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꿈.끼 탐색이 뭔가요?
부드럽고다정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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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8 23:40
<2015.12.28 02:53>
성탄절에 올리지 못한 글을 이제야 올립니다.
소개글에도 적었듯이 6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매년 장래 희망 직업을 물으면 빠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연예인, 과학자, 공무원, 운동선수, 프로게이머, 판사, 검사...
연예인. 이 답변은 어찌보면 현실적입니다. 요즘 연예인들은 따로 장르가 불분명하죠. 가수인지 연기자인지 일반인인지 연예인인지 모호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인지 가수나 연기자도 아닌 그냥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답변이라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군요. 어쨌든, 연예인이 되고자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가? SNS에 남 저격글 올리고 지우는 일과 사랑타령 흔적을 곳곳에 남기며 흑역사를 만드는 것 말고는 하는 것이 없는데 연예인이 꿈이라면 좀... 기본적인 자기 관리 부터 조언(?)을 해주곤 합니다.
과학자. 과학자는 6학년 수준까지가 딱. 이제 넘어서야 합니다. 과학자는 너무나 광범위 하니까요. 구체화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공무원. 공무원을 말하는 아이들 치고 공무원이 정확히 뭔지 아는 아이는 별로 없더라구요. 공무원도 다양한 분야가 있다는 것은 당연히 모르죠. 그냥 부모님이 "안정적"이라며주입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상 이 답변은 꿈이 없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요?
프로게이머. 6학년인 현재 프로급 실력을 가지고 있는, 프로리그가 존재하는 게임이 있다고한들 성인이 되었을 때도 동일한 게임이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얼마나 뜬구름 같이 이야기인지를 논리적으로 격파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이들이 어느 정도로 게임에 매진하고 있는지 그 정도로 노력할 의지가 있고 상황이 되는지 후벼파는 질문들을 많이 해줘야 합니다. 그냥 PC방 가는 핑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약사. 여기에 교사까지 포함해서 사실상 공부를 엄청나게 잘해야 한다는 점만 제대로 상기시켜주면 성공 아닐까요? 그냥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이런 수준의 답은 6학년 아이들에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수준에서 그나마 와닿는 예를 들자면, "우리 6학년이 114명이지? 최소한 그 중에 늘 놓치지 않고 앞으로도 쭉~ 1~2등 하는 아이만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가 될 수 있을까말까한 정도야. 3~4등 정도면 교사가 될까 말까."
운동 선수. 사실 이 글은 운동선수 때문에 적어 보는 글입니다. 남학생들 중에 축구 선수, 야구 선수를 비롯해서 구체적인 종목이 있는 경우를 포함해서 그냥 아무거나 운동 선수까지 꼭 있습니다. 특히 그냥 공부 못해서 적는 것이 운동선수인 경우가 많지요. 흥미는 있을지 몰라서 재능이나 적성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운동 전문가도 아니면서 어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몇해 전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한 남학생이 운동 선수가 꿈이라더군요. 상담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이야기를 했고, 수업하면서 전체적으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연말에도 역시 운동선수가 꿈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잘하거나 좋아하는 것: 축구, 운동
장래희망: 야구 선수
지금 노력해야 하는 일: 야구 선수가 되는 방법을 생각한다.
충격적인 것은 이게 졸업을 앞두고 부모님과 상의해서 적어온 내용입니다. 정말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면 체육중학교나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 입학할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을 3월에 이야기했습니다. 이 학생은 기초 체력도 약하고 체격도 작은데, 늘 편식도 심하고 이에 대한 개선 노력이 없습니다. 체육 특기생 입시가 진작에 다 끝난 상황에서 지금도 내 꿈은 야구 선수라고 하는 것이 기가 막히지 않나요? 부모가 여기에 동의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 애가 불쌍해집니다. 이게 자식의 자신감을 키워주고 지지해주는 것인지...
이미 야구 선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해주는 저는 나쁜 선생님일까요?
헬조선이다. 노오오오력이 필요하다. 흙수저네 금수저네. 뭐 별 이야기가 다 있지요. 꿈과 너무나 멀어지고 있는 이 현실이 차갑고 암담하지만, 꿈이 있고 지향점이 있는 삶을 추구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꿈과 끼를 찾고 행복을 키워주는 교육을 하라고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는데...
결국 포괄적으로 보면 진로교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담임, 이전 담임, 그리고 부모. 모두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뜬구름 잡는 것도 아닌, 암담한 현실에 지레 겁을 먹는 것도 아닌 깊이 생각하고 가꾸어갈 그런 꿈을 안고 사는 아이들을 키우자고 다짐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