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3탄] 7. 말하기, 이것만은 지키자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 점유율은 교사가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 교사의 기다림, 듣기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언제나 수비만 할 수는 없다. 공격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할까? 말하기의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1. TPO 생각하기
TPO는 패션계에서 유행해서 현재는 일상적으로 활용되는 용어다.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의 약자인데 한 마디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육원 봉사활동에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온다든지 장례식장에 화려한 원색 티셔츠를 입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TPO를 지키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센스가 부족하다는 걸 넘어 상대에 대한 무례로 받아들여진다. 교사의 말하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연 TPO를 잘 지키고 있을까?
1) 시간(Time) : 나는 필요하다. 고로 말한다.
“수업 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어떡해!”
“지금 뭐하는 시간이지?”
교사들은 학생의 시간 준수에 민감하다. 나도 그렇다. 시간 준수와 엄수를 성실함의 척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사는 시간을 엄수하는가?
“숙제를 해오라고 한 게 언제인데 아직 안 한 거야? 지난번에는 청소도 안하고 갔더라?”
“아, 맞다. 이번 체험학습은 강화도로 갈거야. 그 때 준비물 잘 챙겨와야 해.”
교사가 말할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학 시간에는 수학 공부를 하고 체육 시간에는 체육 공부를 한다. 하지만 정작 교사는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말한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훈계나 안내도 한다.
물론 이유가 있다. 이야기를 할 적절한 시간이 없을 수도 있고 학생들이 질문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 아침 시간 등을 활용하는 게 옳다. 예를 들어,
“선생님, 그런데 다음 주 체육 시간에 피구해요?”
라고 묻는다면 조용히 칠판 구석에 ‘피구’라고 쓴다. 그리고 그 질문이나 주제에 대해서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이야기 한다. 교사가 시간을 지켜서 말해야 학생도 시간을 지켜서 말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앞의 글에서 언급한 기다림의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교사의 모델링이 필수다.
2) 장소(Place) : 여긴 어디?
장소도 중요하다. 특히 공개적인 장소인지 비공개적인 장소인지 구별해야 한다.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적인 장소(복도, 교실, 운동장, 식당 등)에서 하는 것은 위험하다. 고학년은 물론이고 어린 학생들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듣는 훈계는 비난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공적인 내용이나 전달 사항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는 것이 좋다. 이 경우 사적인 장소에서 소수에게 하면 오히려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공적인 장소에서, 대상 집단 전부에게, 한 번만 말한 뒤 질문까지 받는다. 그래야 명확하다.
3) 상황(Occasion) : 종합 예술
상황은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외부 변수’와 ‘내적 감정 상태’ 차원에서 살피면 된다. 교사 자신의 감정 온도가 높아져있지는 않은지, 바빠서 말을 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은지 등을 살펴야 한다. 동시에 학생이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지 않은지, 곧 학원에 가야하는지, 화가 나서 뚜껑이 열렸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상황에 대한 판단은 스포츠 경기와 같아서 도식화된 정석이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는 감독이 되어 순간순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다른 방법은 없다. 연습과 경험만이 상황에 대한 능숙함으로 교사를 이끌 것이다.
2. 간결하고 명확하게
‘Simple is the best’
천재 CEO 스티브 잡스의 인생 지향점은 간결함과 단순함이었다. 진정한 고수는 어렵고 복잡하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표현한다고 했다. 간결하게 하는 건 복잡하게 하는 것보다 어렵다.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간결하게 말하기보다는 길게 말하고 싶어 한다. 특히 교사들은 ‘직업병’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길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훈계나 교육적인 말하기의 경우 학생이 납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유를 길게 덧붙인다. 그래서 말이 길어진다. 하지만 자세하게 설명하면 더 잘 납득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우리의 뇌가 그걸 거부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단기 기억은 7개의 낱말 내외의 것만 기억한다고 한다. 그 이상을 넘어갈 경우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날아가버린다. 가급적 5개의 낱말 정도로 문장을 만들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교사는 길게 말하기의 달인이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본인의 말하기를 녹음한 뒤 들어보는 것이다. 문장으로 타이핑해보고 줄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줄여 간결하게 만든다. 동어 반복을 피하고 필요 없는 꾸밈말들(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완전, 어쨌거나, 이, 더 등)을 없앤다. 번역체 말투도 피한다. 그리고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말버릇(‘어?’, ‘내말 이해했어?’, ‘알아들었어?’ 등)을 버려야 한다. 특히 많이 하는 실수는 중요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번 이야기한다고 더 잘 듣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명확하게 말한다는 것은 상대가 말 속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한다는 걸 의미한다. 다시 말해 말 속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보여야 한다. 주장하는 글쓰기처럼 두괄식이나 미괄식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듣는 학생의 성향이다.(여기서부터는 과학적 근거가 있거나 성적 편견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 경험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는 학생(남학생이 많다.)은 교사가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앞에 본론을 위한 꾸밈말이나 설명을 길게 하면 잔소리로 받아들인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먼저 던지고 보충 설명을 붙이는 게 효과적이다. 반대로 감성적 사고에 더 비중을 두는 학생(여학생이 많다.)은 메시지보다 관계와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충분히 공감하고 상황을 설명한 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좋다.
3. 비언어적 표현
하버드 대학교에서 엠바디 교수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한 학기 동안 실제로 강의를 들은 학생과 음소거된 강의 영상을 10초 정도 보기만 학생의 교수에 대한 호감도를 연구했다. 그 결과 두 집단의 평가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음소거된 영상을 보는 시간을 줄여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교수의 비언어적인 표현이 평가에 중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비언어적 표현이 말하기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메라비언의 법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특히 교사의 비언어적 표현은 더 중요한 영역이다. 교사는 본인의 날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 어렵다. 교사라는 위치 때문에 정제되고 억제해 표현한다. 하지만 표정은, 자세는, 몸짓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실토한다.
“선생님이 지금 너한테 화내는 게 아냐!”
“(노려보며) 솔직하게 다 이야기해도 좋아.”
언어적 메시지와 비언어적 메시지가 불일치할 때 상대는 불안을 느끼고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사는 누구보다 비언어적 표현에 민감해야 한다. 입을 떼기도 전에 이미 표정으로 혼을 낸다면 솔직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보다 더 무의식에 가까운 이녀석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작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에서 하자. 철학자 미셸 푸코는 시선은 권력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대 사회의 족장과 제사장들은 높은 곳에 앉았다. 교사는 말을 할 때 이 권력의 추를 맞추고 시작해야 한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과 이야기를 할 때 선호하는 시선의 구도가 있다. 교사가 본인 의자에 앉아 앞에 서 있는 학생들을 올려다보는 구도, 교사는 서고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을 내려다보는 구도, 학생을 세워 놓고 본인도 앞에 서서 이야기 하는 구도 등이다. 이 셋은 모두 눈높이가 다르다.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팔씨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경우 학생은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교장선생님에게 부담없이 본인의 생각을 피력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교사가 한쪽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라는 건 아니다. 같이 의자에 앉거나 함께 바닥에 앉아 이야기 하는 게 좋다. 학생은 편안함을 느낄 것이고 대화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두 번째는 몸의 구도다. 흔히들 학생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대화를 한다. 그러나 이 구도는 협상이나 적대적 관계에서 많이 활용된다. 대결 구도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앉아서 이야기 할 경우에는 ‘ㄴ’자(약 120도 정도의 각도)로 앉는 게 좋다. 부담도 덜하고 적대감을 거의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보다 선호하는 방법은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으면 우리는 한편이라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움직이며 말하기 때문에 긴장이 완화되고 얼굴을 보는데서 오는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충분한 관계가 만들어졌을 경우 장난스러운 스킨십(손 잡기, 어깨동무 등)도 가능하다.
세 번째는 표정이다. 몸은 본인의 감정을 넘어 상대의 감정도 유발한다. 특히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얼굴 표정의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 표정만큼 어려운 비언어적 표현도 없다. 명배우가 아니라면 의도한 표정을 자연스럽게 짓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력이 아니라 얼굴 근육 자체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연습만이 능숙한 표정을 가능하게 한다. 민망하겠지만 평소 자신의 표정을 많이 찍어서 본다. 그러면 특유의 표정 버릇(미간 찌푸리기,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게 웃기, 눈 깜빡이기 등, 클리셰라고도 한다)이 보인다. 그걸 적절한 방법으로 개선하는 연습을 한다. 거울을 보고 끊임없이 하다보면 어느 순간 능숙해진다. 특히 나처럼 미소 짓는 걸(웃는 것과 다르다) 어려워하면 얼굴 근육이 기억하게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손가락으로 일부러 입꼬리를 올린채 대화를 하는 연습을 했다.
마지막으로 자세다. 언급했다시피 교실에서 교사는 권력자이기 때문에 권력의 추를 더 기울여서는 안된다. 그래서 고압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자세는 피하는 게 좋다. 대표적으로 팔짱 끼기, 짝다리 짚기, 양손을 허리에 올리기 등이 있다.
학생과의 관계여서가 아니라 말하기 자체가 센스를 요구한다. 그래서 어렵다. 이 방법들이 단순한 스킬이 아니라 ‘너와 평화적으로, 평등하게 이야기 하고 싶어.’라는 마음의 연장선에 놓이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진정한 ‘센스의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