄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들이 노래 중간중간에 교차하며 등장한다. 발성, 호흡과 같은 것까지 지도할 순 없었지만, 지금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것만은 지키자는 약속 하에 연습했다. 연기에 필요한 몸짓, 행동, 표정도 스스로 구상해 왔다. 여학생 역할을 남학생이 자원하여 하기도 했는데,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넓은 교실 덕분에 책상과 의자를 밖으로 빼거나 옮기지 않아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았다.
교실 곳곳이 무대로 활용되었다.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동선을 활용하게 했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으로 맡겼다.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함에 따라 넓은 교실은 아이들이 사는 동네가 되기도 하고, 소풍장소인 산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의자와 책상은 꽃이 숨어있는 바위가 되었고, 딱딱한 나뭇바닥은 마음껏 뛰어다녀도 문제 없는 풀밭이 되었다. 연극적인 기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보여주는 아이들이 새삼 아이들이 대견했다.
<아쉬웠던 점>
촬영 기술이라고는 없었던 선생님. 마지막에 찍었던 영상은 화질이나 퀄리티 면에서 아쉬울 뿐. 사진 몇 장이라도 제대로 찍어놓을 걸
(아쉬운 대로 영상 캡처본이라도...)
뮤지컬 장면 만들기 활동이 끝난 후, 아이들의 피드백을 받기 위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전체 중 70%의 아이들은 즐거웠다는 응답한 보인 반면, 30%의 아이들은 보통, 뮤지컬 자체에 크게 흥미가 없었다는 반응을 내비친 아이들도 있었다. 26명 중 7~8명 정도에 해당하는 수였다.
이 결과를 보고 ‘아차’ 싶었던 것.
물론 교사 주도로 이루어지는 활동에 모든 아이들이 재미를 가지기를 바란다면 욕심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꼭 배우의 역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역할도 주면 어땠을까? 촬영이나 소품 준비, 아니면 공연을 감상하고 피드백해주는 관객 역할을 해도 충분히 의미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점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뮤지컬 장면 만들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것, 새롭게 시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에게 믿음을 주었던 아이들이었다.
비록 화려한 조명과 장비도 없는 교실에서 짤막하게 진행해 본 활동이지만, 의미있고 값진 경험으로 남아있다.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그 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런 때가 있었지’ 하고 웃음 지으며 떠올리는 기억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