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수업] 4. 음악실? 악기보관실?
# 내가 다녔던 학교의 음악실
-초등학교 시절: 음악실의 존재 여부가 기억나지 않는다. 새로 지어진 학교였는데, 학생 수가 가득 차고 넘쳐서 교실이 부족했고, 그 당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할 정도였으니. 음악실이 만약 있었다고 해도 교실로 바뀌지 않았을까.
-중학교 시절: 음악 시간이 되면 항상 음악실로 이동해서 수업을 들었다. 음악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하며 걸어갔는데, 음악실 안에 전자 피아노가 있었다는 것 말고는 일반 교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고등학교 시절: 음악이 필수 교과목이던 고1. 마찬가지로 항상 음악실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지금까지 봐 온 음악실과는 차원이 달랐는데, 우선 규모가 교실 2개를 합쳐놓은 듯 했다. 실물로 처음 마주하는 다양한 종류의 악기들이 보관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교탁 옆에는 무려 그랜드 피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더군다나 일반 교실과 달리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있었다는 것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이는 교실 전면 한 가운데에 자리한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음악을 영상과 함께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음악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음악실
음악실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요즘 초등학교 음악실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첫 발령받은 학교의 음악실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가 보았다. 그 곳에는 부피가 커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장구, 북과 같은 사물놀이 악기를 비롯해 , 탬버린, 캐스터네츠와 같은 리듬악기와 실로폰, 멜로디언 등의 여러 종류의 악기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런 악기들을 교실에 보관하기에는 비좁으니, 음악실에 보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음악실이 악기 보관을 하기 이전에 더욱 중요한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은 3년차 되던 해, 음악실 바로 옆에 위치한 교실로 배정받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방음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음악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대로 우리 교실로 전달되었다.
당시 내가 가르치던 3학년 아이들은 수업 중 옆 음악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기도 하고, 리코더 합주같은 기악 수업이 있는 날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면 흠칫 놀라는 모습, 반복되는 노래 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지는 모습. 애써 들리지 않는 척 하지만 숨겨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옆 반에서 열심히 음악 수업 하고 있구나. 우리도 다시 집중해서 열심히 하자.’ 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당시 음악실에서 수업을 하시던 교담 선생님께서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하는 늘 미안하다는 말씀부터 하셨다.
그럴 때마다 걱정 마시라고, 괜찮다고 대답하며 선생님의 불편한 마음을 덜어드리고자 했다. 선생님께서는 단지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신 것 뿐, 이는 교실 환경의 문제이니까. 또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께서도 수업을 하시면서 마음이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싶다. 공부할 내용과 아이들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며 수업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음악 수업이 만들어내는 소리들로 인해 주위의 교실에 방해가 될까 하는 걱정에 심기가 많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1년이 지난 후, 나는 음악실과 거리가 먼 새로운 교실로 가게 되었지만, 내가 지내던 그 교실에 배정받았던 누군가는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겠지...
오히려 음악 수업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곳은 시청각실이었다. 학생들의 시청각 교육뿐만 아니라 교사연수, 학부모 교육도 함께 이루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에 화면을 크게 볼 수 있는 스크린과 마이크를 비롯한 음향시설이 마련되어 있었고, 방음도 완벽했다. 무대 단상 위에는 업라이트 피아노까지 있어서, 비어있는 시간을 이용해 종종 아이들과 그 곳을 자주 찾아갔다. 이 곳이 음악실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새로 옮긴 학교의 음악실에서도 수업을 해 본 적은 거의 없다.
6학년 교실 옆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분명 방해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컴퓨터는 고장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교실 의자 수도 부족했다. 단지 수업에 필요한 악기를 챙기고, 반납할 때에만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악 수업도 우리 교실에서 진행하는 게 차라리 나았다. 타 학년 선생님보다는 동학년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는 게 내 입장에서도 맘이 덜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악기 소리를 작게 줄일 수도 없으며, 크게 노래 부르는 아이들을 말릴 수도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는 환경이니,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 음악실은 악기 연주와 무용 등의 방과후학교 수업을 진행하는 용도로도 쓰였는데, 그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었을 옆 6학년 교실에 계신 선생님의 고충은 또 얼마나 컸을까 싶다.
이 의미에 부합하는 음악실을 갖춘 초등학교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초등학교 음악실 실태에 대해 연구하는 논문을 쓰는 선생님께 전해들은 바로는 실제로 음악실이 없는 학교도 꽤나 많다고 했다. 과학실이 없는 학교는 없지만, 음악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음악실이 본연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다 보니 ‘음악실이 꼭 필요한지 모르겠다.’ 하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혼자 짐작해 본다. 씁쓸한 현실이다.
음악실은 단지 교실이 남아서, 방과후학교 수업을 하기 위해서, 악기를 보관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실은 교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없애도 되는 교실이 아니고, 방과후학교 수업을 하기에 앞서 음악 수업을 하기 위한 곳이며,
악기 보관이 주 목적이 아니라, 악기를 마음껏 연주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세종의 한 신설 초등학교에서 방음 시공에 특별히 신경써서 만들어진 음악실 사진을 보았다. 시공의 목표는 소리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다른 교실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방송실뿐만 아니라 음악실도 이렇게 방음 시설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수업 중에 누군가를 방해하고, 누군가로부터 방해받는 일이 없게 하려면 말이다.
온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음악실이 있는 학교에 근무하고 싶은 마음.
욕심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