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번외편] 8. 선생님, 있잖아요. 진형이가요~
"선생님!"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학생들의 쉬는 시간 겸 교사의 민원 상담 시간이 시작된다. 교사도 숨 좀 돌리고 싶지만, 학년 연수실로 도피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 이미지 출처 : 참샘의 교사동감 36화(까박샘), https://chamssaem.tistory.com/284
오늘도 자아분열과 분신의 기적을 행사하며 민원 상담을 시작한다. 대부분은 들어주면 해결되는 일들이다. 그때 교사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있잖아요. 진형이가요~!"
까무잡잡한 피부에 두꺼운 입술을 가진 원기다. 원기는 쉬는 시간 민원의 50% 이상을 독점하는 주요 고객이자 블랙리스트이다. 블랙리스트라고 칭하는 이유는 나에게 오는 이유 대다수가 고자질이기 때문이다.
"진형이가 단소를 큰소리로 불어요!"
진형이에게 들리라는 듯 일부러 큰 목소리를 낸다. 말은 나에게 하지만 시선은 진형이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이를 알아차린 진형이가 교실 뒤에서 이쪽을 주시한다.
"그래?"
"네!"
"그래서?"
"네?"
예상 밖의 반응이었는지 원기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음…... 그게...…"
당황한 원기는 고민에 빠진다. 우물쭈물 생각을 만들어 내려 하지만 쉽지 않은 모습이다. 나는 궁금한 표정으로 기다린다.
"안 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선생님이 궁금해서 그러는데, 진형이가 단소를 큰소리로 불면 왜 안 될까?"
"음, 불면 안 되니까요."
"왜?"
"어……"
원기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시선은 아래를 향한다.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아 어려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또 기다린다. 그제야 원기가 시선을 맞춘다.
"시끄러워요."
"아, 그럴 수 있겠네. 그럼 그게 너한테 어떤 피해를 주니?"
"시끄러워서 노는데 방해돼요."
"일리가 있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원기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안 해야죠."
"그래, 선생님 생각에는 원기 생각이 일리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되겠다."
"네? 제가요?"
"응, 니가."
이번에는 내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지금 누가 감정이 불편하니?"
"저요."
"그럼 누가 그걸 해결 해야 할까?"
"아니, 그래도……"
다시 원기는 우물쭈물하기 시작한다. '이게 아닌데……'라는 말이 얼굴에 쓰여 있는 듯하다. 나는 짐짓 모른 체하며 시선을 컴퓨터 모니터로 돌렸다. 원기는 당당했던 첫 모습과 달리 뭔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들어간다.
다음 쉬는 시간, 다시 원기의 민원이 시작된다.
"선생님, 윤민서가 저한테 시비 걸어요!"
억울한 표정과 흥분한 발걸음이다. 콧평수가 넓어져 콧김이 킁킁 나올 것 같다.
"윤민서가 저한테 막! 시비 걸고 막! 짜증 나게 하고 막!"
원기는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다. 문장을 끝내지 못하고 '막!'이라는 말로 억울함과 속상함을 표현한다. 원기가 가진 일종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느껴지는 '막!'은 중상 정도의 강도를 가진 것 같았다.
"뭔가 되게 속상한가 보네."
"아니, 윤민서가~ 막! 시비 걸잖아요!"
"그래? 그런데 선생님은 알아들을 수가 없네~?"
음정을 흔드는 나의 능청에 원기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시비 건다'니까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어. 보들 말하기로 바꿔줄래?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니?"
"웁… 그게, 아!"
감정은 쏟아지는데 말은 나오지 않는다. 버퍼링이 일어나는 건 긍정적인 신호다. 날 선 감정의 폭포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에 머무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저한테 "수학 못 한다."라고 했어요."
"진짜? 속상했겠네."
"네! 지는 얼마나 잘한다고."
"그래서 그다음에는?"
"네?"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다음에 어떻게 했냐고."
"선생님한테 왔는데요."
"왜?"
"말해야 하니까요."
반복되는 고자질에 나는 공격적이고 솔직하게 다가갔다.
"니 감정은 충분히 공감돼. 그런데 니가 그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하는 목적이 뭐니?"
"......"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선생님이 민서를 혼내주기를 바라는 거니?"
"어…… 그게……"
원기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곤란한 표정으로 바닥을 훑어볼 뿐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건데요?"
원기는 문제해결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비언어적인 신호들은 사실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캐물을 필요는 없다. 액면 그대로 믿어주면 된다. 나는 형사가 아닌 교사고, 이 상황에서는 믿어주는 게 득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그럼 지금 감정이 불편해진 건 누구지?"
"저요."
"그럼 누가 해결해야 할까?"
"제가요."
"어떤 방식을 쓸 수 있겠니? 우리 반은 학년 초에 이미 다 공부했는데."
"I 메시지요."
"잘 알고 있구나. 기쁘다! 그럼 실천하렴. 혹시 선생님 도움이 필요하니?"
"아니요……"
"그래,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윤민서가 그래도 하면요?"
원기는 '만약' 스킬을 시전했다. 시도한 뒤에 실패하면 책임져달라는 의미다. 이때 언약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만약'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교사로 하여금 현명한 판단보다는 학생이 원하는 결정을 내리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다시 말해줘. 아니면 문제해결시스템의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돼."
"그게 뭔데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손은 우리 반 문제해결시스템 게시물을 향하고 있었다. 이미 충분히 교육하고 설명한 내용은 다시 설명하지 않는다.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기는 조용히 게시물을 향했다.
만약 원기가 혼내 달라고 했다면? 그럼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네. 니가 지금 하는 게 알림이 아니라 고자질이라는 뜻이니까. 선생님은 고자질을 듣거나 도와줄 생각은 없단다."
학생들이 고자질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억울함이다. 본인은 노력하고 지키는 것을 어긴 친구가 아무 지적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다.
또 하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다른 사람이 더 권위 있는 사람에게 혼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인이 직접 나서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권위자(교실에서는 교사)의 손을 빌리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관심 끌기다. 교사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고자질을 한다. 즉, 내용보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자질을 자주 하는 학생들에게는 말보다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접근이 더 효과적이다. 고자질하지 않아도 너에게 관심이 있고 니 말이 소중하다는 걸 자주 이야기하고 인식시켜준다.
아울러 학년 초에 "알림 VS 고자질" 활동을 통해 알림과 고자질을 구분하고, 일관되게 고자질은 받아주지 않아야 한다. 한 번씩 마음의 여유가 있어 받아주면 고자질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해를 하면 곤란하다. 고자질을 받아주지 말라는 게 선을 잘라 무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은 읽어줘야 한다. 다만 그로 인해 학생이 원하는 해결을 대신 해주지 말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학생의 문제는 학생이 해결해야 한다.
*관련 글 : 알림 VS 고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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