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합니다] 1. 왜 하냐고 물으신다면
내가 뮤지컬을 한다고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 첫 뮤지컬 ‘직관’은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2014년 겨울의 어느 날 도착한 문자메시지.
그 때까지만 해도 뮤지컬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는 문외한이었던 나는 배우 최정원이 출연하는 <맘마미아> 뮤지컬을 보기 위해 서울에 다녀오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10만원도 넘는 저 비싼 공연을 보러 간다니...
왕복 교통비만 해도 얼만데!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거 먹고, 옷이라도 한 벌 더 사 입겠어!
그런데, 그 대단한 뮤지컬 작품을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공연한다는 것이다.
이건 대극장에서 하는 작품 아닌가?
이런 공연을 카페에서 하는 게 가능하다고?
그나저나 자선공연이네. 게다가 무료잖아?
무료 공연이라는 말에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고, 시간도 때울 겸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대체 뮤지컬이 뭐길래? 하는 의구심을 안고..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의 무대
아무래도 카페에서 하는 작은 규모의 공연이다 보니 마이크나 조명 같은 화려한 장비는 없었지만, 일단 뮤지컬을 눈앞에서 보는 게 처음이라 신기함이 가득했다. 작품 속에 나오는 노래들도 워낙 유명한 곡들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흥얼거릴 뻔 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내가 끝까지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
다소 어설프고 서툰 모습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내가 괜히 흐뭇해져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고 있었다.
' 저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을까?' 궁금해 하며 보던 중 들리던 익숙한 멜로디.
무대 위 배우들과, 무대 바깥 커튼 속에서 대기하고 있는 배우들이 목소리를 맞춰 ‘맘마미아!’ 후렴구를 부르던 순간,
온 몸을 휘감는 '전율'이 느껴졌다.
노래의 화음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빼어나서도 아니었다.
콧망울에 땀까지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온 힘을 다해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의 얼굴에
엄청난 행.복.감이 가득 차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에너지가 가득한 눈빛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울컥하기도 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더욱 깊게 빠져들었고, 어느 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커튼콜마저 사랑스러운 공연이었다 :)
알고 보니 그 배우들은 뮤지컬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아마추어 뮤지컬 동호회의 회원들이었다. 대학생, 직장인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매년 공연을 올린다고 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성격에다가 연기 경험은 전무한 나였지만,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나도 뮤지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저 사람들을 그토록 반짝거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기분은 과연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었다.
내가 뮤지컬 무대에 서 있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며칠이 지나도 그 느낌은 생생하게 지속되었다.
# 긴장감 가득했던 오디션
며칠 뒤, 신입회원을 모집하는 오디션이 열렸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 곳에 찾아갔다. ‘맘마미아’ 공연을 했던 친구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었고, 나는 그들 앞에서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한 후, 노래 한 곡을 불러야 했다. 준비한 노래가사를 다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가사를 잊어버린 나.. 이러다간 오디션을 망칠 판이었다.
결국 핸드폰으로 검색한 가사를 보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평소 목소리가 작아 고민이었던 나는 1절을 겨우 불렀고, 토마토마냥 빨개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그 오디션은 실력을 평가하여 합격, 불합격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나설 용기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였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무조건 합격이었다. 나를 포함한 3명의 신입회원이 합류했고, 곧바로 이어진 5월 정기공연 계획 발표 (벌써?!???) 3개월간의 혹독한 연습을 거친 후, 첫 뮤지컬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뮤지컬 속에 등장하는 노래들 속에는 온갖 매력이 가득 담겨 있다.
아름답기도 하고 때론 흥이 넘치는 노래들을 배우고,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연기는 결코 쉽지 않았지만 배울수록 재미를 붙였다.
춤 동작을 차근차근 익혀 가며 장면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은 짜릿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것.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훈련해야 할 발성과 호흡은 물론 손동작, 걸음걸이, 표정부터 고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신입 회원들은 모두 경험이 없었기에, 하나하나가 다 엄청난 도전이었다.
사람들이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도 너무 부끄러웠고,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학교 일을 겨우 끝내고 피로감으로 지친 채 연습실로 향해야 하는 날은, 3시간의 연습 시간이 30시간처럼 느껴졌다.
공연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예민해지기 때문에 조금만 의견이 맞지 않아도 뜻하지 않은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많았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때론 건강에 적신호가 찾아오기도....(돌아가면서 감기에 걸리는 징크스는 기본)
하지만 그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던 건
그것을 할 때 내가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 힘든 과정을 함께 견뎌 온 사람들 간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끈끈한 유대감
+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
+ 이제 다 끝났다는 후련함과 아련한 여운까지
나를 사로잡았던 그 감정들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공연이 끝나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어서 다음 공연을 또 준비하고 싶었다.
물론, 새로운 작품 연습이 시작되고 나서,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잠시 후회하기도 했지만,
뮤지컬을 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훨씬 더 컸기에 매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답이다.
잘하든, 못하든 실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인가?
힘든 과정 속에서도 즐기겠다는 의지가 있는가?
그것을 할 때 진정으로 행복한가?
뮤지컬은 나의 삶에 활기를 가득 채워 주었다.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용기내서 도전해 본 경험이 있나요?
다소 힘들더라도 그것을 보상해주는 즐거움 덕분에 절대 그만둘 수 없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취미 활동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