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단체영화관람 도중 베드씬이 나왔습니다
현재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매우 다양해졌다. 특히나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하기 위해 영화관 뿐만 아니라 TV, 스마트폰 등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혼자서 감상하는 경우가 전보다 많아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본래 극장에서 함께 감상하기 위해 제작된 매체이다.
에디슨이 발명한 '키네토스코프'로 본 영화가 최초의 영화가 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키네토스코프는 혼자서 영상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진 도구이다.
그래서 영화사에서는 최초의 영화를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시네마토그라프'로 삼는다. 이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2.35:1 비율로 그것도 훨씬 더 풍성한 사운드를 들으며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극장이 영화를 감상하기에 최적화된 곳이 아닐까.
서론이 매우 길었다.
독자가 궁금해하는 부분은 이게 아닐 터
사실은 갑갑한 교실을 벗어나고자 학생들과 함께 영화관에 같이 가서 영화를 보는 시간을 매년 한 번씩 꼭 마련하고 있다.
교실에서 다같이 영화를 보는 것과 극장에서 다같이 영화를 보는 것은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상영중인 영화라는 점이다.
그런데 학생들과 볼만한 영화가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에듀씨네 추천영화를 살펴보았는데 <코다>가 눈에 띄었다. 학교 가까이에 있는 영화관에 문의하여 상영 가능한지 알아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극장에 사람들 발길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 덕택에 상영관 하나를 통째로 대관하는 것이 좀 더 수월했다.
그래서 함께 보기로 한 영화는 <코다>였다. 예고편을 찾아봤더니 전에 인상깊게 봤던 <미라클 벨리에>, <나는보리>와 결이 비슷한 것 같았다. 12세 관람가여서 왠지 모르게 더욱 안심이 되었다. 참고로 우리반 학생들은 5학년 학생이다. 12세 관람가 영화는 보호자의 동반 하에 관람이 가능하다.
네이버 한줄평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유튜브 영화 소개 영상, 왓챠 한줄평 등도 추가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든 생각.
이정도면 꽤 괜찮은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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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과정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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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푼 마음으로 학생들과 함께 영화관에 왔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상영이 시작되었다.
주인공 '루비'의 가족은 루비를 제외하고는 전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루비는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소통 매개자 역할을 한다.
(왼쪽부터 엄마, 오빠, 루비, 아빠)
그런데... 영화 초반부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사들이 나왔다.
엄마와 아빠에게 당분간 성관계를 하지 말라고 전하는 의사 이야기를 루비가 수어로 전해야만 했다. 그리고 루비의 엄마 아빠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며 의사에게 따졌고 루비는 이 내용을 의사에게 수어로 전달했다. 우리 모두는 수어에 대해 몰랐지만... 누구나 어떤 맥락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진땀이 흘렀다. 5학년이라면 부모님이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알 만한 나이지만 문화차이 때문인지,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개방적으로 하지 않지 않는가. 하지만 이 부분은 그럭저럭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땀이 흐르는 장면들이 또 나왔다.
루비가 마일스와 함께 집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데, 옆 방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참다못한 루비는 부모님의 침실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부모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나왔다. 베드신이었다. 물론 신체 노출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야 할까.
그리고 조금 뒤에 이어서는 루비의 오빠와 루비의 친구가 키스를 나누는 장면도 나왔다.
영화를 미리 보기 전에는 이런 정보를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코다>를 보기로 한 선택에 대해 후회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 다음 장면부터는 함께 볼만했다. 꿈과 가족에 대한 헌신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을 격려해주는 음악 선생님과 부모님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현재 우리반에서 어쿠스틱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는 노래를 연습하는 장면이 많이 와닿았으리라. 결말도 좋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그런데 이대로 보내기는 조금 찝찝했다.
그래서 상영관 밖에서 10분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줄거리와 기본적인 내용을 파악했는지 질문을 했고, 이어서 본격적인 질문을 하였다.
혹시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장면이 있었나요?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불편했던 장면이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어떤 장면들이 불편했는지를 물어보았더니 내가 예상했던 장면들에 대해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각각 루비의 부모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 그리고 루비 오빠와 루비 친구가 격한 스킨쉽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모두는 훌륭한 감상자입니다. 이제 감상한 영화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분석해보도록 해요. 해당 장면이 이야기 전개에 꼭 필요한 장면이었는지 그렇지 않은 장면인지 한 번씩 생각해봅시다."
"먼저 부모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필요했는지, 필요하지 않았는지 손들어봅시다."
어? 생각보다 이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 수가 절반이 넘었다.
"해당 장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 대표로 이야기해 볼 친구 있나요?"
"부모님의 사이가 가깝다는 것을 굳이 그 장면이 없어도 나타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필요없다고 답한 학생들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해당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 대표로 이야기해볼 친구 있나요?"
"해당 장면이 있어야 마일스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고 루비와 갈등이 생기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이 생각을 들은 몇몇의 친구들은 이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였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발표했다.
"장애인들도 일반인들처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닐까요?"
오? 이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다. 이 학생의 말을 듣고 이내 수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몇의 학생들도 공감을 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루비 오빠와 루비 친구가 키스를 나눈 장면은 필요했는지 혹은 불필요했는지 여러분들의 생각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절반에 조금 미치지 못한 학생들이 해당 장면이 필요하다고 했고 나머지는 굳이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 답했다. 나도 동의했기 때문에 이 선에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친구가 손을 들고 이렇게 발표했다.
"장애인과 일반인도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닐까요?"
이 생각도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그 때 깨달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영화를 감상한 직후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도 알게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생각보다 학생들은 깊이있는 사고를 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며 마무리지었다. 정답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여러분은 모두 이미 훌륭한 감상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접할 영화 뿐만 아니라 여러 영상 매체를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아마 이 시간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 날 저녁에 많이 마음을 졸였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함께 볼 영화는 더욱 더 꼼꼼하게 검수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교실에서 다같이 감상할 영화라면 이 부분을 건너뛰기할 수 있지만 극장에서는 이렇게 하기 어렵다. 함께 감상할 영화를 정할 때엔 상영작이라 할지라도 미리 감상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작년 연령별 영상 교육 교구 개발(영상물등급위원회) 연구에 참여할 때 알게 된 사실들이 떠올랐다. 영상물등급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학생들과 함께 해당 영화를 볼 것인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들이 많이 제공된다.
또한, 해당 영화에 대한 등급분류를 온라인으로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분까지 꼼꼼히 확인하여 학생들과 함께 볼 영화를 선정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과정까지 거친다면 독자들이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