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합니다] 3. 내 목은 소중하니까
"당신의 목은 안녕하신가요?"
나는 본래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주로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편에 속했다. 천성적으로 목소리가 작아서 발표할 때도 애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임용고시 후, 발령을 앞두고 드는 많은 생각들 중 하나는 ‘이제 교실에 가면 말을 많이 하게 될 텐데.. 목 관리 잘해야겠다.’ 였다.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더 걱정할 정도였으니.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 해, 처음으로 나의 교실을 배정받고 첫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상황들이 새로웠고,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던 3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잔뜩 긴장을 하며 하루 일과를 보냈기 때문인지,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집에서 쉬기만 했더랬다. 걱정했던 것만큼 목이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첫 학교생활을 한 지 3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
갑자기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단순히 잠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입을 움직이며 말을 하고 있는데, 귓속말로 속삭이는 듯한 소리만 들렸다. 온 힘을 모아 소리를 크게 내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가 내 입에 귀를 기울여서 여러 번 듣거나, 내 입모양을 보고 뜻을 유츄해야만 겨우 그 뜻이 전달되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나날들 중 가장 말을 많이 했던 것만큼은 분명한데, 이런 적이 생전 처음이었기에 나는 엄청난 당황스러움에 몸둘 바를 몰랐다. 처음에는 피로감으로 인한 목감기라고 생각했지만, 기침이 나오지도 않았고, 그 외 다른 증상도 전혀 없었다. 갑자기 안 쓰던 목을 많이 써서 목에 무리가 왔나보다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말동안 푹 쉬고 나면 낫겠지 싶었지만, 월요일이 되어도 변함이 없었다. 눈 앞이 캄캄했다. 당장 수업은 어떻게 하지...아이들도 목소리가 사라진 내 모습을 보고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허둥대며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바로 이비인후과로 달려갔다.
의사선생님은 내 목을 찬찬히 살펴보시더니 ‘성대부종’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셨고,
이 상태가 더 악화되면 성대결절이 올 수도 있다고 하였다.
온갖 걱정거리들이 내 머리를 뒤덮었지만, 다행히도 선생님께서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하시며 걱정 말고, 푹 쉬고, 약 잘 챙겨먹으면 충분히 나을 수 있다고 하셨다.
단, 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씀과 함께.....
나: 저는 날마다 수업을 해야 하는데 어떡하죠?
선생님:나으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어요. 목에서 소리를 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리가 가요.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낫는다고 하니 별 도리가 없었다. 눈 앞에 닥친 제일 큰 문제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업 준비를 해야만 했다. 수업 중에 필요한 교사의 지시와 발문들을 사전에 미리 제작한 PPT 화면에 하나씩 입력했다. ○○ 교과서 ~쪽입니다. 글을 읽고, 밑줄을 쳐 봅시다.~를 발표해 볼까요? 등등...
피드백이나 그 외에 수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말들은 실시간으로 입력해서 보여주었다.
분명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만, 원격 수업을 하는 듯한 아리송한 그 느낌...
체육 수업의 경우, 스포츠 강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수업 진행도 함께 부탁드릴 수밖에 없었고, 음악 수업은 시간표를 조정해서 목이 다 회복한 후 진행하기로 했다. 한창 에너지 넘칠 5학년 아이들은 예상과는 달리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평소에 하는 말을 듣는 대신 아이들은 화면을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발표도 열심히 해 주었다. 이렇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수업은 꽤나 순조로웠다. 내가 수업을 할 때 꼭 필요한 말 이외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낯선 형태의 수업 상황 속에서도 화면에 보이는 문장들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주는 아이들이 참 고맙고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많이 미안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다행히 나의 목소리를 되찾게 되었다.
왜 사람은 늘 한 번 잃어보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일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것이 일회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교사가 내 직업이 된 이상, 목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나의 본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겠구나. 이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나의 목은 더욱 심각한 상태에 빠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내 교실의 아이들에게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마이크에 의존하고 방법을 넘어서, 목소리를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배우고 싶었고, 그 무렵 우연한 계기로 뮤지컬을 취미삼아 하게 되었다.
뮤지컬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나의 부족한 성량이었다. 천성적으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는 목소리가 너무 작은 탓에 당연히 노래 소리도 작게 들릴 수밖에 없었고, 대사를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노랫말과 대사가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에.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발성 훈련이 가장 시급했고, 발성을 위한 기본 토대인 올바른 호흡을 연습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더군다나 첫 공연은 마이크 없이 생목(?)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 난관은 컸다.
화를 내는 연기를 할 때에도 단순히 목을 쓰며 소리만 크게 내지른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한 번 큰 목소리를 지르고 나면 목이 잠기기 일쑤였다. 노래를 부를 때에도 마찬가지.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 한 고음이 등장하는 노래를 부를 때에는 긴장감 탓에 제대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안정적인 호흡으로 발성을 제대로 하면서 복부가 단단해진 상태에서 소리를 내야 목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는 있지만 몸은 따라가지 못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고쳐질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이미 오랜 시간동안 습관들이지 못한 채로 살아왔기에 더욱 익숙해지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도 하나씩 쌓여가고 이전보다 내 목소리는 좀 더 커지고 안정적으로 변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성대의 근육들이 조금씩 발달하며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할 때면 온 몸이 경직되고 떨리는 게 느껴지던 나였지만, 이젠 좀 더 자신감 있게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수 년이 지난 지금도 발성은 여전히 어렵고 앞으로 배울 것이 더 많지만,
다행인 사실은 그 이후로 교실에서 목이 아파 고생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체육대회와 같은 큰 행사를 마치고 난 후에 목이 잠시 잠길 때도 있었지만 다음 날 바로 회복되는 수준이었다. 훈련을 통한 신체적인 변화도 있겠지만 그보다 경험으로 인해 생긴 자신감이 크게 작용한 면이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컸던 예전의 모습도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교사는 생활 지도, 수업 기술과 같은 전문성 개발에도 언제나 힘써야겠지만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목을 특히 더 아껴주고 보호해 줘야 한다는 것. 그러한 점에서 뮤지컬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취미생활 중 하나이다.
오늘도 물 한 잔을 마시며 목에게 안부를 묻는다. 내 목은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