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 지금부터 Q] 5. 보들 말하기
3, 4편을 통해 N.Q Up 중에서 경청, 즉 듣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이제 경청하는 학급 문화를 만들어 갈지,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낼지는 교사의 노력과 실천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경청에 대해 조금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뼈대를 잡았으니 이정도로 하기로 하고 이번 편부터는 대화의 다른 한 축인 ‘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이번 편은 season2 때 기록한 글을 업그레이드한 것입니다.
http://educolla.sharedu.kr/?r=educolla&c=wednesday/new03&p=2&uid=4618)
먼저 다음 문제를 풀어보자.
※ 다음의 대화를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지훈 : 태희야, 우리 오늘 뭐 할까? 영화 볼까? 드라이브 갈까? 태희 : 음……. 뭐, 아무거나. 지훈 : <베테랑> 엄청 재미있대. 그거 보자. 태희 : 그래? 그런데 자기야, 나 오늘 몸이 별로다. 피곤해. 지훈 : 정말? 어쩔 수 없지 뭐. 영화는 다음에 보자. 집에 가서 쉬어. 배웅해줄게. (한 시간 뒤) 지훈 : (까똑!) 응? 아프다더니 웬 깨톡? 태희 : [오빠, 어쩜 그럴 수 있어? 역시 안 되겠어. 우리 그만하자.] |
문제 : 위의 대화에서 지훈이가 잘못한 것을 백 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위의 문제의 정답을 완벽하게 서술할 수 있는 사람(특히 남자)이라면 말하기 분야에서는 전문가라 칭할만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잠깐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말로 전달하려 한다. 그런데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성들이 남자 친구에게 ‘자기야, 나 지금 쇼핑하고 싶은데 자기가 영화를 보자고 해서 섭섭하고 속상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남자들에게는 그 얼마나 아름답고 명쾌하고 살만한 세상일까? 장담하건대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 연애 실패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돌려서’ 표현한다.(조금 그럴싸한 말로 ‘암호화’ 혹은 ‘부호화’라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자기 노출이라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엄청난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은 관계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말 그대로, 말 같이’ 들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속에 담겨진 진의를 생각하고 해석해야 하는 수고가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창궐하며 결국 관계를 망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그래서 천재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은 간결하게 하라.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단어 Communication은 Communicare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꼼뮤니까레’라고 읽는 이 단어의 의미는 ‘공유하다’이다. 상대와 감정, 생각, 경험 등을 말 그대로 공유하는 것, 그것이 소통이고 대화이다. 그런데 대화 자체가 암호화를 통해 이루어지니 둘 사이에 다른 감정, 생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동시에 경험한 그 상황을 표현할 때도 다른 이야기와 해석을 하고 있다. 다음 상황을 상상해보자.
(쉬는 시간에 열심히 공문 작업 하고 있는 교사) 인경 : 선생님, 미주가 저 때렸어요! 교사 : (지금 엄청 바쁜데!) 그래? 미주야, 너 왜 때렸어? 미주 : 저 안 때렸어요. 실수로 팔이 부딪힌 거예요. 그리고 인경이가 저한테 먼저 시비 걸었단 말이에요! 인경 :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어? 나는 그냥 내 갈 길을 지나갔을 뿐인데! 미주 : 니가 지나가면서 시비 걸었잖아! 교사 : ?????? |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일어나는 상황이다. 왜 이런 황당한 상황이 발생할까? 누가 한 명이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비밀은 말 속에 있다.
타임 기너트는 <교사와 학생 사이>라는 책에서 수 년 간 존경 받는 교사와 비난 받는 교사를 비교 분석하고 비난 받는 교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의 비밀을 찾아냈다. 바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한 친구가 팔이 옆의 친구 팔로 향했다. 이 때 그걸 본 학생이 말한다.
“선생님, 쟤가 짝을 때려요!”
하지만 그 아이는 억울하다. 짝을 때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팔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려 했던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은 학생의 기분은 어떨까? 당연히 속상할 것이고 변명을 하거나 어쩌면 복수를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저 말을 한 친구에게는 분노가 쌓일 것이다.
‘에이~ 누가 그렇게 평가적인 말을 사용하나, 교실에서!’ 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다음 말들을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린다.
‘너 진짜 착하다.’
‘너 왜 친구를 괴롭히니?’
‘깨끗하게 하라고 했지?’
‘줄을 똑바로 서야지’
‘수업 시간에 바른 자세로 앉아야지.’
‘책임감 있게 행동해.’
‘이게 뭐?’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위의 말들은 대표적인 ‘평가적 표현’이다. 이런 평가적 표현은 반발심, 오해, 갈등을 낳는다. 그래서 관계를 위해, 건강한 대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이런 평가적 표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보들 말하기]
그래서 평가적 표현을 대체해 학급에서 사용하길 추천하는 것이 바로 보들 말하기이다. 보들 말하기란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말하기’이다. 상담에서 이야기하는 객관적 표현, T.E.T에서 말하는 행동 관찰과 유사한데 학생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준비 : 칠판
1. 도입하기
*교사 : 지금까지 친구 때문에 속상하거나 화가 났던 적이 있나요?
*학생 : 네!
*교사 : 친구의 어떤 행동 때문에 속상했는지 말해볼까요? 단 그 친구의 실명은 말하지 말길 부탁해요.
*학생 : 이유 없이 저한테 시비 걸 때요 / 저한테 OO이라고 욕했어요 / 놀 때 저만 따돌렸어요 등등
*교사 : (학생들의 발표내용을 요약해 칠판에 적는다. 이 때 한 쪽에는 평가적 표현을, 한 쪽에는 보들 말하기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분류해서 적는다.)
*교사 : 친구들의 이런 행동들 때문에 많이 속상했겠어요. 그런데 칠판을 보면 선생님이 여러분의 발표를 둘로 나누어 적어놓은 게 보이나요? 기준이 뭘까요?
*학생 : 조금 나쁜 행동이랑 많이 나쁜 행동이요 / 눈에 보이는 거랑 안 보이는 거요 등
*교사 : 한 쪽은 관계를 더 좋게 만들기 쉬운 쪽이고 한 쪽은 관계를 더 좋게 만들기 어려운 쪽의 표현이에요. 이게 무슨 말인지 선생님이 설명 해볼게요.
2. 보들 말하기의 필요성 알아보기
*교사 : 간단한 역할극을 하나 해볼게요. 지민이가 선생님의 친구에요.(지민이에게만 귓속말로 - 오랜만에 만나서 내가 엄청 반가운거야. 그래서 우리가 자주 하던 대로 내 등을 살짝 때리면 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금부터 지민이가 연기를 할 겁니다. 레디 액션!
*지민 : (교사의 등을 찰싹 때린다.)
*교사 : 아야! 방금 지민이가 뭘 했는지 말해볼 사람?
*학생 : 선생님을 때렸어요 / 등을 때렸어요 / 시비 걸었어요 / 폭행했어요 등
*교사 : 그렇군요, 그럼 만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지민이가 선생님을 때렸어요, 시비 걸었어요, 폭행했어요’ 이렇게 이야기 하겠군요? 그럼 지민이에게 물어볼게요. 지민이는 선생님을 폭행하려 한 건가요?
*지민 : 아뇨. 반가워서 우리가 늘 하던 대로 반가움을 표시한 건데요?
*교사 : 그런데 친구들의 저런 말을 들으니까 어때요?
*지민 : 억울하고 화가 나요.
*교사 : 여러분이 한 말은 지민이를 화나게 했대요. 왜 그럴까요?
*학생 : 잘 알지 못하고 말해서요 / 오해하고 말해서요 등
*교사 : 그 비밀이 말 속에 있어요. 방금 여러분이 한 것과 같은 말을 ‘평가적 표현’이라고 해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평가를 곁들여서 말하는 거죠. 혹시 이런 경험이 있지 않나요?
*학생 : 저는 그냥 궁금해서 일어난 건데 뒤에 있던 친구가 제가 일부러 가린다고 말해서 화났어요 / 저는 지우개가 예뻐서 만져본 건데 친구가 자기 지우개를 가져가려 했다고 해서 억울했어요 등
*교사 : 그래요, 이런 평가적 표현은 오해를 낳아 상대방을 억울하거나 화나게 하기 쉬워요.
*학생 : 그럼 어떻게 말해요?
3. 보들 말하기 하는 방법 알아보기
*교사 : 평가적 표현 대신에 보들 말하기를 사용하는 게 좋아요.
*학생 : 보들 말하기가 뭐예요?
*교사 :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말하는 거죠.
*학생 : 하지만 아까도 보이는 대로 말한 건데요?
*교사 : 아까는 본 것에 대해 내 생각을 섞어서 말한 거였죠. 그래서 오해가 쌓인 거고요. 보들 말하기는 캠코더로 찍으면 보이고 들리는 표현으로만 말하는 거예요.
*학생 : 그래도 어려워요.
*교사 : 그럼 평가적 표현이랑 보들 말하기를 구별할 수 있는 간단한 기준을 하나 알아볼까요?
*학생 : 뭔데요?
*교사 : 선생님이 말하는 걸 신호에 맞춰 하는 거예요. ‘오른 손을 위로 들어 보세요.’ 하나, 둘, 셋!
*학생 : (오른 손을 위로 든다.)
*교사 : 자, 그 상태에서 주변을 볼까요? 거의 모든 친구들이 같은 행동을 했네요, 맞나요?
*학생 : 네
*교사 : 그럼 두 번째입니다. ‘앞에 친구가 한 명 있다고 생각하고 시비를 걸어보세요.’ 하나, 둘, 셋!
*학생 : (저마다 다른 행동을 한다.)
*교사 : 자, 다시 주변을 볼까요? 어떤가요?
*학생 : 각각 다른 행동을 했어요 / 모두 달라요 등
*교사 : 그렇네요, 시비 건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이렇게 다 달라요. 그래서 이건 보들 말하기가 아니라 평가적 표현인 거죠. 내가 생각하는 시비와 친구가 생각하는 시비가 다르기 때문에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거죠.
4. 보들 말하기 연습하기
*교사 : 그럼 보들 말하기와 평가적 표현을 구별하는 연습을 해볼게요. (PPT로 몇 개의 예시 문제를 준비하고 함께 구별해본다. 그리고 평가적 표현은 보들 말하기로 바꾸는 연습을 한다.)
5. 다지기
*교사 : 그럼 다시 칠판을 볼게요. 선생님이 아까 이쪽은 관계를 좋게 만들기 쉬운 쪽이라고 했고 이쪽은 어렵다고 했죠,기준이 보이나요?
*학생 : 이쪽은 평가적 표현이고 이쪽은 보들 말하기예요.
*교사 : 그렇죠. 보들 말하기를 사용하면 왜 관계를 좋게 만들기 더 쉬운지 알려줄게요. 예를 들어 친구가 허락 없이 내 물을 마셔요. 나는 그런 행동이 싫죠. 그래서 ‘니가 허락 없이 내 물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면 이건 보들 말하기죠. 그럼 만일 그 친구가 허락 없이 물을 마시는 행동만 고치면 어떨까요?
*학생 : 화날 일이 없어요 / 사이가 좋아져요 등
*교사 : 맞아요.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너 싸가지 없이 행동하지 좀 마.’라는 평가적 표현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그 친구는 그게 어떤 행동인지 알 수 있을까요?
*학생 : 아뇨, 모를 것 같아요.
*교사 : 그렇죠. 행동과 그 학생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친구가 ‘싸가지 없는’ 친구가 되는 거죠. 그럼 그걸 바로 고칠 가능성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관계를 좋게 만들기가 어렵죠. 그래서 앞으로는 가능한 보들 말하기로만 말하기를 부탁합니다.
Q. 어린 학생들이 이걸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나?
경험적으로 이야기하면 올해 맡은 3학년 학생들까지 무난하게 보들 말하기를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어린 학생들은 언어습관이 덜 굳었기 때문에 바꿀 가능성이 더 크다. 예시를 많이 들려주고 쉽게 설명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Q. 이렇게 객관적으로 말하는 게 더 기분 나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만 좀 괴롭혀’보다 ‘너 내 팔을 세 번 쳤어. 그만 해.’가 어쩌면 ‘뭐야? 그걸 다 세고 있었어?쪼잔하게스리.’라는 반응을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동 변화나 갈등의 확대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는 보들 말하기가 평가적 표현보다 훨씬 안전하다. 또한 익숙해지면 같은 보들 말하기라도 조금 더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네가 내 팔을 세 대 쳐서’가 아니라 ‘네가 내 팔을 쳐서’로 말하는 것이다. 경험이 필요하다.
Q. 평가적 표현을 보들 말하기로 바꾸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는 데 어떡하나?
처음에는 버퍼링이 걸린다. 감정 다루랴, 말을 바꾸랴, 말 하랴. 그러나 익숙해지면 그 시간이 점차 줄어든다. 잠깐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효과가 너무 크다. 해 본 결과 4학년 학생들도 한 학기 정도 사용하고 나면 버퍼링 거의 없이 능숙하게 바꿀 수 있다.
보들 말하기의 활용은 학급 생활 전반에 걸쳐 다 가능하다. 특히 상담을 할 때 효과적인데 학생들이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억울함을 이야기 할 때 먼저 ‘보들 말하기로만 말해줘.’라고 하면 감정도 한 차례 정돈되고 말을 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더 번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정확한 상황 파악은 덤이고 말이다.
또한 보들 말하기를 할 때 조심해야 할 표현들이 빈도 부사인데 ‘맨날, 또, ~도’ 등의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 이런 표현들이 들어가는 순간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시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N.Q 지금부터 Q]
1. 당신이 가져야 할 7가지 마음
2. 말의 힘 느끼기
3. 경청을 해야하는 이유
4. 경청 만들어가기
5. 보들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