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번외편] 5. 이딴 걸 왜 하는 거야?
24살, 교사보다는 대학생에 가까웠던 ‘쌩’신규 시절, 나는 6학년 체육 전담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젊고 센스 있는 체육 선생님이었던 나는 연예인급의 인기를 누리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놀이들을 접목한 수업은 ‘체육’이라는 프리미엄이 더해져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쉬는 시간 마다 축구를 함께 할 때면 마치 전설의 플레잉 코치 루드 굴리트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나 난관은 존재하는 법, 나의 심기를 거스르는 녀석들이 있었다. 바로 원준이과 그 일당들. 원준이는 소위 김해시 전체 ‘짱’이었다. 다른 학교 녀석들과 패싸움을 종종해서 교사들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교실에서 교사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며 기싸움을 펼치는 녀석이었다. 단순히 싸움을 잘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신경전과 영향력 싸움을 펼치는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었다. 교직 경력 30년의 선배님도 ‘참 질이 안 좋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는데, 지금으로 치면 폭력, 음란물, 따돌림, 성범죄, 갈취, 절도 등 무수한 비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수업 태도가 원만할리 없었고, 녀석의 눈에도 인기를 끄는 젊은 체육 교사가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유독 1반 수업은 호응이 덜했고 맥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날은 공을 활용한 유연성 수업을 준비했다. 협력적인 게임 형태로 만들어 즐겁게 유연성 수업을 하고 싶었다. 주말에 고민을 많이 했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한 수업이었다. 그렇게 1반 수업이 시작되었다.
“자, 오늘은 유연성을 길러 보는 수업을 할텐데요, 이 공을 활용해 팀별로 게임을 하겠습니다.”
다양한 변수를 지닌 게임 규칙을 설명했다. 학생들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아 진짜, 이딴 걸 왜 하는 거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열심히 설명하는 내 입은 멈췄고, 재잘대며 질문하던 학생들의 말도 사라졌다. 모두들 줄 뒤쪽의 원준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김원준, 방금 뭐라고 했냐?”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뭐?”
내 눈과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방금 이야기 했잖아. 아니라고?”
“그냥 혼잣말 한 건데요.”
“이딴 걸 왜 하냐고 했어 안 했어?”
“아, 그건 어제 게임하던게 갑자기 생각나서 이야기 한 거에요. 야, 그래 안 그래?”
원준이는 옆에 있는 일당에게 말을 넘겼다. 그러자 그 녀석은
“응? 아, 네. 선생님, 원준이 말이 맞아요.”
라고 대답했다. 원준이는 그것 보라는 듯 나를 뻔뻔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화가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준형, 진짜야? 그 말에 목숨 걸 수 있어?”
“네? 아… 네…”
레이져 같은 내 눈빛에 약간 멈칫했지만 준형이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나는 한 숨을 한 번 쉬었다.
“좋아, 알았어. 얼마나 제대로 들었고 잘하는 지 한 번 보자. 열심히 안 하면 뒤진다.”
“네~”
원준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경쾌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그 대답이 놀리는 것 같아 내 심사는 더욱 뒤틀렸다. 열심히 준비했던 수업은 그렇게 맥이 빠진 채 끝나 버렸고 쉬는 시간까지 내 머리에서는 김이 나고 있었다. 다행히 다음반은 즐겁게 수업을 마칠 수 있었고, 또 다시 찾아 온 쉬는 시간에 학생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야, 도대영!”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 보았다. 6학년 1반 창문에서 몇 개의 얼굴들이 재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그 쪽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주변의 학생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내 시선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얼굴들이 나타났고, 예상대로 김원준이었다. 드디어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야!”
엄청난 외침이 운동장을 갈랐다. 목소리는 나의 무기였다. 전교를 울릴만큼 큰 고함을 질렀고 모두들 놀라 운동장을 내다 보았다.
“김원준, 10초 내에 뛰어 내려와! 십, 구, 팔…!”
그제서야 창가에는 얼굴들이 사라졌다. 이내 원준이가 내 앞에 섰다. 가증스러울 만큼 미안하고 죄송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실랑이 속에서 이 녀석이 두른 가면을 보았기에 좋게 넘어 갈 생각은 없었다. 전교생과 다른 선생님들까지 지켜보는 한 판의 결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 와.”
위압적인 한 마디를 남긴 뒤 체육 창고를 향해 걸었고 녀석은 뒤따라 들어왔다. 나는 철제문을 일부러 거칠게 쾅! 닫았다. 문을 잠궜고, 침묵했다. 어둠과 케케한 마그네샤 냄새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녀석과 마주 섰다. 그 때 내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이 자식이 나를 만만하게 보거나 까불지 않을까? 때릴 수 없으니 손을 대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공포에 떨게 만들어야 한다.’
한참을 노려본 뒤 나지막히 말했다.
“뒤질래, 이 개새끼야?”
교사의 입에서, 아니 나의 입에서 나올거라고 예상 못한 말이었을까? 원준이의 눈이 커졌다.
“내가 니 친구냐? 어? 아가리를 찢어 버릴라.”
그 곳에는 교사와 지성인, 어른의 껍질을 벗어버린 동물만 있었다. 야생에 던져진 동물처럼 생존과 존엄을 위해 할퀴고 날뛰었다. 고교 시절, 폭력적이었던 축구 서클에서 당하고 배운 그대로 하고 있었다. 이성은 이미 사라졌고 상대의 목을 물어 뜯어야 하는 짐승일 뿐이었다. 그렇게 풀풀 날리는 마그네샤 가루처럼 매케하고 불쾌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후 녀석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위협이 먹혔는지 이후에는 나에게 선을 넘어 덤비지 않았다. 대신 외면하고 건조하고 무미할 뿐이었다.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시선에는 혐오가 가득했다. 겉으로는 예의 발랐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녀석과의 대면은 더욱 불편해졌다. 이겼다는 승리감은 없었다. 찝찝함,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지는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나보다 훨씬 어리고 미숙한 녀석에게 왜 그랬을까? 오랜 시간동안 자책은 내 머리 속에서 해답을 요구했다. 꽤 긴 시간 고민한 결과 얻은 대답은 이것이었다.
‘내가 자신감이 없어서.’
자신감이 있고 당당한 사람은 행동과 말이 무겁고 흔들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든, 어떤 것들이 흔들든 본인의 것을 온화하게 밀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녀석과의 힘 싸움에서 질까봐 두려웠고, 나를 쳐다보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더욱 날카롭고 거칠게 덤벼 든 것이다.
싸움에 강한 개는 짖지 않는다고 했다. 상대의 도발이나 화날 만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여유가 더욱 강하고 굳건한 사람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이빨을 드러내지 않아도, 칼집의 칼을 꺼내지 않아도 자신감 있는 사람은 강하다는 걸 누구나 느낀다. 이런 사람은 고수이고, 나는 하수였다.
이후 교직 생활을 하며 다양한 원준이들을 만난다. 부딪혀오는 강도나 목적은 다르지만 교사가 불편할만한 행동으로 덤벼온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다. 고수는 아닐지라도 중수 쯤은 된다고 믿기에 같은 과오를 다시 범하지는 않는다.
“아, 이 활동 진짜 재미 없을 것 같아. 왜 하는 거야?”
그럼 정적과 긴장이 펼쳐 진다. 막상 말을 한 녀석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때 나는 평소와 똑같은 표정과 톤으로 묻는다.
“민호 너는 이 활동이 재미 없을 것 같아서 귀찮구나?”
“네.”
나의 질문에 살짝 당황하며 대답한다.
“그렇게 예상할 수 있어. 실제로 해보면 재미 없을 수도 있고. 재미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까. 하지만 해보지 않고 재미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까?”
“아뇨.”
“그래, 그러니까 일단 한 번 참여해줄 수 있을까? 다 하고 나서 재미 없다면 뭐…… 어떻게 하면 재미 있을 지 아이디어를 좀 줘도 좋고.”
이렇게 대응하면 대부분의 녀석들은 수긍하고 참여한다. 물론 가끔 그래도 튕기는 녀석들이 있다.
“하기 싫은데요.”
“그래? 아쉽네, 학습 목표 달성에 참 도움이 될텐데. 억지로 시킬 수야 없지. 그럼 민호는 교과서를 읽거나 친구들이 하는 걸 관찰해도 좋아. 그리고 니가 하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활동에 들어와도 좋고. 알겠니?”
“네……”
“다만 지켜줄 건 수업과 관련 없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안된다는거야. 그건 선생님이 용납할 수 없다. 부탁한다.”
이렇게 담담하게 도움을 주고 즐거워 하는 많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면 십중 팔구 녀석들은 활동 중간에 합류하기 마련이다. 다그치거나 강하게 부딪히지 않아도 된다. 그건 오히려 녀석들이 원하는 반응이다. 나는 역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순류를 그대로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평정심. 그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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