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4탄] 10. 할 말이 없다는 당신에게
학부모와 상담을 할 경우, 교사가 예상하고 준비하는 시간(러닝 타임)은 얼마나 될까? 학교 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학교의 상담주간 한 타임(한 학부모가 상담 가능한 시간)이 30분이다. 이 시간에 대해 동료 교사들에게 물어 봤다.
“한 타임 30분 괜찮으세요? 짧지 않으신가요?”
그러자 대부분의 동료들은 대답했다.
“네? 30분도 길어요.”
“그래요?”
“그럼요. 민망하기만 하고…... 빨리 끝내는 게 좋죠.”
그리고 덧붙인다.
“사실 할 말도 별로 없어서 길게 하는 게 어려워요.”
1. 할 말이 없는 이유
많은 교사들이 학부모 상담 때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이는 큰 곤욕이다. 비단 상담 뿐 아니라 어색한 누군가와 있을 때 대화거리가 없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겪어 본 사람이면 안다. 그래서 그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술에 의존하기도 하고 공통사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는 다르다. 아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고 각자 대화의 목적도 명확히 가지고 있다. 아이에 대해 부모와 교사보다 더 많은 걸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할 말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교사의 ‘준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어는 인터뷰 전에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예상한다.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날리는 캐스터들은 준비부터 남다르다. 하다 못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인터뷰 전 사전 질문지를 만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학부모와 만나기 전에 그렇게 준비하는 교사를 본 적이 없다.(적어도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말이다.) 왜냐하면 교사는 학부모의 말을 듣고 대답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교사는 인터뷰어(interviewer)일까, 인터뷰이(interviewee)일까? 어느 한 역할에 고정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준비는 인터뷰어로써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상담은 교사가 이끄는 게임이고 무릎팍 도사로 따지면 교사는 게스트가 아니라 강호동이기 때문이다.
2. 무슨 준비를 해야 하나
모든 대화는 준비한 만큼 풍요로워지는 법이다. 우리가 법륜 스님 수준의 즉문즉설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좋다. 결국 ‘이야기 거리’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이야기 거리를 준비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 째는 학생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무거운 상담까지는 아니라도 점심시간에 밥을 함께 먹으며, 혹은 운동장을 걸으며 요즘 관심사가 무엇인지, 힘들거나 어려운 건 없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평소에 관찰한 거랑 대화를 나누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다. 대화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학부모와의 상담의 절대 다수는 아이 이야기다. 그러므로 내 아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교사를 학부모는 신뢰하기 마련이다.
두번 째는 사전 질문지를 보내는 것이다. 설문지가 아니라 상담 신청서 한 켠에 ‘궁금하신 점이나 상담하고 싶은 주제를 적어주세요.’라고 보내면 된다. 그러면 학부모가 궁금한 키워드를 교사에게 던질 것이다. 교사는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면 된다. 이 과정을 즉석에서 해내는 대단한 상담가들도 있지만 학부모가 가진 심층의 진의를 벗겨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직접 물어보기를 추천한다.
셋째는 FAQ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학부모들이 상담 때 듣고 싶은 주제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빠지지 않는 두 가지 질문은
“교우 관계는 어떤가요?”
“수업 시간에는 괜찮나요?”
다. 사실 각각에 대해 더 구체적인 궁금증들이 있겠지만 대부분 시작은 이렇게 한다. 이 두 질문에 대해서는 필수적으로 대답을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그 외에도 많이 들었던 질문은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걱정이에요.”
“핸드폰에 빠져서 정신을 못차려요.”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것만 좋아해요.”
“사춘기가 오는지 슬슬 반항을 해요.”
등이 있다. 물론 학년, 학생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동소이하다. 이것들에 대해서도 답변을 준비해두기를 추천한다. 이 때 ‘뽐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교사로써 최선을 다하기 위해 관련 공부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아동기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들이 있고 독서에 관해서도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 교사 자신의 철학을 담은 전문성 있는 답변은 상담의 질을 끌어 올릴 수 있다.
3. 도구 활용하기
자고로 능력의 완성은 아이템빨이라고 했다. 상담도 간단한 도구를 하나 활용하면 결이 달라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전문적이고 어려운 심리 검사나 상담 도구를 활용하라는 게 아니다. 간단하게 활용하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도구들에 관한 이야기다.
(1) 뇌구조 그림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도구다. 자신의 뇌 속을 그리는 건데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말로 하기 어려운 관심사나 걱정 등을 그 비중까지 함께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제작이 쉬워 연령에 상관 없이 활용이 가능하다. 상담 주간 전에 학생들과 만들어 보고 학부모와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할 말이 많아질 것이다.
(2) 상담 카드
상담 카드는 종류가 무척 많다. 공감대화 카드, 감격해 카드, 질문 카드 등. 교사의 취향에 맞게 활용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감정 낱말이 있는 카드를 좋아한다. 감정은 개인 심리의 핵심이므로 다양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학부모의 심정을 감정 낱말에서 골라봐도 되고, 요즘 아이에 대한 나의 감정을 선택해도 된다. 그리고 그 뒤에 자연스럽게 질문한다.
“왜 그 낱말을 고르셨나요?”
“최근에 그와 관련된 일이 있을까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학부모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또한 학부모도 본인의 감정이나 본심을 드러내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반대로 교사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3) 키워드 카드
키워드 카드는 별 것 아니다. 빈 A4 용지나 종이를 마련한다. 그리고 거기에 나누고 싶은 대화 주제를 낱말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우선순위대로 놓으면 그것에 대해 차례대로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감정 낱말과 마찬가지로 다음 질문을 곁들이면 좋다.
“왜 이 키워드를 쓰셨나요?”
“이 키워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4. 할 말이 있다
위의 방법들을 활용하면 할 말이 생긴다. 물론 준비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더 든다. 하지만 매주 보는 학부모가 아니라면 한 번의 상담으로 큰 임팩트를 주는 게 효율적이다. 전에도 말했 듯 준비하지 않고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수학 문제는 유형별로 수없이 문제 풀이를 하면서, 영어 문장은 수 십 번 외우고 말하면서, 대화는 그냥 한 번 알면 되리라는 도둑놈 심보를 버렸으면 좋겠다. 준비하자. 작은 준비가 큰 변화를 만든다.