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습니다! 반갑습니다! 황성진입니다.
<2015.10.10 03:19>
게시판 생성!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전환점이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역시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 상으로 가장 오래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떠올려 봅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당시엔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학년말고사, 수학경시대회까지 시험이 참 많았습니다. 1학년 때부터 줄곧 공부는 좀 했습니다. 반에서 2~3등은 늘 했죠.
부동의 1등을 하던 친구들은 공부도 잘하고, 집도 좀 살고, 엄마가 어머니회 활동도 좀 하시고, 그림 대회며 노래 대회며 나가서 상도 타고, 방송국 합창단도 하고, 웅변도 하고,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 아람단 등등등등... 다른 반 선생님들도 두루두루 알고 그랬던 반면, 저는 그냥 적당히 말 잘 듣고, 적당히 공부만 잘하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5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됐어요. 전학간 학교 교무실에 갔더니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교무부장인지 연구부장인지 교무실에 자리가 있더군요. 굉장히 반가워 하셨고, 아마 새 담임 선생님께도 저에 대해 좋게 말씀을 해주셨던 모양입니다. 전학을 가고 곧 월말고사가 있었는데, 시험을 완전 망쳤어요. 진도가 완전히 달랐거든요. 다른 과목을 뭐를 놓쳤는지 모르겠고, 수학은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배수와 약수, 최소공배수와 최대공약수 개념을 전혀 배우지 못했어요. 학원을 다니지 않던 저는 학교 수업이 전부였는데 당시 선생님은 "너는 공부 잘한다더니 이게 뭐냐?"며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줬죠. 그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확 잃었습니다. 학교는 짜증나는 곳이었고, 수학 시간은 늘 긴장되고 지옥 같았죠. 덕분에 많이 놀았고,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부들부들)
6학년이 되면서, 이원철 선생님(경기도 수원시 효탑초 교무부장님)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2년차 초임이셨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총각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를 비롯한 우리반 아이들은 정말 진상이었어요. 선생님 자취방 열쇠 숨겨진 곳을 알고 몰래 놀러가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빠듯한 봉급에 당시 차도 없이 택트 타고 다니셨는데...(흐르는 눈물 좀 닦고)(택트는 당시 많이 타던 스쿠터)
5학년 때, 열심히 놀기 시작해서 6학년 때는 정말 미친듯이 놀았어요. 축구하고 컴퓨터게임하고 오락실 가는 정도... 요즘 노는 어린이들 수준을 생각하면 참... 귀여웠네요. 가끔(가끔 맞나...?!) 선생님 속도 썩이고 했지만 공부 안한것 말고는 크게 잘못한 일은 없는 듯.
당시엔 정말 신선했던 "모둠활동" 모둠이라는 말 자체가 처음이었습니다. 모둠 이름도 짓기, 마스코트 만들기, 구호 만들기, 모둠 과제하기...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한 것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선생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반가도 부르고, 동요도, 유행가도 함께 불렀습니다. 학교 가는 것이 항상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고등학교 때, 공부 편식이 심하고 게으른 탓에... 내신성적은 거의 거저 먹는 과목인 예체능, 제2외국어, 한자 같은 교과가 전부 '양', '가'라서 유리한 입시 전형 찾아서 교대 원서를 넣다보니 한번 가본 적도 없는 전주까지 가게 됐습니다. 전주교대 합격 소식을 받자마자 이원철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업 중에 전화를 받으셨어요. 무슨 급한 일이 있나하고 받으셨나 봅니다. 합격 소식을 들려드리자 아이들의 박수와 환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제야 알았는데, 선생님께서도 전주교대 선배님이셨어요. 신기하죠. 선생님은 전주에서 연고 없는 충북에 발령을 받으셨고, 저는 충북에 살다가 연고 없는 전주교대에 입학을 하고.
발령을 받았을 때도, 발령 받고 첫 스승의 날, 첫 졸업식을 마친 날도,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올라 전화 드렸습니다. 제가 병상에 있을 때 달려오셔서 손 잡고 기도해주셨습니다. 결혼식에 주례를 서주신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인데 늘 먼저 아기 선물 잊지 않으시는 것까지 항상 감동 받습니다.
바로 지난 추석에도 선생님께서 아기 옷을 보내주셨습니다. 가장 감동은 택배 상자에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적은 주소를 보니 예전에 선생님께서 적어주신 손편지의 그 필체였거든요. 20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의 필체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뭉클했어요. 당시 저희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아주셨는지 새삼 떠올랐습니다.
제가 교사가 된 후, 초임 때, 조퇴하는 아이가 걱정되서 차로 태워다준 일이 있어요. 저도 언젠가 몸이 너무 아파 조퇴를 하는데,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에 몰래 저를 집에 데려다 주셨거든요. 택트 뒤에 타고 오면서 아빠등에 엎힌 느낌이었습니다.
요즘 정말 많이 바쁩니다. 소개글에 적어둔 것처럼 똥 쌀 틈도 없이 바쁩니다. 그런데 이 정신 없는 지금 에듀콜라 집필진에 참여하는 것은 내가 왜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스승으로 남고 싶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방향은 잃지 않고 싶어요.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보려 합니다.
주절주절 1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