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생의 체육잡설] 수업하기 싫은 교사, 그리고 수업하고 싶은 강사
스포츠강사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글은 이제 그만 쓰려고 했는데, 그걸 그만두는 게 저한테는 쉽지 않습니다. 스포츠강사와 관련된 여러 쟁점들-정규직 전환이나 단독 수업권을 달라거나 초등체육교사로 명칭을 전환해달라는 등-은 확대해서 보면 비단 초등 체육교과에 제한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인데요, 올 여름에 이슈화되었지만 오래 전에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이 분쟁은 영어회화강사들의 문제에서도 거의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게 관심이 가는 부분, 그리고 도저히 논쟁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은 초등교육의 전문성에 대한 것입니다. 교사로서의 상당부분의 역량을 체육교과에 들이고 있지만 저 역시 초등교사이기 때문에 초등체육의 전문성 못지않게 초등교육의 전문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초등교육의 전문성은 오래도록 의심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심 덕에 많은 선생님들의 직업적 자존감이 흔들려왔고, 이제는 위태롭기까지도 합니다. 요새는 교사집단이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관련 기사1 : 경기도의회, '방과후학교 조례' 재추진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8/0200000000AKR20171208078100061.HTML?input=1179m
관련기사2: 김미리 도의원, 교사 방학 중 근무 문제 제기
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252614)
요즘에는 ‘우리가 적폐인가?’하는 류의 글들을 인디스쿨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초등교육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전문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다시 스포츠강사에 대한 쟁점으로 돌아갑니다. 현장의 많은 선생님들은 스포츠강사 제도의 존재가 초등교육의 전문성 문제에 대하여 발톱 밑의 가시와 같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경우 스포츠강사의 배정을 좋아하십니다. 그러한 이유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체육수업을 주당 한 시간에서 세 시간을 ‘대신’ 해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잘 알 듯, 스포츠강사의 본래 역할은 수업에 대한 협력교수-좀 더 정확히는 수업 보조입니다. 수업의 책임은 전적으로 담임교사에게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넘겨’ 버립니다. 이러한 스포츠강사의 활용은 우리의 가치를 갉아먹는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포츠강사 제도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열거해보겠습니다.
1. 교사들이 규정을 어겨가며 스포츠강사에게 수업을 떠넘김으로 인해 초등학교의 수업은 페다고지적 마인드가 없어도 지식이나 기능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2. 스포츠강사 문제는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거나 혹은 우리끼리만 인정하고 있었던 초등교육 전문성이 붕괴된 사례이다. 이것은 외부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우리들의 '그들만의' 전문성이 어떻게 침탈되거나 부정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우리가 늘 주장했던 '눈높이 이론'이 철저하게 깨진 사례이기도 하다. 스포츠강사들이 평균의 교사들에 비해 학생 눈높이에 맞춘 신체 활동을 다루는 것에 익숙하다. 결국 '눈높이'를 맞추는 능력-이른바 '관점의 하강'은 교사 양성기관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득되는 것이며, 이는 교사 양성기관에 가르치는 것들은 적어도 그러한 역량과 관계 없다는 것을 함의한다.
4. 이것과 관련하여 교사 양성기관에서 교과 교육에 대한 어떠한 잠재적 역량을 함양하지 못했고 현장의 교직 문화는 공동성장과 관련된 풍토가 거의 없거나 형식적인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물론 오남용될 소지가 있는 스포츠강사 제도를 만든 기관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상급 ‘기관’들의 교사와 초등교육에 대한 삐뚤어진 관점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1.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은 교사들이 전문성을 스스로 향상시키는 것이나 전문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거의' 관심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들(교사의 역할)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2. 스포츠 강사 제도를 비롯한 각종 외부 강사 유입과 관련된 제도는 교사들이 게을러질 수 있는 어포던스를 담고 있다.
3. 대부분의 이러한 제도들은 수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을 대신해주는 이상한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교사의 존재가 대체 가능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전문성이라는 것 자체가 부정되고 있다는 점을 기관에 의해 공인된 것이며, 이것을 수용하는 것은 교사 스스로 전문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4. 그러나 기관들은 상당히 잘못 판단하고 있다.초등 체육수업의 문제는 전문인력(전공자들)의 수혈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중초 임용 체육교육 전공자들이 현장에 들어왔지만 체육수업의 질이 향상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심지어 각종 학교 체육 정책들이 체육 경험의 보편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20년전 체육수업에 비해 퇴보되었다. 원인은 다른 것에 있으며 더 복잡한 문제다.
물론 제도 탓만 하기에는 우리의 잘못도 큽니다. 스포츠강사 뿐만 아니라 학교에 다양한 외부 강사들이 많이 들어와 있고, 우리는 아무런 의식 없이 그들에게 수업을 넘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세게’ 이야기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교사들은 외부 강사들 덕에 한 두 시간 수업이 빠지는 것에 헤벌쭉할 일이 아니다.
2. 스포츠 강사 제도와 같은 '외부 강사'를 활용하는 대부분의 것은 ‘수업의 하청 혹은 외주’일 뿐이다.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가 수업에 대해 외주 또는 하청을 발주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3. 초등교육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방을 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 시간 숨 돌리자고 수업을 외부에 떠넘기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바빠서 한 동안 글을 못 쓰다가 오랜만에 쓴 것이 이런 찝찝한 글이 되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어제 발표했던 논문 때문에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교단 일각에서 보이는 수업권을 쉽게 넘기는 문제는 참으로 곱씹을수록 심각한 문제입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초등교육의 전문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동시에 초등교육 전공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정규 교과 수업 시간에 수업을 대신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의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습들이 자칫 ‘수업을 하기 싫은 교사 vs 수업을 하고 싶어 하는 강사'의 구도로 비추어지지는 않을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일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수업권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수업은 하청이나 외주의 대상이 아닙니다. 수업 시수가 많다면 초등교사 채용을 강하게 요구해야 하고, 행정적인 업무가 많다면 그것을 줄여나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근본적인 과업인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