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번외편] 4. 도대영 존나 짜증나!
수업 직후 출장이 있어 바빴던 오후, 메신저로 메시지가 하나 왔다.
‘도대영 선생님, 미안합니다.’
‘응? 뭐지?’
어제부터 붉어진 학년 내 여학생들의 SNS 설전과 따돌림 논란을 지도중이던 선생님의 메시지였다. 선생님이 보낸 메시지에는 첨부 파일이 있었다. 파일을 열어보니 세 여학생의 카톡 내용이었다.
아이돌 이야기, 아빠 몰래 담배를 펴봤다는 이야기, 친구 뒷담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상당수가 욕설이나 비속어였고 몇 개는 해독이 되지 않았다. 대화의 마무리 무렵이었다.
‘도대영 존나 짜증나.’
‘어라? 내 이름?’
약간의 의아함이 생겼다. 세 녀석 모두 우리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아함은 곧 풀렸다.
‘맞아, 관심 없다면서 안 잡아도 될 것까지 다 잡아.’
‘시팔, 왜 화장하면 안 되는데?’
‘아하~’
화장 규칙에 대한 불만이었다. 최근에 한 전학생으로부터 촉발된 화장 논란으로 인해 여러 차례 소통과 다모임을 했다. 그래서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기준을 정했고 그 기준을 관철시키고 있는 중이다. 총대를 매고 있는 내가(막내라^^) 아침이나 쉬는 시간에 6반을 돌면서 기준을 알려주고 몰래 화장을 더 한 학생들에게 말한다.
“규칙을 지켜주세요.”
학생들은 정말로 매일 체크한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잔소리 하지 않는다는 점을 어색해했고 무엇보다 남자라서 모를 것 같은 규칙 위반까지 다 알아본다는 점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카톡의 주인공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화장을 짙게 하는 피 끓는 소녀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건의 증거자료를 내던 중에 엉뚱하게 내 뒷담화를 한 게 걸린 것이다.
‘아이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내 이름을 반말로 부르고 있었고 욕설도 섞여 있었다. 화가 날 법한데, 그리고 예전의 나였다면 엄청난 힘의 발현을 시전했을텐데 말이다. 정말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그 선생님께 상황을 확인한 후 두 학생을 불렀다.
“왜 불렀는지 알아?”
“네……”
“선생님이 알게 된 거 알고 어제 밤에 신경 쓰였겠다?”
“네……”
카톡에서의 당당함은 온데 간데 없었다. 생존을 위한 연기인지, 실제 위축인지 시선은 땅을 향했다.
“저기 가서 이야기 좀 할까?”
나는 조용한 곳으로 앞장 섰다. 그리고 동그란 탁자에 함께 앉았다. 두 녀석의 얼굴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웃어서인지 두 녀석의 표정은 더 사색이 되었다.
“너희를 혼내고 싶지 않아.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 우리 반에서 사용하는 방식이 있는데 그걸 한 번 해도 괜찮겠냐?”
“네, 괜찮아요.”
나는 가져간 감격해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감정 카드를 탁자에 깔았다.
“이건 감정 낱말들이야. 지금 선생님이 어떤 감정일지 너희가 맞추는 거야. 선생님의 감정이라고 생각되는 카드를 고른 뒤 골랐으면 골랐다고 해줘. 선생님도 마음 속으로 고를게.”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는지 두 녀석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열심히 카드를 보기 시작했다. 한 녀석이 말했다.
“선생님, 모르겠어요.”
“그래서 추측해보는 거야. 그게 공감의 시작이거든.”
잠시 후 두 녀석은 카드를 모두 골랐다.
“OO아, 넌 선생님 감정이 뭐라고 생각했니?”
“놀람이요.”
“왜?”
“저희가 앞에서는 착한 척 해놓고 뒤에서는 막 욕하고 선생님 뒷담화 한 거 알게 되셔서요.”
“그래? 알았어. XX이 넌?”
“저도 놀람이요.”
“왜?”
“거친말들 많이 쓰고 욕해서 놀라셨을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럼 선생님이 정답을 말해줄게. 정답은…… ‘걱정되는’이야.”
의외의 답이었는지 두 녀석의 눈이 커졌다.
“너희 예상과 달리 선생님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어. 선생님이 6학년 여학생을 한 두 번 보니? 너희보다 훨씬 세고 팔팔했던 선배들과도 몇 년을 보냈거든. 그리고 어쨌든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어른이잖아?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너희가 뒷담화하는 건 저항하고 감정을 푸는 수단이라고 생각해. 화도 별로 안 나.”
두 녀석은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걱정이 되냐면, 선생님 경험 상 뒷담화를 많이 하는 학생들은 나중에 중학교 가서 힘들어 하더라고. 뒷담화를 지금은 같이 하지만 ‘아, 얘는 뒷담화 하는 애지.’라는 이미지가 생겨서 나중에 결국은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그리고 세상에 비밀은 없거든. 한 번 뒷담화 하는 애라는 이미지가 찍히면 또래에서 버티기가 어려워. 선생님이 가르쳤던 선배 중에도 있어. 그래서 결국 못 견디고 대안 학교로 전학 갔어. 학교 짱이었는데도.”
“진짜요?”
“응, 그 때 다모임할 때 선생님이 닭살 돋는 말 한 거 기억나?”
“네, 어떤 경우라도 저희 사랑하신다고…..”
“맞아, 오글거리긴 해도 그거 진심이야. 너네가 선생님 새끼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하거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잠시 말이 없어졌다. 한 녀석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 ‘미안한'”
“‘미안한’이요?”
“응, 빈말이 아니라 선생님도 너희 마음 누구보다 잘 알아. 꾸미고 싶고 얼마나 해보고 싶은 게 많겠냐. 선생님도 그랬으니까. 선생님이 아니라 인간 도대영은 너희 화장하는 거 공감해. 뭐라고 하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선생님이니까 역할이 있어서 어쩔 수 없어. 그래서 너희가 느끼는 답답함을 아니까 미안하기도 해.”
눈물을 그렁거리던 녀석의 울음이 터졌다.
“그래도 마음은 공감해도 정해진 규칙은 밀고 나갈거야. 알겠지?”
“네……”
그리고 감정 카드로 두 녀석의 감정도 확인하고 공감해주었다. 분위기는 훨씬 따뜻해졌다.
“그럼 더 하고 싶은 말 있니?”
“선생님, 사과는 어떻게 해요?”
“사과는 당연히 받아야지. 그런데 지금 의무감에 하지 말고 하루 정도 생각해봐. 진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걸 원할 때 와서 사과해줬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겠어?”
“네……”
그렇게 교실로 돌아갔다. 생각 보다 괜찮은 마무리였다.
지금도 왜 화가 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경력이 쌓여서 내공이 생긴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 혈기가 줄어든 건지. 하지만 불같은 힘을 쏟아냈던 그 때보다 더 편안한 건 사실이다. 두 녀석을 논리와 힘으로 쥐잡듯이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느슨하고 따뜻하게 내민 손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품이 넓은 사람이라는 착각이 생기니까.
그럼 두 녀석이 완벽해졌을까? 물론 아니었다. 또 뒤에서는 내 뒷담화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미움 받을 용기가 있는 사람이니까.
*관련 글 : https://www.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DoDaeyeong&wr_id=42&pag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