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 우리 반, 어떻게 살까?
‘우리 반, 어떻게 살까?’
‘아이들과 내가 어떻게 살면 좋은가?’
마치 인생의 가치관을 찾는 사춘기 고딩처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나만의 결론,
‘행복하게 살자’
그러자 다른 질문들이 꼬리를 이었다.
어떻게 살면 행복한가 -> 교실이 즐거워야 한다 -> 어떻게?
그 때 햇병아리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특별해지자.’
그래서 어떻게든 특별 하고픈 초짜의 발버둥이 시작됐다. 추구하는 바를 담아 반의 이름도 정하고(라온제나) 괜히 그럴싸하게 다양한 교육 활동, 이벤트, 관계 맺기 등을 시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튀고 싶어 하는 나의 성향이 가득 담긴 시기였다. 패기 60% + 자신감(이라고 쓰고 자만이라고 읽는다) 40%의 시절이랄까? 아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도취되고 만족했다. 나는 내가 굉장히 잘하는 교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인간에게 지혜라는 선물을 주는 법이다. 점차 나의 방법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리더십과 노력으로 우리는 즐거웠지만 뭔가 아쉬웠다. 뭘까?
그건 바로 ‘관계’였다.
어떻게 살면 행복한가 -> 교실이 즐거워야 한다 -> (어떻게? -> 안정적이고 따뜻해야 한다 -> 뭘로? -> 관계 속에서)
나는 중간에 큰 부분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양하고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교육적 시도가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담보한다고 착각했었다. 물론 그런 방향으로 가지만 그 자체가 관계를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걸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흔히들 말한다. 진심이 중요하다고. 진심은 통한다고. 동감한다. 진심이 없는 그 어떤 교육적 시도도 껍데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마음이니 니가 알아주겠지’라는 소극적인 자세는 결코 건강한 관계를 맺는데 효과적이지 못하다. 방법이 진심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방법 없는 진심은 어렵고 외롭고 공허하고 아프다. 그래서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몇 이벤트 성 활동 위주로 시도했다. 인디스쿨 연수와 학창시절 경험, 독서 등을 통해 새로운 방법을 접하고 적용할 때면 좋았다. 아이들도 새로운 경험이기에 신기해하고 그 순간에는 관계를 만드는 듯했다. 하지만 일회성 활동들은 지속성을 보장하지 못했다. 뭔가 더 근본적인 컨셉, 흐름, 틀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 길에 만난 것이 바로 PDC와 TET이다.
한 차원 높은 단계로의 도약 여부는 문화의 질에 달려 있고,
문화의 질은 관계의 질에 달려 있고,
관계의 질은 대화의 질에 달려 있다.
모든 것이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 주디스 E 글레이저(경영 컨설턴트)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하기 위해서는 두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는 공감과 소통의 기반인 ‘대화’, 그리고 하나는 공동체 전체의 흐름을 결정하는 ‘문화’. 그래서 TET로 대화하기 시작했고, PDC로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것이 정답이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볼만한 길인 것 같다. 현재까지는
그래서... 그게 도대체 뭔데???
꿈틀대고 뒹구는 우리 반의 모습을 통해 함께 나눠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