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번외편] 3. 아이, 씨발!
“아이, 씨발!”
정적을 깨는 고함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린 교실에는 메아리의 진동만이 가득했다. 그 정도로 강하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오가는 시선은 갈 길을 잃고 헤맬 뿐이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갑분싸 그 자체였다.
5교시는 체육이었다. 보통 5교시가 체육이면 학생들에게 점심 시간에 놀고 난 뒤 알아서 이동하게 한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며칠 째 질서를 지키지 않아 연습을 시키는 중이었다. 그래서 점심을 먹은 뒤 5교시 시작 5분 전에 교실 뒤에 줄을 서기로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녀석들은 1교시부터 굳은 표정으로 시간 엄수를 했고, 나는 제대로 될 때까지 ‘다시’, ‘다시’를 나지막히 말하며 연습시켰다. 그래서인지 점심 시간인데도 차분한 분위기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을 때 몇 몇 녀석들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는지 땀과 먼지로 가득했다. 다른 녀석들은 얼른 줄을 서라며 재촉했고 녀석들은 허둥지둥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 때 날카로운 욕설이 교실을 덮친 것이었다.
주인공은 지훈이었다. 평소에 욱하는 성질이 있어 소리를 곧잘 지르는 녀석이었다. 나는 알게 모르게 녀석을 힘과 사랑으로 밀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거운 자리에서 모른 척 넘길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김지훈, 방금 뭐라고 했어?”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지훈이를 향했다. 어떻게 대응하나, 얼마나 혼나려나 궁금해하고 무서워 하는 분위기였다. 당연히 잘못을 인정하고 훈훈하게 마무리 지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훈이는 선을 넘기 시작했다. 내가 한 질문에 대답은 커녕 쳐다도 안 본 것이었다. 몇 초 뒤 다시 불렀다.
“지훈아, 선생님이 질문 했는데? 방금 뭐라고 했니?”
조용히 억눌렀지만 그래서 더 위협적인 말투였다. 학생들의 시선은 나와 지훈이를 바쁘게 번갈아 봤다. 하지만 지훈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을 했다.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어깨를 심하게 들썩였다. 그러더니 사물함을 주먹으로 쾅! 친 것이었다.
“쾅!”
교실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돌이킬 수 없는 방아쇠를 당긴 것 같았다. 학생들은 나의 고함과 폭발을 예상하며 움츠려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줄로 걸어 갔다. 비밀의 방문을 열러 가는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5, 4, 3, 2, 1……. 드디어 나는 지훈이 얼굴을 마주했다.
나는 한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러분, 지훈이가 지금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뚜껑이 열렸나봐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혜원아, 인솔해줄 수 있을까?”
“네.”
학생들은 말 없이 그림처럼 이동을 시작했다. 표정에는 안도와 안심이 가득했다.
지훈이는 서 있었고, 나는 말이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지훈이의 어깨 들썩임이 줄어들자 나는 말을 시작했다.
“혹시 지금 선생님이랑 대화할 수 있겠니?”
“......”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좋아, 대신 선생님 말이 들리기는 하겠지? 니가 말할 준비가 되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선생님은 자리에 있을테니 편할 때 이야기 해.”
그리고 태연하게 컴퓨터를 시작했다. 같은 공간, 다른 색깔이 버티는 느낌이었다.
한 5분 쯤 지났을 때, 드디어 지훈이는 나에게 걸어 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준비 됐어요.”
나는 몸을 돌려 지훈이를 쳐다 봤다.
“고맙다. 여기서 할까, 아니면 협의실 가서 할까?”
“여기요.”
“오케이, 뭐라고 마시면서 하는 게 어때? 더운데. 차가운 물이랑 주스 중에 뭐 마실래?”
“물이요.”
“알았으.”
나는 협의실에 가서 물을 한 컵 가져 왔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아까 많이 속상했나 보더라. 니가 이유 없이 그럴 녀석이 아닌데.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한 참을 망설이던 지훈이는 입을 떼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랬다.
축구를 하다 다쳐서 발이 아팠다. 가뜩이나 발이 아픈데 들어 오자 마자 허둥대는 자신에게 친구들이 빨리 줄을 서라며 재촉해서 당황스러웠다. 그 때 평소에 본인을 밉살스럽게 대하는 민주가 한 마디 했다.
“어휴 진짜,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저렇게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이성의 끈을 놓은 것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지훈이에게 가정 이야기는 아킬레스건이나 다름 없었다. 민주에게 달려들지 않기 위해 혼자 소리를 지르고 사물함을 치며 참은 것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자 공감이 됐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본인의 선택이 아닌 것에 대해 비난을 받으면 누구나 억울하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가정은, 부모님은 그 사람 인생의 큰 부분이니 말이다.
“부모님을 욕하는 것 같이 들려서 진짜 많이 속상했겠다”
내 말에 지훈이는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아까 그 정도로 잘 참아줘서 고맙다. 진심으로.”
그렇게 한 참을 안아줬다. 지훈이는 품에서 서럽게 울었다. 까칠하고 건방져 보여도 결국 아이는 아이였다. 한참 울고 나서 진정이 된 뒤 말을 이어갔다.
“너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을테니까. 그래도 니 행동까지 인정할 수는 없어.”
“저도 알아요.”
“정말? 뭘 잘못했는지 알고 있어?”
“네, 소리 지르면서 욕한 거랑 사물함을 친 거요.”
“니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선생님도 아까 당황스러웠거든.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랬던 건 아니지?”
지훈이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뇨, 절대 아니에요. 진짜요. 맹세코!”
“그래,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를 혼내지 않고 이야기 하자고 한 거야. 그럼 어떻게 상황을 해결하면 좋겠니?”
“음……”
지훈이는 한참을 고민했다.
“제가 아이들 앞에서 사과할게요.”
“그래 줄 수 있겠니?”
“네.”
“그래, 고맙네. 선생님이 도와줄 건 없을까?”
“없어요.”
체육 시간이 끝났고 학생들이 돌아 왔다. 6교시를 시작하기 전에 지훈이가 친구들 앞에 섰다.
“아까 내가 욕하고 사물함 쳐서 미안해. 어떤 친구가 나한테 가정 교육 이야기를 하며 비난해서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미안하다.”
지훈이의 이야기에 친구들을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공감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정리를 했다.
“아까 지훈이가 욕하고 사물함을 쳤잖아? 선생님 말에 대답을 안 하고. 그 때 너희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었어?”
“이제 지훈이 조오… 아.”
평상시에 입이 거친 재민이의 말에 모든 친구들이 빵 터졌다.
“x됐다고 생각했어요.”
“지훈이 엄청 혼날 줄 알았어요.”
“그랬구나. 그럼 선생님이 지훈이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혼내지 않았을 때 혹시 어떤 생각을 했니?”
이번에는 주로 여학생들이 대답을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뭐랄까…… 무서웠는데 선생님이 참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선생님이 약해 보이거나 지훈이를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한 친구는 없니?”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랬구나. 고맙다. 사실 아까는 선생님도 화가 났었어. 뚜껑이 열리고 있었지. 그런데 다행히 뚜껑을 닫고 대화를 할 수 있었어. 선생님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누군가와 공개적인 자리에서 갈등이 일어날 수 있어. 그 때 친구들이 쳐다본다고 해서 ‘내가 여기서 참거나 물러서면 나를 약하다고 생각할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금 봤지?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야. 싸워서 이기고 싶은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런 불안에서 벗어나도 돼.”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나중에 지훈이는 민주에게 찾아가 I 메시지를 사용하고 사과를 요구했으며 민주는 사과를 했다. 모두 마음이 한 뼘은 더 큰 느낌이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나도 뚜껑이 열리고 있었다. 지훈이에게 다가갈 때는 ‘이 녀석을 제대로 눌러야 다른 학생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겠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지훈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묘한 이질감이었다. 적대감과 공격성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지훈이는 분노와 슬픔으로 차 있었다. 나를 향한 감정이 아니라는 걸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담아두지 못해 터져 버린 분노, 그 감정이 사방팔방 튀어 나오고 있던 것이었다. 격렬한 어깨 떨림, 바닥을 좌우로 쓸어대는 시선, 결정적으로 약간 고인 눈물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뚜껑이 닫히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경험이 더 적던 시절에는 나에게 도전해오는 녀석은 모두 힘으로 눌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소리를 지르는데도 학생들이 듣지 않고 떠드는 악몽을 꾸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 학생들의 분노, 폭발의 대다수는 교사인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나에 대한 도전이 아님을 말이다. 그저 표출되고 있는 용암 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그 용암 덩어리를 굳이 가져와서 학생과 불편한 링에 올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