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생의 체육잡설] 우리는 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현장에 내던져졌을까?(2)
지난 글에 이어서 이번 글에서는 우리의 ‘현장 이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현장 이론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이라기 보다는, 일상적인 의미에서 사용될 수 있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먼저, 현장 교사들에게 활용될 수 있는 체육 수업 이론이라는 의미가 있고, 또 하나는 현장에서 교사들이 획득한 경험적인 지식 내지 개인화된 이론을 의미합니다. 이 글에서는 교원 양성 기관이나 재교육기관, 문헌을 통해 알려진 여러 수업이론들, 현장의 교사 공동체가 만든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수업에 대한 관점들에 대해 저의 입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체육수업에 대한 고민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체육교육의 긴 역사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체육이 교과로서 고민된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즉, 교과로서 체육이 교육과정에 포함된 것은 오래되었지만 교과란 무엇인지, 그리고 체육이 교과로서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체육은 교과로서 다루어지기 보다는 스포츠 교육으로서 다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스포츠 교육은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생활체육, 전문체육을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게다가, 스포츠 교육이라는 분야에서 공교육 상황에서의 교과의 일반론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는 체육교육의 성찰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자체가 체육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데 말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교원 양성 기관에서 기술적이고, 언어적이고, 기능 중심적인 교육을 받은 채 현장에 내던져집니다. 우리는 움직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의 움직임은 보편적으로 어떤 발달 단계를 보이는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움직임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사실 명시적으로 배우거나 소개받은 바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노하우에 의존하거나 교사 개인의 스포츠 취향에 맞춰 학생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이러니 우리는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편견을 갖게 되고, 자신의 스포츠경험에 비추어 인습적인 수준에서 체육수업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개인의 경험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험이나 인습에 기반한 체육수업이 체육교과의 본질적인 목적을 흐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의 문제는 목적이 바르지 않으면 세부적인 목표들이 산만해지며 내용과 방법도 어지러워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체육수업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분명하지 않은 관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흔들림으로 인해 수업 내용을 선정하고 조직하는 것이 조잡해지고 수업을 실천하는 것도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혼란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 혼자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제 관점에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교과로서의 체육수업의 특성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체육수업은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떠한 움직임의 양상을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이 움직임의 양상이란 인간의 문화의 한 종류로써 다양한 신체활동의 양식-춤, 체조, 게임, 스포츠 등-으로, 문화의 일반성을 뜻합니다. 우리는 매우 제한된 시간 안에 이것을 가르쳐야 하므로, 전통적 방식으로 스포츠를 가르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안적인 것들을 선정하거나 개발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아마 그 주제들은 뉴스포츠보다 더 간단한 형식이 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즉, 제 말은 체육교과에서의 수업이 스포츠 자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수업 장면으로 설명하자면, 20차시 안에 야구형 게임(필드형/타격형 게임)을 가르쳐야 되는 상황이라면 야구를 가르치기 보다는 티볼, 아니면 발야구, 그것도 어렵다면 주먹 야구나 던지기 야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구형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야구공을 정확히 던지고, 배트로 공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구형 게임들이 가지는 타격과 송구, 주루와 그에 따르는 공통된 규범들을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만약 더 쉽게 타격하고 더 쉽게 공을 던지고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야구형 게임들이 가지는 다양한 경험들을 충분히 체험하고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본다면 야구형 게임을 가르치는데 꼭 티볼을 가르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물론 이러한 저의 주장은 체육교과 수업이 스포츠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충돌될 것입니다.
우리의 체육수업에 대한 오랜 상식들-체육교과에서는 스포츠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채 현장에 내던져졌습니다. 저는 그 상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그 상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수업을 능히 해낼만한 이론을 배운 바가 없습니다.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부족함을 경험으로 극복해왔습니다. 현장의 체육수업에 대해 교사들이 겪는 문제들도 언젠가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체육 교과 교육에 대한 기존의 입장들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수업을 개선해나가기 위한 노력을 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현장에 내던져졌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