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기고) 나에게 '감사편지'란
5학년 중간에 전학을 했습니다. 새 학교 교무실에 마침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계셨는데, 아마 새 담임 선생님께 저에 대해 좋게 말씀을 해주셨던 모양입니다. 곧 월말고사가 있었고 시험을 완전 망쳤어요. 진도가 다른 부분이 꽤 있었거든요. 학원을 다니지 않던 저는 학교 수업이 전부였는데 당시 선생님은 "너는 공부 엄청 잘한다더니 점수가 이게 뭐냐?"하셨죠. 새 학교에 적응하기도 전에 너무나 수치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학교는 짜증나는 곳이 되었고, 공부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수업은 늘 긴장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6학년이 되면서, 새 담임 선생님(이원철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2년차 초임이셨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총각 선생님이었습니다. 저희는 열쇠 숨겨진 곳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선생님 자취방에 자주 놀러갔습니다. 쳐들어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민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업 시간도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늘 일렬로 놓여 있던 책상도 친구들과 둘러 앉아 모둠을 만든 것도 처음입니다. 모둠, 모둠 활동이란 말 자체가 처음이었습니다. 모둠 이름 짓기, 마스코트 만들기, 구호 만들기, 모둠 과제하기 등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한 것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선생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반가도 부르고, 동요도, 유행가도 함께 불렀습니다. 학교 가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행복했던 그때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교육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합격 소식을 받자마자 이원철 선생님께 가장 먼저 연락드렸습니다. 임용에 합격하고 첫 발령을 받았을 때도, 첫 스승의 날, 첫 졸업식을 마친 날도,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올라 전화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결혼식 주례를 맡아주시기도 했고,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 선물로 옷을 보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상자를 열기 전부터 감동이었습니다. 상자 위에 손 글씨로 적힌 주소를 보니 예전에 선생님의 그 필체였거든요. 카드에 적힌 축하와 축복의 메시지도 제가 기억하는 그 글씨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편지를 자주 써주셨거든요. 20년도 더 지난 지금 선생님의 필체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뭉클했어요. 당시 저희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아주셨는지, 얼마나 마음 깊이 강렬한 기억이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선생님께 답장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원철 선생님께,
선생님, 건강히 잘 지내시지요? 선생님 한 동안 연락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얼마 전 집을 정리하다가 오래 전 사진첩 사이에서 선생님께서 적어주신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희들과 한명씩 찍은 사진 뒤에 편지를 적고 일일이 코팅해서 주셨던 것입니다. ‘키는 작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큰 성진이에게’라고 적어주신 편지를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언제 읽어도 선생님의 애정 어린 격려와 응원이 느껴집니다. 정말 마음이 큰 사람이 되어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저도 선생님을 닮아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나누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기를 늘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전해주신 편지는 저에게 언제나 나침반 같은 존재입니다. 선생님과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오랜 시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자 성진 올림
2021년 초록우산감사편지 공모전 교사 홍보대사 활동의 일환으로 기고 요청을 받아 적은 글입니다. 요청 받은 글이지만 진심을 담아 적었습니다. 5월 4일 기사가 올라왔네요. 지면상 좀 편집이 되었는데, 이 포스팅 내용이 원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