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 지금부터 Q 2탄] 3. '인사이드 아웃'으로 공감교육 시작하기
앞글에서 다루었다 시피 감정, 공감이라는 것은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어른들도 이럴진대 학생들은 오죽하랴.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공감교육을 해야 한다는데 공감하지만 정작 시작을 망설이게 된다. 필자도 많은 시도를 해보았으나 어렵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효과적인 시작 방법이 있는데 바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손가락에 꼽을 만한 수작 애니메이션이다. 재미와 감동은 물론 뇌과학적, 심리학적으로도 검증된 탄탄한 내용까지 보장한다. 이번 글에서는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보다는 그 속에 아름답게 표현된 뇌과학적, 심리학적 이야기를 해보자 한다. 지금부터 다룰 이야기들은 교사의 이해를 위한 것임을 밝히며 학생들에게 풀어내는 것은 다음 글에서 다룰 것임을 미리 밝힌다.
1. 마음 시스템 이해하기
영화의 초반 10분간 우리의 뇌가 외부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눈을 통해 인지한 정보가 뇌로 들어간다. 그러면 뇌에 있는 감정 중 하나가 주인공을 위해 작동한다.(영화에서는 계기판의 작동 버튼을 누르고 조종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감정에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기쁨(Joy), 슬픔(Sadness), 소심이(Fear), 까칠이(Disgust), 버럭이(Anger)다. 기쁨은 라일리가 행복하도록 돕고 소심이는 라일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까칠이는 해로운 것을 판단, 분석해 라일리를 보호하며 버럭이는 부당하고 불평등한 것에 대해 화를 낸다. 그런데 슬픔이는 왜 있는 지 알 수 없다. 온통 행복을 방해하고 피해를 주는 슬픔이를 기쁨이는 가둬두고 제한하려 한다.
감정이 작동하고 나면 해당 장면이 기억으로 저장되어(구슬로 표현 된다.) 뇌로 들어온다. 기억들 중 중요한 것은 잠자는 중에 장기 기억(Long Term Memory)으로 보내지며 그렇지 않은 것은 사라진다. 이 기억들 중에 중요한 것은 핵심 기억(Core Memory)이 되어 성격의 섬을 만들고 성격의 섬들이 함께 작용해 라일리의 인격(라일리를 라일리답게 하는 것)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감정 중에 왜 굳이 저 다섯일까?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쁨이 가장 먼저 생기는 것으로 보아 인간의 원초적 감정은 기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련 수업 : http://blog.naver.com/jeross09/220833874173
2. 기쁨 VS 슬픔
영화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기쁨이와 슬픔일 것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기쁨이가 이해할 수 없고 방해가 되는 존재인 슬픔이를 인정하고 화해하는 서사 구조를 띈다. 문학적으로는 청춘물의 전형이라 할 만큼 몽글몽글하다. 그럼 지금부터는 따뜻한 감동은 잠시 차치해두고 분석적으로 들여다볼까 한다.
"쟤는 왜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기쁨이는 라일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감정 중에서도 리더 역할을 하면서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통제한다. ‘이건 좋은 상황이야! 해결될 수 있어!’가 모토인 기쁨이는 어떤 어려움과 돌발 상황이 닥쳐도 밝게 웃으며 해결해낸다. 벽장에 가득한 노란 기억(기쁜 추억)은 보람이자 자신의 존재 가치이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우울해."
슬픔이는 기쁨이와 정반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기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하루 종일 우울하게 늘어져 있고 싶다. 괜히 기억 구슬을 건드려 기쁨이의 계획을 망칠 뿐이다. ‘미안’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지만 이상하게 다른 감정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아니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 뿐이다.
[달라도 너무 달라]
외모부터 성격까지 둘의 차이는 문제 상황을 다루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쁨이는 문제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아내는데 능숙하다. 그러나 감정적인 불편함이 생겼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슬프거나 우울해질 때, 혹은 화가 났을 때 기쁨이가 택하는 방식은 ‘회피’다. 말을 돌리거나 다른 기억을 떠올리려 한다. 혹은 해결책을 얼른 알려준다. 기쁨이가 바라는 것은 불편한 감정으로부터 얼른 벗어나서 행복의 영역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그녀에게 감정적 불편함이란 피해야 할 괴물이며 다루기 힘든 상대일 뿐이다.
반면 슬픔이는 그 불편한 감정 속으로 들어간다. 슬플 때는 슬프고 우울할 때는 우울해 한다. (기쁨이가 보기에는) 마치 오물 속을 찾아 들어가는 슬라임처럼 우직하게 감정을 맞을 뿐이다. 슬픔이에게 불편한 감정은 피해야 할 괴물이 아니라 끌어안고 겪어내야 할 아픔이다.
[다른 사람이 슬플 때는]
처음부터 기쁨이는 슬픔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떻게든 라일리를 기쁘게 해야 하는데 슬플 때 더 슬프게 하는 슬픔이를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이상하게 슬픔이가 건드려서 색깔이 변한 구슬(OO한 기억 ⇒ 슬픈 추억)은 되돌릴 수도 없다. 그래서 라일리의 인생에 관여하지 못하게 제쳐 두고 가둬 두고 싶다.
이런 둘의 차이는 빙봉을 만났을 때 명확하게 나타난다. 라일리와의 추억이 담긴 로켓을 잃어버린 후 빙봉은 큰 상실감과 슬픔에 빠진다. 이 때 기쁨이가 선택한 방식은 역시 회피다. 신나는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거나 웃긴 표정을 지어 웃기려 한다. 또 게임을 제안하거나 간지럽히기까지 한다. 기쁨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런 상실감에 빠져 있으면 안 돼. 어서 나와.’
하지만 이런 기쁨이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빙봉은 슬픔에 빠져 기쁨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이 때 기쁨이의 ‘으휴!’라는 한 숨과 오버랩 되며 슬픔이가 다가간다. 그리고 빙봉에게 한 마디 건넨다.
“로켓을 뺏겨서 안됐다. 네가 좋아했던 건데 사라졌네, 영원히.......”
기쁨이는 슬픔이가 더 한심하고 속에 천불이 날 지경이다. 가뜩이나 속상한 빙봉에게 슬프겠다니, 더 우울하게 만들 작정인가? 아니나 다를까 빙봉이는 넋두리를 하며 엄청 슬프게 울어댄다. 왜 슬픈 사람을 더 울리고 난리야?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실컷 눈물을 쏟은 빙봉이가 스스로 일어나 기차역을 향해 걸음을 뗀 것이다. 그 발걸음과 목소리에는 새로운 희망과 의지가 넘쳐난다.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슬퍼하길래 얘길 들어주고......”
3. 공감한다는 건
인디언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진정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일주일을 살아봐야 한다.’
신발을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과 직접 신고 생활해보는 것은 천지차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보고 상상하는 상대의 슬픔은 내가 경험한, 혹은 객관적으로 ‘이해되는’ 슬픔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맹장이 터진 사람을 보고 아프겠다고 상상할 뿐 그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다 보니 얼른 그 감정에서 벗어나게 돕고자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 느끼는 슬픔은 다른 그 어떤 슬픔과도 같지 않다. Now & Here, 지금 여기서 자기만의 슬픔이다. 그런 슬픔을 알고 있다는 듯 예단하고 벗어나게 하려 끌어당기는 것은 상대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기쁨이의 방식이 그러하다. T.E.T에서 커뮤니케이션의 걸림돌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회피하기, 달래기, 해결책 제시에 해당된다. 쉽게 말하면 상대가 감정적으로 불편할 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딴 이야기를 하거나 달래거나 문제 해결 방법을 이야기 해줘봤자 상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런 것들이 왜 아무 소용이 없을까? 감정이 불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극도로 화가 나거나 슬플 때 조종 계기판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생각(전구로 표현되는)은 아예 먹통이다.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기쁨이가 하는 회피, 달래기, 해결책 제시는 이성이 다루는 생각 전구다. 하지만 먹통이 된 CD 플레이어에 새로운 음악 CD를 넣는다고 노래가 나올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먼저 할 일은 명확하다. 다시 계기판이 작동하게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슬픔이가 한 공감이다. 다시 말하자면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필자는 ‘감정을 읽어준다.’라는 표현도 즐겨 사용한다. 왜 감정을 읽어주는 게 중요할까? 그것은 감정의 본질과 이어져 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다]
앞으로 자주 나올 이 명제를 기억해야 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다. 얼핏 동의하기 어렵고 냉정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이 명제는 감정과 관계를 이야기할 때 꼭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에 하기로 하고, 아무튼 우리는 상대를 슬픔에서 빠져나오게 하지 못한다.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건, 정확하게 말하면 슬픔에서 빠져 나오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건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그럼 언제 그런 결심을 하게 되느냐? 불편한 감정이 충분히 다루어지고 나서다. 그렇게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남지 않아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기쁨이가 선택한 방법들은 감정을 충분히 다루지 않고 남겨 둔 채 도망가는 것들이다. 그래서 당장은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마음 깊은 곳에 침전되어 어떠한 형태로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 감정이 충분히 다루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가만히 옆에 있기만 해도 좋다. 혹은 상대의 감정을 읽고 공감해주면 감정을 겪는 속도는 배가 된다. 그리고 따뜻하게 진행된다. 사람은 누구나 거친 폭풍을 만날 때 혼자보다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기를 바라니 말이다.
4. 기쁨 & 슬픔
우여곡절 끝에 본부로 돌아온 기쁨과 슬픔. 라일리의 가출을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쁨이는 자신이 나서지 않고 슬픔이에게 부탁한다.
“라일리는 니가 필요해.”
슬픔이는 결국 라일리가 결심을 바꾸고 가족의 품에 돌아가도록 돕는다. 그리고 라일리는 그동안 부모님이 실망하실까봐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걱정, 슬픔 등을 털어 놓고 진정한 감정적 치유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기쁨과 슬픔이는 화해하고 돈독해진다.
영화를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모든 감정이 고유의 색(슬픔은 파랑, 버럭이는 빨강, 까칠이는 초록, 소심이는 보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기쁨이만 다르다. 고유의 색(노랑)을 가지고 있지만 머리는 슬픔이의 색인 파란색이다. 그리고 슬픔이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다른 감정(슬퍼서 눈물을 흘림)을 느낀다. 왜 그럴까? 기쁨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정반대로 보이는 이 두 감정은 사실 하나로 이어져 있다. 슬픔을 통한 위로와 감정적 해갈이 진정한 기쁨을 지어낸다. 다음 장면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충분히 감정을 겪어내게 하고 위로하는 슬픔이로 인해 가장 아끼는 기쁜 핵심 기억이 탄생한 것이다. 라일리가 가출을 포기하고 돌아와 부모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슬픔에 빠져 운 뒤의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실컷 울고 난 라일리는 부모의 따뜻한 위로를 받은 뒤 ‘흐음~’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짓는다. 감정의 정리를 상징하는 이 장면에서 라일리의 미소는 슬픔이 충분한 역할을 했으며 기쁨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슬플 때 실컷 울고 나면 기분이 개운해지는 카타르시스, 그게 바로 기쁨과 슬픔이 반대가 아닌 하나라는 증명이다.
5. 영화의 메시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양하지만 교사가 공감 교육의 단초로써 이 영화를 보여줄 때 메시지는 하나다.
“우리의 마음은 이 영화처럼 작동하고 있어. 누구나 화를 내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그건 내 안의 버럭이와 슬픔이가 버튼을 누른 거지 내가 ‘화내는 사람’, ‘우울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야. 이건 무척 중요해. 만일 내가 그냥 ‘화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은 화를 내는 게 돼. 그러면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없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감정이 버튼을 누르는 거라면 달라. 나의 행동(소리를 지르거나 째려보는 것 등)은 버럭이가 버튼을 눌러서 생긴 것으로서 나라는 사람과는 별개의 것이지. 다시 말하면 버럭이가 버튼에서 손을 떼게 해 행동만 없애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야. ‘쟤는 화를 내는 아이’라고 보지 말고 ‘쟤는 지금 버럭이가 버튼을 누른 거구나.’라고 그 아이와 감정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우리가 도와줄 부분이 보여. 어떻게? 이 때 기쁨이의 방식은 효과적이지 못해. 엄청 속상한데 엄마가 “그러니까 미리 미리 숙제부터 하고 놀면 되잖아.”라고 해결책을 말해주면 기분이 좋고 문제가 해결 되니? 아닐 거야. 뭔가를 해결해주려 하지 말고 감정을 읽어주고 옆에 있어주면 돼.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면 되는 거야. 공감한다는 건 어려운 게 아니라 간단한 퀴즈 같은 거야. ‘이 친구의 버튼을 지금 누르고 있는 감정을 누굴까?’. 그리고 그 정답을 맞혀서 말로 친구에게 들려주면 되는 거지. 슬픔이가 빙봉에게 한 것처럼 말이야. 그럼 도대체 어떻게 감정을 읽어 공감하냐고? 그것들에 대해 앞으로 함께 공부해볼까?“
6. 그 외의 소소한 이야기들
영화에는 심리학, 뇌과학적인 사실들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들이 많다. 이런 것들을 하나 둘 짚어주면 학생들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갈지 모른다.(실례로 3학년인 우리 반 한 학생은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들은 뒤 뇌과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억의 저장 방법]
기억 구슬은 들어온 뒤 분류가 된다. 중요한 것은 장기 기억으로 가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벼랑 밑으로 떨어진다.(소멸을 의미한다.) 또한 기억 저장소에서도 끝없이 재분류가 이루어져 기억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어떤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가는가? 의미 있고 소중한, 그리고 꾸준히 다루어지는(떠올려지는) 것들이다. 학습의 원리와 연계하여 생각해볼 수도 있다.
[감정이 생각을 다룬다]
계기판을 조종하는 건 감정이다. 그리고 그 계기판의 일부분이 생각 전구를 꼽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는 생각이라기보다는 앞 글에서 언급한 ‘결심’ 부분에 가깝다. 감정이 먼저냐 이성이 먼저냐 하는데 명확한 것은 감정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주감정이 다르다]
영화에서 라일리 뿐 아니라 엄마, 아빠, 선생님 등 다양한 사람의 마음 본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사람마다 감정 중 리더가 다르다. 라일리는 기쁨이가 실질적 리더지만 엄마는 슬픔이, 아빠는 버럭이다. 이는 사람마다 사용하는 주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엄마는 슬픔이가 리더로써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공감하는 쪽으로 이끌지만 아빠는 분노가 리더십을 발휘해 힘을 사용해 상황을 해결하거나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
[사실 VS 의견]
어렵게 생각 기차에 탄 뒤 사실과 의견들이 뒤섞이는 장면이다. 빙봉의 말처럼 사실과 의견은 무척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생각하거나 말해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바로 지난 시즌에 다루었던 ‘보들 말하기’가 답이다. 보들 말하기로 하는 것은 사실, 판단하는 것은 의견일 가능성이 크다.
*보들 말하기 : http://educolla.sharedu.kr/?r=educolla&c=wednesday/new03&p=2&uid=7044
[성장할수록 복잡해지는 마음]
라일리가 커갈수록 마음 본부의 계기판이 커지고 복잡해지는 게 보이다. 그리고 사춘기라는 버튼도 생겼다. 사람이 성장할수록 마음이나 감정은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진다는 의미이다. 또한 사춘기에 접어들수록 ‘도대체 왜 이러는 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더 날카롭고 다양해진 감정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어른들에게 ‘쟤는 계기판에서 난리 난 거야.’라는 위로를 준다.
※ 사진 출처 : 인사이드 아웃 DVD,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