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 지금부터 Q] 11. 부탁 제대로 하기
지난 글에서는 소소한 팁으로 사과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진심으로 사과하면 그만이지, 그게 생각씩이나 할 거리인가?’라는 선입견의 빈틈을 파고들고자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더 소소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바로 ‘부탁하기’이다.
[내가 ‘부탁’하잖아, 내가!]
○학생 : 와, 진짜! ○교사 : 무슨 일 있어? ○학생 : 제가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지금 꺼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옆 자리의OO이가 자기 꺼 꺼내느라 사물함 문을 열어둬서 제 사물함을 열기 힘들잖아요. ○교사 : 저런, 그래서? ○학생 : 그래서 제가 문 닫으라고 부탁했는데 바로 안 닫잖아요. 저 그것 때매 못 꺼내고 있어요! 아, 진짜! 열 받아! |
바로 그저께 교실에서 있었던 상황이다. 평소에 친구에게 바라는 게 있으면 정중하게 부탁하라고 말했고 아마 대부분의 교사가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저 학생은 ‘부탁’했다고 했다. 생각해보자, 저 학생은 부탁을 한 걸까, 아닐까?
지금부터 나눌 이야기는 부탁에 관한 것이다. 서두에도 이야기 했 듯이 과연 부탁에 대해 글 한 편씩이나 쓸 거리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부터 그 생각을 비틀어 보고자 한다. 과연 학생들은, 아니 우리는 부탁이 뭔지 정확히 알고, 제대로 부탁을 하고 있는가?
[부탁 파헤쳐 보기]
부탁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거나 맡기다.’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가 따르고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 그것이 부탁이다. 그렇다면 부탁을 제대로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바로 ‘성공 여부’와 ‘감정’이다.
첫 번째로 부탁은 결국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므로 상대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상대가 거절하지 않도록 부탁하는 게 좋다. 그 방법들은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테크닉일 수도 있고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세일즈의 기본이 되는 여러 테크닉들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감정의 차원이다. 고마움이나 사과와 달리 부탁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을 준다. 왜냐하면 결국 무언가를 요구하게 되는데 그 요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행동해야 하는 주체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치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강속구를 던진 뒤 타자의 배트를 쳐다보는 투수와 같다. 그래서 부탁 이후에 따르는 결과 여부를 떠나 둘의 감정 상태가 무척 중요하다. 부탁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상대에 대한 원망을 가지거나 감정적으로 불편해지면 곤란하다. 데드볼이 되거나 타자가 던진 방망이에 투수가 맞아서는 안 된다.
결국 제대로 된 부탁은 이 두 가지 차원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밸런스를 생각하지 않기에 부탁을 하거나 받으면서 감정이 상하게 된다.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함정 1. 거절은 거절한다.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이다. 우리는 흔히 소리치거나 강요하지 말고 ‘공손하게’ 부탁을 하라는 교육을 받는다. 이 ‘공손하게’라는 표현이 잘못된 신념을 만든다. 즉 ‘공손한 태도로 말하면 제대로 한 부탁이니 상대가 받아들일 것이다.’라는 신념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공손하게 하건 불손하게 하건 부탁을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하는 건 상대방이지 내가 아니다. 공손하게 하면 확률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더 높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이렇게 부탁했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어?’라는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다음과 같은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학생1 : 와, 이 연필 예쁘다. 이거 나 주면 안 돼? ○학생2 : 이거? 좀 곤란한데. ○학생1 : 내 연필이랑 바꾸자. 내가 정말 정말 가지고 싶어서 그래. 부탁이야,한 번만. 응? ○학생2 : 그래도 안 돼. 이건 삼촌한테 선물 받은 거라서. ○학생1 : 와, 진짜 치사하네. 내가 이렇게 까지 부탁하는데. 와, 진짜! 어이없네! ○학생2 : 미안...... |
대화 후에 부탁을 한 학생1이 화를 내고 부탁을 받은 학생2가 오히려 왠지 모르게 미안해하는 장면이 그려지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학생2가 도대체 뭘 잘못했고 학생1은 뭐가 억울한가?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학생1이 방방 뛰는데도 이상하게 이 장면이 낯설지 않다. 왜냐하면 학생1은 부탁을 했으니 상대방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고, 학생2는 상대의 ‘공손한’ 태도를 거절한 데에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을 가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상대방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부탁을 한 게 아니라 강요, 혹은 지시를 한 것이다. 지시 / 강요와 부탁의 차이점은 명백하다. 상대의 선택을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다시 말해 결정권은 온전히 상대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지시 / 강요를 부탁으로 착각한 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냉철하게 인지시켜야 한다. 부탁은 거절당할 수 있는 게 부탁이다.
함정 2. 거절할 수 없겠지만 부탁할게.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함정이다. 나는 상대에게 가능하면 해 달라 부탁을 하고 상대가 거절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상대는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 화술이 좋거나 상대가 지나치게 착해서가 아니다. 바로 수평적이지 않은 관계와 탁 트이지 않은 대화 구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관리자가 나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번 주말에 우리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스포츠클럽 대회가 있는 거 알죠? 그런데 담당인 김선생님이 결혼식이라 못 가시잖아요. 그래서 말인데…….혹시 이선생님께 부탁해도 될까요?”
과연 이런 상황에서 명백한 사유가 없는데 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왜 그걸 이야기 못해? 교장이건 교감이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함정은 패스……. 가 아니라 더 주의 깊게 봤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함정에 상대를 빠뜨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황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보자.
“OO아, 이것 좀 5학년 2반 선생님께 전해 드릴 수 있겠니?”
학생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이 때,
“지금은 쉬는 시간이라 곤란한데요. 싫어요.”
라고 학생이 대답한다면 어떨까? 그럴 수 있지 싶지만 왠지 뒷맛이 개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과 나를 진심으로 수평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부탁은 아무리 내가 거절을 받아들일 준비가 진심으로 되어 있다고 해도 수직적 관계거나 자유롭게 거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화 구조가 트여 있지 않다면 상대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지시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함정 3. 미루기용 부탁
부탁을 하는 상황을 깊이 살펴보면 재미있는 발견을 할 수 있다. 부탁을 자주 하는 사람과 자주 받는 사람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부탁을 하는 사람은 부탁을 하기만 하고 들어주는 사람은 들어주기만 한다. 성격이나 성향의 차이가 이유겠지만 뭔가 공평하지 않다. 내가 한 번 해줬으면 니가 한 번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 더 놀라운 것은 처음에 부탁을 어렵게 하던 그 사람은 점차 쉽게 부탁하고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부탁이라는 것은 내가 하기 어려운 것을 정중하게 바라는 것인데 단순히 귀찮거나 편의를 위해 ‘부탁’이라는 포장을 해 떠넘기는 것이다. 자기가 해결할 궁리를 해보지도 않고 편하게 ‘토스’한다. 이런 부탁의 특징은 반복되고 상대로 하여금 짜증이나 억울함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부탁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내가 부탁을 들어줬더니 상대에게 저런 도움이 되는구나.’라는 뿌듯함과 기여감을 느껴야 하는데 그걸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제대로 부탁하기]
그렇다면 어떻게 부탁하라고 학생들에게 말하면 될까? 다음의 원칙들이 지켜졌으면 좋겠다.
1. 가능하면 부탁하지 말자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가능하면 부탁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해결) 가능하면 부탁을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부탁은 결과를 떠나서 하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부담을 준다. 또한 편하게 부탁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부탁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그러므로 미안하고 정중해야 한다.
가끔 그런 사람을 볼 수 있다.
‘아니, 내가 죄를 진 것도 아닌데. 부탁을 하면서 왜 미안해야 돼?’
틀렸다. 부탁을 한다는 자체가 이미 미안할 일이다. 당신은 (아마도 합당한 금전적 대가를 치르지 않고) 상대로 하여금 감정, 시간, 혹은 물질을 당신을 위해 써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에게 백만 원을 그냥 달라고 한다면 그건 미안할 일일까, 아닐까? 따라서 미안하고 정중한 표현으로 다가가야 한다. 여기에는 말 뿐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과 부탁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노력까지 포함된다. 영어에서 부탁이 괜히 May I 혹은 Mind if로 시작하는 게 아니다.
3. 간결하게, 한 번만 한 뒤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양궁을 할 때는 자세가 무척 중요하다. 활과 화살을 쥐는 것부터 자세를 잡고 겨냥하는 나킹이 매끄럽지 못하면 원하는 과녁을 맞힐 수 없다. 이 때 전문가들이 뽑는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간결함’이다. 과장되거나 불필요한 나킹은 몸에 힘이 들어가게 해 적중률을 떨어뜨린다. 부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부탁을 하면 미안한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오히려 상대에게 믿음이나 확신을 주는데 방해가 된다. 부탁은 간결해야 한다. 대신 한 번 떠나면 다시 쏠 수 없는 화살처럼 한 번만 한다. 그리고 양궁에서 ‘다시 쏘기’가 없듯 과녁의 결과를 겸허하게 그대로 받아들인다. 바람이나 과녁을, 혹은 갤러리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제대로 쐈으니 무조건 10포인트에 맞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 섭리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부탁을 하도록 교육한다. 그게 어려우면 부탁을 하면 안 된다.
4.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라.
부탁을 한다는 것은 내가 상황적으로 부족하거나 급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 순간 상대는 어떤 상황이고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 컵에 물이 가득 차 버리고 싶어도 상대의 컵이 가득 찼다면 거기에는 버릴 수 없는 법이다. 부탁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의 입장을 잘 살피기에 거절을 당하건 받아들여지건 서로 감정을 상하는 일이 없다. 그런 소소한 배려들이 오히려 상대로 하여금 더 부탁을 들어주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5. 언젠가 내가 할 수도 있는 부탁은 들어주자.
부탁에 대한 결정권은 상대에게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내가 부탁을 받은 입장에서 갑(甲)이 되어 상대를 무시하거나 매몰차게 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 감정이 상하기 때문이다. 부탁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대에게 내가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관계에 투자하는 예금이라고 할까? 나중에 내가 부탁을 할 일이 생기거나 상대에게 껄끄러운 행동을 할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꺼내어 쓸 수 있는 예금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부탁은 들어주자고 공감대를 만든다. 가끔 매몰차게 거절하는 학생들에게는 역할 바꾸기로 거절당하는 느낌을 느끼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점]
교실에서 이런 건강하고 평화로운 부탁이 넘실대기를 바란다면 다음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교실 속에서 부탁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교사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시하지 않고 부탁하기 시작하는 순간 교실의 공기는 따스해지고 문화로 응결될 것이다. ‘떠들지 말라고 했지!’가 아니라 ‘선생님 목이 너무 아픈데 도와줄 수 있을까? 부탁이야.’라고 말해보자. 물론 나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쉽지 않다.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라도 연장자가 어린 사람에게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는 건 낯선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구차하다는 생각이나 ‘학생들이 나를 얕잡아 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다를 것이다. 학생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싶어 하지 무서운 사람에게 복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시하면 복종을 끄집어낼지 모르지만 부탁하면 협력을 자발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교사가 부탁을 통해 뺀 힘만큼 도움과 따스함을 채울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N.Q 지금부터 Q]
1. 당신이 가져야 할 7가지 마음
2. 말의 힘 느끼기
3. 경청을 해야 하는 이유
4. 경청 만들어가기
5. 보들 말하기
6. 고.인.돌
7. 알림 VS 고자질
8. 비속어와의 전쟁 - 생각편
9. 비속어와의 전쟁 - 활동편
10. 효과적으로 사과하기
11. 부탁 제대로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