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3탄] 9.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앞의 글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교사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의견을 묻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학생에 대한 존중을 조금 더 담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화란 교사와 학생이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필요한 것은 일방적 이해가 아니라 상호존중이다. 그래서 이번 글부터는 무게 추를 교사 쪽으로 조금 더 옮기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 내 이야기는 불편하다.
동학년 협의 시간, 옆 반 선생님이 말한다.
“김선생님, 선생님 반 녀석들 몇 명이 아까 수업 시간에 물을 마시러 갔었나요?”
“네, 급하다고 해서 보냈었죠.”
“아까 우리 반 복도를 지나면서 갑자기 왁!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참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어머, 그랬어요? 이 녀석들을 그냥!”
이 때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밖을 쳐다보더라고요. 저도 같이 놀라서 수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중요한 실험 중이었는데 당황스럽더라고요.”
두 번째는
“그런 행동을 하게 두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기본적인 예절은 지킬 수 있도록 따끔하게 지도하는 게 어때요?”
만약 내가 듣는 입장이라면 어느 쪽이 더 받아들이기 쉬울까? 백이면 백 전자를 택할 것이다. 사람이 그렇다. 다른 사람 이야기 하는 것은 부담이 적은데 내 이야기는 부담스럽다. 더구나 그 이야기가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면 감정이 팍 상하기 마련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나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다른 집 청소는 도울 수 있지만 우리 집 더럽다는 이야기는 못 견디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특히 둘의 관계가 수직적일 경우는 더 심하다. 그래서 교사는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과 말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교육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이유를 들이밀며 말이다. 설사 교사가 100% 옳다고 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공격당하고 있다.
2. 그러니 내 이야기를 하자.
그래서 결론은 간단하다. 교사인 나의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줄여서 ‘I 메시지’, 혹은 ‘나 전달법’이라고 한다. 요즘은 도덕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대중화 되어 있다. 공식적으로는 ‘나 전달법’이라는 순화된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지만 더 친숙한 I 메시지라고 부르려 한다.
I 메시지란 뭔가? 말 그대로 I(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수많은 사례분석과 체계화를 통해 정교하게 가다듬어 놓은 결과물이 바로 I 메시지다. 현재는 일종의 공식처럼 널리 활용되고 있다. 크게 교사역할훈련(이하 T.E.T)에서 활용하는 방법과 비폭력 대화(이하 NVC)에서 사용하는 형식이 주류를 이루는 듯하다.
T.E.T에서는 ‘행동 + 영향 + 감정’의 형식을 사용한다. ‘니가 화분을 깨뜨려서(행동) + 내가 치워야 해(영향). 그래서 나는 속상해(감정)’ 이런 식이다. 반면 NVC에서는 ‘관찰 + 느낌 + 욕구 + 부탁’의 형식을 사용한다. 기본적인 구조는 T.E.T의 I 메시지와 같은데 이는 NVC의 창시자인 마샬 로젠버그가 T.E.T의 창시자인 토마스 고든의 I 메시지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말하고 상대의 행동을 바꾸도록 부탁까지 한다는 점은 T.E.T의 I 메시지와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둘 사이의 우열은 없다. 맥락과 활용하는 교사의 성향에 따라 선택할 뿐이다.
3. 쉽지 않다.
문제는 I 메시지를 활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기억해내기 어렵다. 사람은 관성에 익숙하기에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온 방식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I 메시지를 써야 하는 상황임을 깨닫고 활용하는 건 무척 어렵다. 두 번째 어려움은 어색함이다. 일상 속 대화와 동떨어져 보이는 I 메시지는 어색함을 남긴다. 마치 극본을 읽는 것과 실제 대화 정도의 간극을 느끼게 한다. 그러다 보니 자발적으로 활용하기를 주저한다. 당연히 I 메시지의 효과를 느낄 겨를도 없다. 세 번째는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다. ‘진심이 중요한데 이렇게 형식적으로 말한다고 상황이 달라지겠어?’라는 의구심을 가지기 쉽다. 의심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회피를 부른다. 그렇게 I 메시지는 잠깐 스쳐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형식이 중요하다. 설사 갈등 중재 후 다시 연습을 할 때만 활용하더라도 필요하다. 진심이 없는 형식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형식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정제되어 만들어진 정수가 바로 형식이다. 저 짧은 형식에는 수 십 년의 세월과 노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꼭 연습할 필요가 있다. ‘연습한다고 해도 잘 사용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한다면 중요한 생각을 하나 버리면 된다. 모든 상황에서 적절하게 I 메시지를 활용할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그건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나 할 수 있다. 기대치를 낮추고 꾸준히 연습하자. 알고 실수하는 것과 모르고 저지르는 것은 천지차이니 말이다. 또한 형식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색함을 느껴도 괜찮다. 어색함을 느낀다는 것은 분노나 짜증 등의 감정을 어색함이 대체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바뀐다.
4.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 너는 어떻게 하는데?’라는 의문을 가질지 모르겠다. 본디 나는 T.E.T를 전공(?)한 사람이기에 T.E.T의 I 메시지를 주로 활용한다.(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다년간 활용하다 보니 이상보다는 현실에 맞게 변주했다.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내 감정만 말하라.’는 것이다. 물론 보들 말하기로 행동을 서술하거나 부탁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핵심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교사의 ‘옳은 말’들이 학생들에게 닿지 않는 이유는 지적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도 지적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학생들은 ‘내가 잘못했다’라는 반성을 강요당할 뿐 교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니, 그걸 직접 말해야 아냐고? 그렇다. 직접 말해야 안다. 그게 사람이고 그게 솔직함이라는 거다.
‘학생이 이런 이런 잘못을 했다고 나는 생각해.’ 이것도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생각을 말하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부른다. 그럼 결국 승자와 패자가 만들어진다. 물론 주로 패자는 학생이다. 하지만 감정을 말하면 판단이 아닌 공감을 부른다. 그래서 머리로는 못 이길지 몰라도 마음으로 이길 수 있다. 연락 없이 지각을 한 학생에게
“어제 선생님이랑 약속까지 했는데 지각을 하면 어떡하니? 니가 늦게 들어오면 아침 활동을 하던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 못해?”
보다는
“선생님 걱정했잖아.”
라고만 말하라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생각이나 판단을 말해야 한다면 감정보다 비중을 훨씬 적게 말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팁을 더 붙이려 한다. 개인적으로 상대의 반발을 부르는 2차 감정인 ‘화’나 ‘짜증’을 싫어한다. 하지만 이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가 있다. 그 때 추천하는 감정 낱말들이 있다. 바로 ‘속상하다’, ‘서운하다’, ‘곤란하다’, ‘당황스럽다’, ‘창피하다’ 등이다.
5. 착각은 금물
그럼 내 감정을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내 생각대로 행동이 변할까? 물론 그런 일은 없다. 행동을 바꿀지 말지는 전적으로 학생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방법이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교사가 원하는 학생의 행동 변화가 보인다면, 그것은 자발적인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 자발적 변화는 지속적이고 단단하다. 그래서 학생의 행동 변화를 이끌고 자 반복해서 내 이야기를 한다든지 변화를 강요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