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4탄] 7. 7:3의 법칙
파레토 법칙
- 상위 20%가 전체 생산의 80%를 해낸다는 법칙(출처 : 나무 위키)
파레토 법칙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경영학 이론이다. 흔히 2대 8, 혹은 80대 20의 법칙이라고 불리며 일상 이곳 저곳에 적용되고 있다. 가장 부유한 시민 20%가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든지, 올림픽에서 상위 20% 국가가 메달의 80%를 가져간다든지 등 여러 예시가 나돈다. 사실 경영학 이론이라 투입과 산출이 명확하지 않으면 타당하다 보기 어렵지만 사람들은 흥미로운 이 법칙을 믿고 싶어하는 눈치다. 한 때는 대기업 중심의 낙수효과의 근거가 되기도 했던 법칙이기도 하다.
파레토 법칙 만큼 유명하지는 않아도 학부모를 대할 때 비슷한 법칙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바로 7대 3의 법칙이다.
법칙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과 노하우에서 나온 것이므로 과학적 검증은 정중히 거절한다. 또한 개인의 성향, 상대의 성향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둘의 비율이 얼추 비슷할 때 효과적이다.
1. 듣기 7 : 말하기 3
경청의 시대에 사는 만큼 대화에서 듣기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사람은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학부모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야 한다. 문제는 이게 어렵다는 점이다. 우선 교사와 학부모의 대화는 어색함에서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데 그걸 자처하는 학부모는 매우 드물다. 학부모와의 대화 상황을 떠올려보면 학부모 상담 주간, 특별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알아야 하는 경우, 갈등이나 문제 발생 시 등이 대다수이다. 그런 대화 상황에서 학부모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교사가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다. 이 때 유재석 처럼 적절한 진행으로 상대의 깊고 진지한 말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교사들은 자기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듣고 싶어도 학부모가 말을 안 한다는 어려움을 토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부모의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을까? 답은 리액션과 말문 열기에 있다. 우선 풍부한 리액션은 상대로 하여금 대화에 자신감을 갖게 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든다.
“우리 애가 그저께 갑자기 코피를 흘렸거든요.”
“네에? 아이고…….”
“전부터 그런 경험이 있기는 했는데 아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러는 것 같아요.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 놀라셨겠어요. 어쩐대요…….”
“그러니까요. 엄청 놀랐죠.”
다만 진심을 담은 리액션을 해야 한다. 기계적으로 하거나 형식적이라고 상대가 느낀다면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문 열기는 door opener라고 부른다. 대화가 소강 상태에 이르렀을 때 또 다른 방향의 문을 열어주는 적절한 발문을 의미한다. 말문 열기를 잘 활용하면 대화가 다양한 방향으로 풍부하게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애가 그저께 갑자기 코피를 흘렸거든요.”
“네에? 어쩌다가요?”
“전부터 그런 경험이 있기는 했는데 아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러는 것 같아요.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셨군요. 최근에 OO이가 스트레스를 좀 받았나요?”
“저한테 티는 잘 안 내는데 그런 것 같더라고요. 요즘 표정도 좀 어둡고.”
“어머님 생각은 어떠세요? 혹시 원인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말문 열기를 할 때 주의할 점은 자칫 잘못하면 취조하거나 캐묻는 느낌을 주어 오히려 상대의 입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걸 door slammer라고 부른다.) 상대로 하여금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적절한 말문 열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잡담 7 : 본론 3
“어제 드라마 봤어? 주인공 너무 불쌍하더라.”
“그러니까 말이야. 어휴, 남자 그 나쁜 놈 정말.”
“맞아 맞아. 내가 진실을 알려주고 싶더라니까?”
아줌마들의 수다는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소란스럽고 생산적이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카페나 버스 등에서 이런 수다가 들려오면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수다의 힘을 과학적으로 밝힌 연구가 있다. 미시간 대학에서 한 실험이다. A그룹은 수다(쓸 데 없는 이야기)를 마음 껏 하게 하고 B 그룹은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게 했다. 30분 정도 지난 뒤 두 그룹의 전전두엽(계획, 논리적 사고, 도덕적 판단 등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을 담당하는 부분)의 변화를 측정한 결과 수다를 떤 A그룹이 B그룹에 비해 월등하게 활성화 되어 있었다. 또한 성취를 비교했을 때도 A그룹이 B그룹에 비해 15% 정도 더 높게 나왔다. 수다, 즉 마음을 주고 받는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이다.
창의성 신장 뿐 아니라 레포를 형성하는데도 수다만한 것이 없다. (지금부터는 여성 학부모와 대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전제로 이야기 한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옛날 사냥을 하던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채집이 주된 노동이었다. 채집은 정적인 과정이었고 먹을 것에 대한 탐색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보가 중요해졌고 정보의 공유는 친밀함의 척도였다. 그래서 수다를 하고 진심을 전달하는 건 유대 관계에 대한 명확하고 강력한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도 잡담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공적인 관계에 가까운 학부모와 잡담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일상을 많이 공유할 수록 수다가 쉬워지는데 공유하는 부분이 적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대화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 상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학부모는 학부모이기 이전에 한 명의 성인이다. 자신의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가 아닌 그 사람의 이야기로 접근하면 효과적이다. 물론 잘 알지 못하지만 최대한 짐작하고 관심을 가져 이야기를 꺼내면 오히려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순탄한 대화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통점을 미리 찾아 보는 편이다. 교사인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 이야기 하면 쉽게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레포가 쌓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자녀 양육 이야기, 취미 생활, 직장 생활, 문화적 관심사 등이 있다.
물론 단도직입적인 대화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잡담을 하면 오히려 말을 빙빙 돌린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호 장비 없는 상대에게 펀치를 날리는 것보다는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3. 비언어 + 반언어 7 : 언어 3
비언어적 메시지의 중요성은 앞선 글들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다.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테크닉도 언급했다.
<참고>
https://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DoDaeyeong&wr_id=52
https://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DoDaeyeong&wr_id=5&page=3
학부모와의 대화에서도 비언어적 메시지는 언어적 메시지 보다 강력하다. 어려운 점은 비언어적 메시지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드는 과정이다. 쉽게 말하면 학부모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의 ‘학교에 한 번 오시겠어요?’라는 말은 학부모로 하여금 ‘우리 애가 문제가 있나?’라는 불안감을 가지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전 과정인 전화 통화가 중요하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의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아무튼 입을 열기 전에 표정, 몸짓, 몸의 방향 등에서 성패는 70% 이상 결정난다. 그런데 이런 비언어적 표현들은 쉽게 숨기거나 속일 수 없다. 우리 몸은 본능에 정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심을 담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치밀하고 반복적인 연습을 해야만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4. 기다림 7 : 시도 3
대화는 역동적이고 쌍방향적인 게임이다. 수시로 에너지의 흐름과 방향이 바뀐다. 마치 살아 꿈틀대는 생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에서는 일방적인 공격도, 수비도 없으므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교사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공격에 치중하는 것이다. 특히 학부모가 흥분해있거나 사실과 다른 정보를 근거로 덤벼들 경우에 많이 그런다.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니 어머님, 그게 아니라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등의 말로 상대의 말을 끊고 공격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이는 비효과적이다. 억울하게 당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상대가 파상공세를 한다는 건 이성보다는 감정에 휩싸인 상태라는 걸 인식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역린(예를들어 아이의 안전 문제, 관계 문제 등)일 가능성이 높다. 자식을 지키려는 부모는 한 마리 야수와도 같다. 이렇게 뚜껑이 열린(파충류의 뇌로 돌아간) 학부모에게 맞불을 놓는 건 자칫 사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
에너지는 결국 총량이 있다. 담을 수 있는 필드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한 쪽이 지나치게 에너지를 밀어 넣으면 다른 한 쪽 길을 터주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상대가 거친 공격을 하면 일단 기다려서 에너지를 빼주는 것이 좋다. 적절한 경청의 방법, 비언어적인 시도를 함께 하면서 말이다. 그럼 상대의 공격이 멈추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때 감정을 조금 더 읽어주고 공격에 나서면 된다. 같은 말이라도 학부모의 귀에 닿고 닿지 않고는 타이밍과 상대의 상태가 결정하는 법이다.
또 한 경우는 학부모에게 무언가 시도하고 싶을 때이다. 가령 아이를 상담을 받아보게 하고 싶다든지, 어떤 대회에 참여시키고 싶다든지 할 경우 나의 의사를 학부모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 때도 섣부르게 본론을 전달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칫 방어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 한 잡담과 다양한 대화 시도를 통해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 후 가급적 교사가 아니라 학부모의 입에서 ‘그럼 선생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라는 말이 먼저 나오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같은 이야기라도 교사가 던지는 것과 학부모가 물어서 대답해주는 건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는 건 쉽고 기다리는 건 어렵다고 했다. 그 어려운 걸 우리가 해야 한다.
5. 관계에서 숫자는
무언가 그럴싸하게 숫자를 늘어 놨다. 편협한 개인의 경험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데이터베이스가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관계에서 숫자는 수사적 표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게 그 사람에게 통할 가능성이 90% 이상이야’라는 말의 의미는 10번 시도하면 9번 성공한다는 게 아니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앞서 이야기한 7:3들 또한 마찬가지다. ‘7 쪽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아울러 모든 상대에게 일관되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미 언급했 듯 대화란 결국 게임이다. 게임에는 ‘상대방’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 기본적인 준비를 하고 경험을 많이 쌓아야 대화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